현대차 노조와 연금개편안이 쏘아 올린 '정년 연장'

연합뉴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지난 1일 '더 내고 늦게 받는' 연금개편안을 제시했다.

정부안 확정-국회 논의 및 의결이라는 지난한 절차를 남겨두고 있고 결과도 미지수이지만 올해 63세인 연금 수급 연령이 더 늦추어질 가능성이 커보인다.


연금개편안 제시에 노조 "정년 빨리 올려라"…기업들은 난색


현행 제도에 따르더라도 1969년 이후 출생자는 65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을 받게 되는데 직장 가입자들의 정년은 60세여서 만 5년의 간극이 발생한다.

현재 소득대체율이 40%이지만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실질 대체율이 23%로 떨어져 '용돈 연금'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 60세를 꽉 채우고 정년퇴직을 해도 최소 5년이라는 보릿고개를 넘어야 한다.

지난달 25일 실시된 현대차 노조의 파업 찬반 투표가 조합원 88.9%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현대차 노조의 핵심 요구는 현행 60세인 정년을 64세로 연장하자는 것인데 90%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파업 찬성에 표를 던졌다는 것은 젊은 노동자들도 정년 연장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연금 수령 시기와 연동해 만 60세인 현재의 정년을 64세로 연장해 소득 공백 기간인 '소득 크레바스'가 생기지 않게 하자는 게 노조의 요구다.

사측은 노조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년 연장은 단순히 현대차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 큰 파장을 불러올 예민한 주제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 외에 기아, 포스코, HD현대 노조도 정년연장을 올해 임단협의 핵심 요구안으로 들이민 상태다.


섣부른 정년 연장 오히려 독…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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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소득 공백을 메우거나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정년 연장이 사회적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이미 정년 퇴직자들을 촉탁직 등으로 재고용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 최대규모 단일 사업장인 현대차와 기아, 포스코 등에서 정년 연장 요구가 나오기 시작한 만큼 앞으로 크고 작은 사업장에서도 정년 연장이 주요 쟁점이 되고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연계해 2033년까지 65세를 목표로 1단계씩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늘려가는 방식을 주장하며 국민청원을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10년 정도 지나면 청년 인구가 감소해 정년 연장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사회에 돌아올 부담 등을 고려해 복합적, 점진적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조영태 서울대학교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2030년까지 일하는 인구가 233만 명 사라진다"며 "인구절벽이 체감되기 전에 생산성 유지 등 정년연장과 관련해 국가적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10년 정도 지나면 청년 인구가 가파르게 감소할 것"이라며 "생산인구 자체가 적기 때문에 청년 고용이나 고령 노동은 문제가 되는 사항이 아니다"라 말했다.

정년 연장이 젊은층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청년층의 부정적 정서도 예전에 비해 많이 무뎌졌다.

직장인 김모(26)씨는 "평균 수명도 늘어나고 청년층의 취업도 늦어지는 만큼 정년 연장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말했다.

취준생 박모(27)씨도 "정년 연장으로 취준생들의 취업 시장이 힘들어지는 것은 문제이지만 부모님을 보더라도 아직 일하는 데 무리가 없으시다. 정년 연장은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 말했다

문제는 사회적 기반 마련이다. 전문가들은 여러 문제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서서히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연금, 청년 고용 등 다양한 사회 서비스 및 기반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김유빈 위원은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 국민연금 같은 경우도 수급 연령을 조금씩 올리고 있다. 정년도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올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단순히 정년 연장을 해야 할지 말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과 수준으로 진행할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이 고령층만 가지고 정책을 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청년 고용 등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도 했다. 단순히 노년층의 소득 공백 때문에 정년 연장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기는 힘든 문제라는 것이다.

김 위원은 고용 보험, 사회 안전망 같은 복지의 영역도 정년 연장 논의 테이블에 올려놔야 할 주제라고 했다.


'더 일하기 싫어'…해외에서도 정년 대책은 가지각색


일본은 2021년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을 통해 기업들에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를 의무화했다.

법에 따라 70세까지의 고령자 취업 확보 조치를 내렸고 재취직 원조 조치의 노력 의무 대상을 확대했다.

고령자가 희망할 때 70세까지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기업이 정년인상, 계속고용제도의 도입 등 고령자취업확보조치의 노력 의무를 다해야 한다.

저출산 초고령 사회에 돌입하며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로 생산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는 고령 노동자도 노동 시장에 뛰어들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2021년 일본 고령사회백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는 2025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30%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고령노동자 고용을 확대할 수 밖에 없다. 유럽은 정부의 정년연장 개혁에 시민들이 반기를 들고 있다.

초고령사회에 한국보다 일찍 진입한 독일은 현재 65세인 정년을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67세까지 연장할 계획이다. 조기 퇴직으로 인한 연금이나 수당 등 사회보장 비용을 정년연장을 통해 감당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연금 수령을 늦추지 말자는 시민들의 반발도 심했다.

지난 1월 프랑스에서는 연금개혁의 일환으로 제시된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연합뉴스

프랑스에서는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저항의 강도가 셌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1월 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기존 62세였던 법정 정년을 2030년까지 64세로 상향하기로 결정했다. '정년 2년 연장안'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전역에 정년연장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프랑스는 한국과 달리 그 해 걷은 보험료로 연금을 주는 방식이다. 국내총생산(GDP)의 13.8%를 연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연금 지출 비중이 큰 상황에서 정년 연장을 통해 재정 압박을 피하려다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힌 셈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정년 논의를 연령에 따른 차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국은 나이를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고, 영국 역시 연령 차별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정년을 없앴다. 다만 육체 노동 강도가 높은 경찰과 군인 같은 직업군에는 정년퇴직을 허용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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