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몸을 풀던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 양 팀 선수들도, 순위 경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경기를 준비하던 두 사령탑과 코치진도, 경기장을 찾아온 팬들도 갑자기 쏟아진 매서운 폭우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5일 '2023 신한은행 SOL KBO 리그' 경기 시작을 30분 정도 앞둔 오후 6시. 서울 잠실 야구장에 뜬금없이 마른하늘에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소나기일 것이라는 생각에 경기장에 온 팬들은 떠나지 않고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경기장 관리자들은 곧바로 방수포를 덮는 등 비를 대비한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다. 외려 하늘에선 더 강하게 비가 내렸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비는 대기 중 수증기가 매우 많은 가운데 낮 동안 기온이 오르면서 수증기가 상승했고, 상층의 찬 공기와 만나 대기가 불안정해지면서 지역적으로 소나기 구름대가 매우 강하게 발달해 내렸다고 한다.
빗물에 그라운드가 점점 더 흥건히 젖었고, 결국 6시 55분께 전광판에는 "오늘 경기는 우천으로 인하여 취소되었습니다"는 공지가 떴다. 전광판을 본 팬들의 입에선 탄식이 쏟아졌고, 아쉽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양 팀은 갑작스러운 폭우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산은 올 시즌 19번째, 홈에서는 9번째로 우천 취소 경기다. 바로 지난 주말에도 롯데와 사직 원정 3연전 중 1, 2차전이 비로 순연됐다. 그 바람에 두산은 4일 올 시즌 첫 월요일 경기를 치러야 했다.
두산의 최근 일정은 다른 어떤 구단들과 비교해도 빠듯하다. 지난주 일요일(3일)부터 이번주 일요일(10일)까지 8일 동안 9경기를 치러야 하는 일정. 심지어 9일은 하루에 두 경기를 해야 하는 더블헤더가 예정돼 있다.
일단 두산은 숨을 고를 수 있게 됐다. '9연전 강행군' 속 3번째 경기를 앞두고 내린 폭우가 다행인 셈이다.
앞서 두산 이승엽 감독은 이날 KIA와 일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몰린 경기들로) 어떻게 보면 올해 중 가장 중요한 한 주가 될 수도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조금 힘들더라도 이번 일주일은 좀 집중을 더 해야 한다"며 부담스러운 일정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또 선발진에 생겼던 공백 탓에 '대체 선발' 최원준을 5일 선발 투수로 내보낼 예정이었지만 로테이션을 피하게 됐다. 결과적으론 두산 입장에서 '크게 나쁠 것 없었던 폭우'였다.
KIA의 상황은 같은 듯 다르다.
우선 KIA도 이날 선발 투수진에 생겼던 구멍 때문에 황동하를 대체 선발로 마운드에 올릴 예정이었다. 두산과 마찬가지로 이 상황은 면할 수 있게 됐다.
경기가 미뤄지면서 황동하는 다음 대체 선발이 필요할 때 기용할 수도 있다. 대체 선발 순번을 거른 KIA는 토마스 파노니를 6일 선발 투수로 예고했다.
그러나 KIA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벌써 올 시즌 21번째 우천 취소라는 점 때문이다.
KIA는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경기를 비 때문에 걸렀다. 키움 히어로즈가 125경기로 지금까지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르는 동안 KIA의 경기 수는 108경기뿐. 17경기나 차이 난다.
5일 경기가 밀리기 전에도 KIA의 잔여 일정은 빽빽하게 남아 있었다. 안 그래도 KIA는 모든 시즌이 마무리된 후에도 남은 경기들을 치러야 하는데, 여기에 1경기가 더 추가된 것이다. 게다가 더블헤더는 3번이나 예정돼 있다.
남은 일정이 껄끄러운 상대들과 대결이 많다는 점도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KIA의 잔여 경기 수는 36경기. 이 중 28경기가 현재 5강권에 랭크된 팀들과 격돌이다.
하지만 반전의 요소도 있다. 현재 부상 중인 산체스와 부상에서 갓 회복해 돌아온 이의리다.
KIA 김종국 감독은 같은 날 경기 시작 전 "걱정은 선발 투수"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산체스가 부상으로 빠진 문제가 있고, 이의리도 지난 일요일에 합류했지만 더 빨리 컨디션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 감독의 말대로, 현재는 이 둘이 빠진 선발 투수진은 KIA의 큰 걱정이다. 그러나 이 둘이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고 제 컨디션을 되찾아 잔여 경기에서 활약한다면, 오히려 밀린 경기들이 감사할 상황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