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폐암 인정됐지만…"아직 갈 길 멀어"

12년 만에 첫 폐암 발병 상관성 인정
여전히 개별심사 영역…장기화 불가피
노출 피해자들, 암 발생 가능성에 '불안'

지난달 31일 서울역 앞 계단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12주기 캠페인 및 기자회견. 연합뉴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의 폐암 유발 상관성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다만 기존 신속심사 대상인 질환과는 달리 폐암은 여전히 개별심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피해 인정에는 상당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상관성 인정하지만 "개별심사 필요"


환경부는 5일 제36차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에서 폐암 사망자 1명에 대해 처음으로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인정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발생한 지 12년 만이다.
   
2021년 7월 폐암 피해를 인정받은 피해자가 1명 있긴 했지만 젊은 연령(20대)과 비흡연 등 생활환경, 노출·잠복기간 등을 고려했을 때 살균제 외엔 폐암 발병을 설명할 요인이 없다는 점이 인정된 사례였다.
   
앞서 2019년과 2021년 동물실험에서 가습기살균제 물질이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고 지난해 3월엔 사람 폐세포에 대한 연구에서도 상관성이 확인됐다.
   
환경부는 "독성연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PHMG) 노출 시 폐암이 발병할 수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도출됐다"며 "다만 살균제 사용 후 폐암이 발병했더라도 타 유발요인이 있을 수 있어 개별 폐암 피해 판정 시에는 사례별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간질성폐질환이나 천식, 폐렴 등은 '신속심사' 대상이지만 폐암은 여전히 '개별심사' 대상으로 남았다. 신속심사 대상이 되면 국민건강보호법상 요양급여비 청구자료 등으로 빠르게 피해 구제 여부가 결정되지만 개별심사 대상의 경우 건강보험공단 자료와 피해자의 의무기록, 진술 등을 토대로 전문위원회가 심사를 하기 때문에 판정까지 수년이 걸린다.
   
이날 온라인 기자회견을 연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폐암을 신속심사 대상 질환으로 결정하고 인정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전문가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며 "개별심사로만 진행한다면 폐암 피해자들은 다시 수년간 판정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고통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사에 장기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흡연 이력이 있거나 연령이 많다는 이유 등으로 불인정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암 발병 가능성 확인에 더 불안…구제 범위 넓혀야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단체 관계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가해기업 책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위원회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신청한 사람은 7862명이며, 구제 급여를 받게된 대상자는 5176명으로 늘었다. 현재까지 지급을 받은 수급자는 3607명이며 총 지원 액수는 1406억원이다. 구제 급여를 신청자 중 폐암 진단을 받은 사람은 206에 달한다.
   
이번 결과에 대해 이미 각종 질환을 앓고 있는 피해자들은 추가로 암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는 한편, 다른 질환에 대해서도 구제 여부를 검토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앞서 환경보건시민센터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명순씨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폐질환, 호흡기 질환만 있는 것이 아니"라며 "많은 피해자들이 피부 등 각기 다른 증상으로 고통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이씨의 남편은 애경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사용한 후 폐암으로 사망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인정될 경우 지급되는 구제급여는 생존 피해자의 경우 요양급여(치료비 중 피해자 부담액)와 요양생활수당(월 17.3만~197만원), 간병비(일 4.1만~6.7만원), 장해급여(약 3981만~1억9907만원) 등이며, 사망 피해자의 경우 장의비(약 310만원)와 특별유족조위금(1억1781만원) 등이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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