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초등학교 교사의 49재인 4일, 전국에서 모여든 교사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촉구했다.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은 '공교육 멈춤의 날' 추모행사에 참석한 동료 교사들로 북적였다. 검은 옷을 입은 교사들은 노란색, 주황색, 분홍색 카네이션을 손에 쥐고 숨진 서이초 교사 A씨를 추모하며 헌화했다.
교사들은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진상규명이 추모다', '교권보호합의안 의결하라'고 쓰인 팻말을 흔들며 "진상규명이 추모다, 진실을 알고 싶다"고 구호를 외쳤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추모행사에 교사 및 시민 2만여 명이 모였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A씨 유가족의 편지가 낭독됐다. A씨의 모친은 편지를 통해 "앞으로 진실 찾기에 더 신경을 써서 그렇게 떠나야만 했던 너의 한을 풀어 주겠다"며 "그렇게 하는 것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교권의 사기 진작에 대한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이며 작은 위로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추모행사에 참석한 정신건강의 김현수 원장은 "더 이상 교사들이 교사의 능력을 뛰어넘는 온갖 업무를 혼자 감당해선 안 된다"며 "교육부가, 교육청이, 또 학교에 시스템을 세워야 하는 분들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고(故) 서이초 교사 진상규명 △5개 교원단체가 합동 발표한 '교원보호 입법발의 공동안' 의결 △안전하고 존중받는 교육환경 조성 등을 요구했다.
교사들은 그동안 교직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고충에 공감했다. 22년간 수도권에서 초등학교 특수교사로 일한 50대 이모씨는 정신과 치료로 이번 학기에 병가를 냈다. 이씨는 교사들이 관리자 등 외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혼자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교사는 어디 한 군데서도 나를 보호해 주거나 내가 힘들 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무것도 없는 '외로운 섬' 같다"며 "그래서 교사들이 그 (힘든) 순간을 못 견디고 이렇게 아픈 선택을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계속 교사들이 사망하니까 (나도) 자꾸 심장이 조이고 약을 먹어도 잠을 잘 잘 수 없고 많이 힘들다"며 "정신과 진료를 받고 약도 계속 먹고 있다"고 덧붙였다.
16년 차 교사인 권모씨도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내가 겪었고,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을 일이라는 동질 의식을 느껴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추모행사에는 사망한 A씨와 같은 초등학교 교사 뿐 아니라 초등교사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사도 참석했다.
병가를 내고 추모행사에 참석한 고등학교 교사 50대 B씨는 "A씨는 초등학교 교사이지만 동료 교사이기도 해서 마음이 아파서 참석했다"며 "일단 마음의 병이니 이곳에 와야 치료가 될 것 같아서 '병가'를 내고 왔다"고 말했다.
B씨는 고등학교 교사보다 초등학교 교사가 더 힘든 현실을 지적했다. B씨는 "애들이 어리니까 교사가 잘못하면 너무 큰 부담을 갖게 된다"며 "상황이 복잡해지면 결국 애들에게 피해가 가니까 어쩔 수 없이 (교사가) 수용하게 되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모인 교사들은 이번 집회를 '불법 집단행동'으로 규정한 학교와 교육부를 더이상 믿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오늘 하루 재량 휴업을 허용하면 겨울 방학을 하루 줄여서 학습일 결손도 없었을 것"이라며 "교육부는 옛날 식으로 계속 교사들을 탄압하고 징계하고 협박하고 겁박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B씨는 "교육부라는 집단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교사를 지켜주겠다고 했으면서 이제 일이 벌어지니 처벌만 한다고 한다. 이렇게 이율배반적인데 그들을 믿고 행동할 수 있겠나"며 "특히 그 위에 '장'이라는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주최 측은 '사전에 정해진 구호 외에는 외치지 말아달라', '주최 측이 나눠주는 팻말 이외에 전단지를 받지 말라'며 개별 교사들의 정치적 입장 표출을 막았다. 정부가 교사들의 집단행위를 불법행위로 규정한 것을 우려해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교사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