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탐라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기록 '물꽃의 전설'

다큐멘터리 영화 '물꽃의 전설'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제주 해녀들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온 고희영 감독이 '물숨'에 이어 다시 한번 그들의 삶에 다가갔다. 사라져가고 있는 제주 해녀와 그들의 터전이자 생명의 근간인 제주 바다를 사려 깊게 포착한 감독은 이 모든 것이 '전설'이 아닌 '현재'로 남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물꽃의 전설'은 일평생을 제주의 모든 것을 품고 제주의 모든 것 안에서 살아온 대상군(해녀 계급 중 가장 높은 계급) 해녀 현순직씨와 서울에서 다시 제주로 돌아와 다시금 제주를 일생 안에 품으려는 막내 해녀 채지애씨의 바다만큼 깊은 유대를 보여주며 잊혀 가고 사라져가는 제주를 기록해 나간다.

87년 경력 현순직 해녀는 전복과 소라가 가득하고 물꽃이 만개했던 바닷속 비밀 곳간이 늘 그립다. 반면 서울에서 고향 제주로 돌아와 물질을 시작한 채지애 해녀는 삼달리 해녀라면 누구나 가 보고 싶다는 그 곳간이 궁금하다. 상군 해녀와 막내 해녀라는 간극에도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두 사람은 물꽃이 손짓하는 비밀의 화원을 다시 보기 위해 나선다.
 
'물숨'으로 해녀 중에서도 가장 강인하기로 소문난 제주 우도 해녀를 다뤘던 고희영 감독이 이번엔 제주 최고령 상군 현순직 해녀와 막내 채지애 해녀가 전설로 남은 물꽃을 다시 보기 위해 떠난 여정을 담은 '물꽃의 전설'로 돌아왔다.
 
다큐멘터리 영화 '물꽃의 전설'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제33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한 '물꽃의 전설'은 은퇴를 앞둔 현순직 해녀와 육지에 살다 다시 제주로 돌아온 채지애 해녀를 앞세워 과거 제주 청정 바다에 존재했던 물꽃 이야기를 장장 6년에 걸쳐 담아냈다. 세대를 뛰어넘는 두 해녀의 유대와 그들의 모든 것인 제주 바다의 전경을 고 감독은 치열하면서도 세심하게 포착해 냈다.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를 통해 보다 친숙해진 해녀 이야기에 가장 깊게 그리고 가장 애정 어리게 다가가는 감독이 바로 고희영 감독이다. 그는 '물꽃의 전설'을 통해 제주 해녀와 그곳의 바다, 그곳의 문화를 다뤘다.
 
영화가 보여주는 제주의 모든 것이 가진 서글픈 공통점은 사라져가고 있는 제주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해녀도, 제주어(제주 방언)도, 바다도, 이제는 옛 모습을 잃고 점차 사라져가는 제주의 고유한 풍경들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물꽃의 전설'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87년 경력 대상군 해녀 현순직씨와 서울에서 귀향한 막내 해녀 채지애씨, 둘은 '바다'라는 자연에서 '해녀'라는 공통점으로 만나 세대를 초월해 바다만큼 깊고 아름다운 유대를 지니고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두 해녀는 구전으로 전해지며 어느덧 '전설'이 된 '물꽃'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 두 해녀가 마주한 것은 물꽃의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든 황폐화된 제주 바다의 모습이다.
 
현순직 해녀의 기억 속 제주 바다는 물꽃의 전설이 단순한 전설이 아닌 어딘가에 살아 숨쉬는 신비였다. 그러나 현순직 해녀가 느끼고 직접 바라본 제주의 바다는 점차 하나둘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바다는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점차 그 빛이 사라진 것이다.
 
제주 바다의 황폐화와 함께 제주 해녀의 삶도 점차 그 빛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바다로 인해 살아가고 바다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해녀들에게 그들의 일생이 오롯이 담긴 바다의 상실은 삶의 상실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점차 빛을 잃어가는 바다로 뛰어든 막내 해녀 채지애씨는 늘 눈앞에 바다가 아른거린다. 그만큼 채지애 해녀에게 바다는 모든 것이자 사랑이다. 현순직 해녀가 그래왔고, 지금도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물꽃의 전설'을 보며 우리는 현순직 해녀와 채지애 해녀 등 제주 해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경각심을 갖고 분노하고 또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바다를 연결고리로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동료이자 친구가 된 대상군 해녀와 막내 해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바다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에게 삶과 생명을 내어준다. 그러한 소중한 연결고리이자 함께해야 할 바다는 인간으로 인해 오늘도 또 하나의 전설을 잃어버리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물꽃의 전설'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이처럼 영화는 단순히 해녀와 해녀의 유대, 해녀의 삶 그리고 구전으로만 이어져 오는 전설 속 물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지켜오고 이뤄내며 지금의 영화에 그려지기까지 그 터전을 제공한 제주 바다에 대한 이야기이자 현재 인간으로 인해 죽어가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만약 우리가 계속 자연에 무감각해지고, 바다에 대한 유대감을 가질 수 없다면, 제주 바다를 비롯한 바다라는 생명의 근간이 영화 속 물꽃처럼 전설로 남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고희영 감독은 사라져가고 있는 제주의 문화와 풍광, 사람들 역시 영화 속에 모두 담았다. 이 안에는 제주 해녀들이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는 제주의 모든 것과 그 모든 것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찬찬히 담아 온 감독의 마음이 녹아있다. 그리고 감독은 관객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현순직 해녀와 채지애 해녀와 함께해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제주의 모든 것이 잊히지 않도록 함께 연대해 달라고 마음속 깊은 곳을 향해 외친다.
 
92분 상영, 8월 30일 개봉, 전체 관람가.

다큐멘터리 영화 '물꽃의 전설' 포스터.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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