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리그(MLB) 토론토 좌완 류현진(36)이 투수들의 무덤과 판정 불운 등 불리한 조건을 딛고 호투를 펼쳤다. 승리 요건을 채웠음에도 불펜 방화로 시즌 4승은 무산됐지만 팀 승리의 발판을 놓으면서 존재감을 뽐냈다.
류현진은 2일(한국 시각) 미국 쿠어스 필드에서 열린 콜로라도와 원정에 선발 등판해 5이닝 3탈삼진 4피안타(1홈런) 2볼넷 2실점 역투를 선보였다. 4 대 2로 앞선 6회말 류현진은 승리 요건을 갖추고 마운드를 우완 불펜 이미 가르시아에게 넘겼다.
최근 3연승의 기세를 이을 만한 호투였다. 류현진은 실투 1개로 홈런을 맞고 실점하긴 했지만 투수들에게 불리한 쿠어스 필드임을 감안하면 준수한 투구였다. 실제로 이날 토론토는 장단 17안타, 콜로라도는 12안타의 난타전을 펼쳤다.
사실 류현진도 쿠어스 필드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LA 다저스 시절 통산 6경기 26⅔이닝 1승 4패 평균자책점 7.09로 고전했다. 홈런도 8개나 맞았다. MLB 1경기 개인 최다 실점도 2017년 5월 10일 콜로라도와 원정 당시 4이닝 8피안타 5자책 10실점이었다. 해발 고도 1610m로 공기 저항이 적어 타구가 쭉쭉 뻗는 투수들의 무덤다웠다.
하지만 류현진은 4년여 만의 쿠어스 필드 등판에서 건재를 과시했다. 역시 다저스 시절이던 2019년 8월 이후 처음 콜로라도 원정에 나선 류현진은 1, 2회를 깔끔하게 막았다.
1회 선두 타자 찰리 블랙먼에게 8구 끝에 중전 안타성 타구를 맞았지만 수비 시프트로 처리했다. 이후 류현진은 에세키엘 토바와 엘리아스 디아스를 상대로 컷 패스트볼로 연속 삼진을 잡아냈다. 2회도 류현진은 공 6개를 던져 내야 땅볼 3개로 삼자 범퇴를 만들었다.
3회가 아쉬웠다. 류현진은 선두 좌타자 놀런 존스에 우전 안타를 맞은 뒤 우타 거포 엘레우리스 몬테로에게 던진 4구째 체인지업이 밋밋하게 가면서 좌월 선제 2점 홈런을 내줬다. 1사 후 블랙먼에게 볼넷, 토바에게 좌측 담장 직격 2루타를 맞고 2, 3루에 몰렸지만 류현진은 디아스의 땅볼을 직접 잡아 아웃을 만들었고, 4번 좌타자 라이언 맥마흔을 낙차 큰 커브로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워 위기를 넘겼다.
이날 4회가 압권이었다. 류현진은 4회말 1사 후 헌터 굿맨에게 중전 안타를 내주고 존스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풀 카운트에서 바깥쪽 높은 직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꽂았지만 앙헬 에르난데스 구심은 볼을 선언했다. 에르난데스 구심은 MLB에서 여러 차례 볼 판정 논란을 빚은 인물로 2017년 디트로이트에서 뛰던 이언 킨슬러가 에르난데스 구심의 판정에 대해 "차라리 다른 일(직업)을 알아보라"고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흔들리지 않았다. 앞선 타석에서 홈런을 맞은 몬테로에게 빠른 공으로 땅볼을 유도했다. 2루수 병살타로 처리하면서 실점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날 류현진은 76개 투구 중 패스트볼은 37개였고, 컷 패스트볼(커터·17구)과 커브(12구), 체인지업(10구) 등 변화구를 적절하게 섞었다. 최고 구속은 90.1마일(약 145km)였지만 절묘한 제구로 상대 타선을 요리했다.
류현진은 호투에도 불펜 방화로 승리를 얻지 못했다. 가르시아가 6회 역전 3점 홈런을 맞으면서 류현진의 승리도 날아갔다. 류현진은 시즌 3승 1패를 유지했고, 평균자책점은 2.48로 소폭 상승했다.
다만 토론토는 7회 대거 5점을 뽑아내며 재역전에 성공했다. 8회 1점, 9회 3점을 보탠 토론토는 13 대 9 승리를 거뒀다.
류현진의 호투가 발판이 된 셈이다. 이날 상대 선발인 KBO 리그 출신 크리스 플렉센은 5⅔이닝 동안 홈런 3방을 허용하고 4실점했지만 역시 패전을 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