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시작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싸고 다핵종제거설비(ALPS)가 처리하지 못한 '삼중수소'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국내 여러 전문가들은 대체로 삼중수소를 기준치 이하로 희석해 바다에 방류한다는 일본 정부의 조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준치 이하의 미량의 방사능 물질이라도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반론이 만만찮다. 오염수 안전성 논쟁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준치 이하에 체내 축적 안 된다며 괜찮다는 정부‧전문가
정부는 삼중수소를 제외한 오염수 내 방사성 물질이 ALPS를 거쳐 기준치 이하로 낮춰진 상태로 방류되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하다며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8일에도 도쿄전력이 게시한 삼중수소 등 측정·평가 대상 핵종 30개와 추가로 공개하기로 약속한 39개 핵종에 대한 분석값이 모두 안전 기준치를 밑돌아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오염수의 안전성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많은 전문가들도 언론에 나와 정부의 입장과 궤를 같이 했다.
강건욱 서울대 핵의학과 명예교수는 지난달 24일 MBC '뉴스외전 이슈+'에 출연해 삼중수소를 제외한 세슘, 스트론튬, 요오드 등 오염수에 포함된 나머지 방사성 물질들은 ALPS에 의해 기준치 이하로 방류된다며 "인체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삼중수소에 대해서도 기준치 이하로 희석되고 체내에도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인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발간한 자료집 '후쿠시마 오염수 10가지 괴담'에서 일본 정부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치(1만㏃/ℓ)보다 훨씬 적은 1500㏃/ℓ의 농도로 삼중수소를 희석한다며, 일상에서 접하는 커피(4900Bq), 바나나(6000Bq)보다 적은 수준으로 소개했다. 또한 물 형태로 존재하는 삼중수소는 사람과 물고기 등 생태계에 농축되지 않는다며 '무시해도 될 수준'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강 교수도 삼중수소가 바다에 방류된 뒤에는 측정 힘든 수준으로 희석될 뿐만 아니라 체내에 유입돼도 "소변이나 땀을 통해 인체에 축적되지 않고 빠져나간다. 물고기의 경우 더 빨리 빠져나간다"며 삼중수소의 유해성 및 체내 축적 가능성을 배제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역시 지난 6월 정부 공식 사이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과의 인터뷰에서 삼중수소수가 인체에 남아 있는 유기결합된 삼중수소는 "2% 수준으로 낮다"며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해도 된다고 말했다.
방사선 종사자 10만명 추적…"저선량 방사선 쐐도 암 130% 증가"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주장이 성급하고 검증되지 않았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우선 이들은 방사성 물질의 안전 기준치가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기준치는 그냥 사람이 정해놓은 것"일 뿐이라며 인체에 노출되는 방사능이 기준치 이하인지를 따지기 보다는 방사능이 몸에 누적된다는 점에 주목해야한다고 말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기준치는 지금까지 계속 변화해왔다"며 "문제 발생 가능성의 기준이 아닌 최소한의 관리 기준"일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방사선 작업 종사자들이 허용된 연간 방사선량보다 현저히 낮은 저선량 피폭만으로 암 사망 위험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대규모 연구가 발표되며 방사선 기준치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1944년부터 미국·영국·프랑스 3개국의 원자력산업 종사자 30만명 중 사망자 10만명의 사망 원인을 70여년간 추적한 결과, 누적 흡수선량 20mGy 이하의 방사선으로도 고형암(세포로 이뤄진 단단한 덩어리 형태의 암) 사망위험이 Gy당 130%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Gy는 물질이 흡수한 방사선 에너지를 나타내는 흡수선량, Sv는 방사선으로 인한 인체 영향을 고려한 유효선량 단위로 같은 크기의 단위로 여겨진다.
즉, 20mGy(그레이)는 우리나라 국민이 1년 동안 평균적으로 받는 자연 방사선 3mSv(밀리시버트)를 약 7년간 축적한 기준치 이하의 '저선량' 방사선이라고 볼 수 있다. 방사선 작업 종사자들에게 허용되는 연간 누적 선량한도 50mSv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서 교수는 "기준치 이하의 저선량 방사선 노출이 고형암 발생 확률을 최소 2배 정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며 이로 인해 기준치 이하의 방사선 노출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논리가 흔들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자력계에서 그동안 성경처럼 받아들인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은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거둬야할 때"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먹이사슬 최상위층…가장 농축된 방사선에 노출"
ALPS가 처리하지 못하는 삼중수소에 대한 체내 축적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오염수를 통해 체내에 들어온 삼중수소가 축적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DNA 손상 등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먹이사슬'에 주목한다. 인간이 먹이사슬 최상위층에 있기 때문에 가장 농축된 삼중수소에 노출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유기결합된 삼중수소가 2% 수준의 미량이더라도 유기결합을 통해 몸에 축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음에는 어류에 미량의 삼중수소만 축적되더라도 지속적인 삼중수소 노출과 먹이사슬을 거치면서 얼마든지 농축될 수 있다며 '생물 농축 확대' 현상을 설명했다.
생물 농축 확대는 물이나 먹이를 통해 생물에게 유입된 오염물질이 분해되지 않고 잔류하면서, 먹이사슬 상위 단계로 올라갈수록 생물들의 체내 농축이 연쇄적으로 발생해 심화되는 현상이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도 "광합성 작용을 통해 유기결합된 삼중수소가 해조류에서부터 작은 물고기, 큰 물고기를 거쳐 축적을 거듭해 농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티머시 무쏘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 생물학 교수 역시 지난 4월 한국에서 열린 그린피스 기자회견에서 "삼중수소 피폭의 영향이 먹이사슬 상위 단계로 갈수록 커지고, 특히 여러 세대를 거쳐 축적되면서 종 유전자 변형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이 기사는 1일자로 노컷비즈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