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긴축에 경기대응 괜찮을까…R&D도 뭉터기 삭감

세수부족에도 건전재정 강조하면 택한 2.8% 지출 증가
빚내지 않고 인기영합의 길 걷지 않겠다며 결단했지만
내수·수출 모두 부진한 상황에 중국발 경제위기 우려까지
"경기부진에도 지출 유지 않다가 다시 세수 부족해지는 악순환 우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역대 최저 수준인 2.8% 늘리기로 했다.

그 동안 방만했던 국가 경영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재정건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인데, 경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건전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역대 최저 예산 증가율 2.8%…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낮아


기재부 제공

정부가 2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4년 예산안의 총지출은 656조 9천억 원이다.

올해 예산보다 18조 2천억 원이 늘어났는데, 증가율로 따져보면 2.8%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만큼 사실상의 긴축 재정 정책을 펼친 셈이다.

2.8%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했던 역대 정부에서의 지출 증가율보다도 더 낮은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가 2010년, 박근혜 정부가 2016년 각각 2.9%의 지출 증가율을 기록했는데 이 보다 0.1%p가 더 낮다.

본예산을 기준 정부가 재정 통계를 정비한 2005년 이후 역대 최저치 증가율이기도 하다.


줄어드는 국세수입에도 '건전재정' 강조…선택지 지출 증가폭 최소화 뿐


박종민 기자

정부는 이처럼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 현재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예산안과 같은 날 발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도 국세수입 규모는 367조 4천억 원으로 전망된다.

올해 국세수입 예산인 400조 5천억 원보다 8.3%나 적은 수준인데, 먼저 수립된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의 2024년 국세수입 전망치인 418조 8천억 원보다는 무려 12.8%나 적어진 수치다.

들어올 돈이 줄어드는데 마냥 지출을 늘릴 수 없었던 것이다.

커지고 있는 세수결손 우려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올 상반기 국세수입은 이미 지난해 상반기보다 39조 7천억 원이 덜 걷혔다.

경기둔화로 인한 기업활동 부진과 부동산·자산시장 침체가 맞물린 탓에 법인세수가 16조 8천억 원, 소득세수가 11조 6천억 원 각각 줄어든 영향이 컸다.

국세수입 진도율이 44.6%로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더딘 탓에 하반기에 지난해 수준으로 세금을 걷는다고 해도 40조 원 이상의 결손이 불가피하다.

유사한 상황이 내년에도 벌어질 수 있는데 지출만 늘려놓았다가는 올해 이상의 세수결손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윤석열 정부는 대규모 국채 발행 지속을 통한 재정 지출 확대라는 인기영합적인 쉬운 길 대신 미래를 위해 어렵지만 꼭 가야 하는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빚을 내지 않고 있는 범위 내에서 지출을 정하겠다는 기조가 서 있는 만큼 지출 증가폭은 낮을 수밖에 없다.


소비·투자 등 부진한 내수에 중국 등 글로벌 경기 전망도 암울…"'경기 부진→세수 부족→지출 감소→경기 악화' 악순환 우려"


스마트이미지 제공

문제는 정부의 바람과 달리 하반기와 내년 경제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7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4%로 낮췄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안에 경기 부진의 흐름을 반전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 전망치보다 낮은 1.3%를 전망했다.

임금 상승률 정체와 고물가 등으로 약해진 내수와 역성장이 전망되는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등 국내 요인도 문제지만 중국발 경제위기의 가능성 또한 우려의 지점이다.

중국이 리오프닝에 나섰음에도 수출 회복은 더딘 상황이고, 최근에는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발 디폴트 위기가 불거지는 등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외 주요국 경기 또한 회복이 더딘 만큼 내수와 수출 모두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재정까지 긴축하는 것이 맞는 판단이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초격차 등을 강조하며 기술주도에 무게를 뒀던 현 정부인만큼 R&D(연구개발) 예산만큼은 증액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R&D 예산은 올해보다 무려 16.6%나 감액됐다.

R&D 예산이 전년보다 줄어든 것은 1991년 이후 33년만인데, 지난해 관련 예산 30조원 돌파를 강조했던 것이 무색해졌다.

충남대 정세은 경제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세수 기반이 줄었는데 경기마저 좋지 않으면 국채를 발행해서 지출을 어느 정도 유지시키는 것이 경기침체 기간의 보통의 정책 스타일"이라며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고려하면 내년에 경상성장률이 4.7% 수준은 달성해야 하는데 지출을 이런 식으로 줄이면 성장이 좋지 않아지고, 다시 세수가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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