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사과조차 안한 '신림동 조선'…가석방 없는 종신형 대책일까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 피의자 최윤종이 25일 오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구속 송치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일상생활 속 심심찮게 듣는 말입니다. 사소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배신감을 느끼고 상대방을 흉볼 때,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지른 상대를 힐난할 때도 이 말을 쓰곤 하죠. 그러고 보면 우리 문화에는 교정이나 교화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는 경향이 내재돼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고 도망가는 사람의 옷자락까지 붙잡아 수차례 찌른 조선(33). 1명이 죽고 3명이 다친 데다 평일 낮 도심에서 벌어진 무차별 살상이었다는 점에서 국민이 받은 충격은 '테러'에 가까웠습니다.

이 사건 후로 엇비슷한 '묻지마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고 시내에 장갑차까지 동원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당정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과 사법입원제, 흉기소지죄 등을 도입하겠다며 입법을 추진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인권'을 둘러싼 설전이 연일 벌어지고 있고요.

마치 조선은 우리 사회 저변에 응축해있던 분노를 폭발시켜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 조선이 지난 23일 죗값을 받기 위해 법정에 섰습니다. 그가 치러야 할 '죗값'은 얼마여야 할까요?

두 명의 살인범…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갈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오기까지만 해도 조선은 다른 살인범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습니다. 재판 시작부터 눈을 감은 채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는데, 특히 검찰이 또래 남성에 대한 열등감을 언급하자 두 손으로 이마를 감쌌습니다.

2023. 08. 23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 공판 中
검찰: 피고인이 7세 무렵 부모가 이혼하고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고모 손에 양육되는 등 불안정한 삶을 살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다 2006년 특수강도죄 등으로 소년법상 제7호 처분을 받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부모 이혼 후 고모집에서 살게 된 것에 늘 불만을 갖고 학습에 관심 없이 방과 후 게임하며 시간을 보냈으며 자신에 대한 자아존중감이 낮았고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며 현실적응 능력과 행정 통제능력이 부족한 경향을 보이는 등 또래들과 다른 자신의 성장환경 등에 대해 열등감과 분노를 품게 됐습니다. …(중략)

혼자서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반복하던 중 또래 남성과 비교할 때 불우한 환경, 구직난, 사회적 유대관계의 단절,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너무 비참해진 것 같단 생각이 들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에는 억눌려 있던 또래 남성에 대한 열등감, 좌절감, 분노 등을 재차 느끼게 됐고 이에 피고인은 친구들과 술을 자주 마시던 서울 신림역 일대에서 남성들을 대상으로 열등감과 분노 표출,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기로 결심하고, 부모 대신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고모 집에 거주하던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다음에 신림역으로 이동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변호인:  기초사실 중 범행동기 부분 관련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피고인은 특별히 공소장에 기재된 바와 같이 남성들에 대한 열등감 내지 분노를 품은 사실이 없습니다. 피고인이 그와 같은 사유로 또래 남성에 대해 무차별 살상을 결심했다는 기재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재판부: 그러면 피고인 범행 동기가 뭐예요?

변호인: 당시 본인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피해망상을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닮은 듯한 남성들을 공격한 것으로 의견을 밝혔는데 구체적 내용은 변호인 의견으로 제출하겠습니다. …피고인이 그 피해자들을 살해하려 했다는 고의는 일체 부인합니다. 다만 피해자들에게 자신이 이런 피해를 끼친 점은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있습니다.

'신림동 흉기난동 살인 사건' 피의자 조선. 연합뉴스

조씨 측은 범행 고의가 없었음은 물론, 또래에 대한 열등감이 아닌 피해망상을 동기로 내세웠죠. 전형적으로 죗값을 덜려는 수법으로, 언론에서 크게 다루는 살인 사건의 피고인들 대부분 이런 식으로 다퉈왔습니다.

조선이 달랐던 부분은 '태도'였습니다. 대부분 일말의 동정심을 사기 위해 최소한 반성하는 모습,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칩니다. 진심이든 전략이든 간에요. 조선은 재판부가 기회를 줬음에도 어떠한 반성의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거든요.

2023. 08. 23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 공판 中
재판부: 차회 기일에 변호인이 의견 밝히시면 양형에 앞서 증거조사 할 거고, 증인신청 준비해 주세요. 피고인, 하고 싶은 얘기 있어요?

피고인(조선): …

재판부: 딱히 없으면 재판 끝나기 전에 유리한 사실을 말할 기회가 있으니 적절히 의견 말하세요.

조씨라고 해서 이때가 사죄의 말을 직접 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조씨는 계속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였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다가 다시 눈을 떴다가 한숨만 계속 내쉬기를 반복했습니다.

조씨가 후회를 하고 있었는지 억울해했던 건지 제3자로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형사 법정에 드나들다보면 흉악범들이라 해도 대체로 입에 발린 사과는 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피해자를 스토킹한 후 신당역 화장실에서 살해한 전주환, 음주운전을 하다 청담동 스쿨존에서 초등생을 치여 죽게 한 고모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2023.1.10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1부, 전주환 보복살해 혐의 결심공판
검찰: 수사검사로서 피고인의 본건 범행 내용과 구별해 피고인의 인간적 모습을 찾아보려 했으나 심리 근저엔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을 찾아볼 수 없고 피해자로 인해 내가 범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또 고통받고 있다는 자기중심적 생각만 가득합니다. 피고인에게서 참회의 모습 찾아볼 수 없었고 향후에도 교화 여지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동일한 범행 재발 방지를 위해 피고인에 대해 가장 중한 선고가 불가피합니다. 이에 따라 피곤에 대해 법정최고형 사형을 구형합니다.

변호인: 피고인이 폭력 성향을 보이는 범죄로 수사받거나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과 성장과정, 사회생활을 종합해 살펴볼때 살인 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은 있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장기간의 징역형 선고만으로도 재범 방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참작해서 선처 해주시고 마지막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부: 피고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

피고인(전주환): 저는 돌이킬수 없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잘못을 저지르고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 이에 먼저 피해자님과 유족분들께 대단히 죄송스럽다는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한 모든 행동들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겠습니다. 저의 잘못된 행동을 책임지기 위해 앞으로 제게 주어진 남은 날들 동안 제 평생을, 저의 잘못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끊임없이 뉘우치고 후회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다른 점이 느껴지시나요? 흉악범들이라고 해도 사형을 구형해 달라고도 하기도 하고, 아니면 진심으로 뉘우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적어도 법정의 엄숙한 공기에 주눅 든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자, 그럼 검사의 말마따나 참회의 모습도 없고 향후 교화의 여지도 없는 흉악범들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래의 석방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무차별 살상을 저질렀을까

법이 허락하는 최고 수준의 형량을 선고하라는 것이 지금 여론인 것 같긴 합니다. 서울경제신문이 이달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2%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찬성한다고 답했거든요.

법무부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절대적 종신형)'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형 집행 공백이 발생했고, 무기형을 선고받아도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가능성이 커 국민 불안이 가중됐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조씨의 범행 이후 서현역 칼부림 사건, 등산로 성폭행 사건이 잇따르자 치안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과 공포가 시민들 사이에 자리잡았고 이에 따라 내놓은 방책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사형제 위헌 여부를 놓고 세번째 헌법재판소 심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사형제 폐지 반대 입장을 줄곧 고수해 온 법무부의 입맛에도 맞는 정책 방향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조선이라는 살인범이, 아무런 죄책감도 없어 보이는 이 흉악한 살인범이 어느날 아침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닐 테죠. 당연히 국회에서는 예방책과 함께 이 '절대적 종신형'을 둘러싼 '인권 공방'이 벌어졌는데,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뭐라고 답했을까요?

2023. 8. 23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中
김영배 의원: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를 보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형제 폐지가 오랜 논란이었고 독일 인권재판소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인간 존엄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국제규범이나 해외 입법례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한동훈 장관: 우리 법제 기준으로 보면 사형제는 합헌이고 언제든 집행할 수 있습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법적 질서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둘째로 피해자나 남은 가족 인권을 생각하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영배 의원: 법원행정처 차장님께도 질문 드릴게요. 법원 입장에서는 사후적인 것이긴 하지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놓고 실질적 예방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상환 법원행정처 차장: 저희들 입법안에 대해서 근본적인 형사적 변화를 국회가 도모하는 것이라 국회가 결정할 사안이라는 대전제 하에서 말씀드립니다. 이론적인 면일 수 있지만 전혀 가석방 희망이 없는 종신형을 부과하는 것이 일반적인 범죄 예방 효과를 얼마나 줄지는, 전혀 희망의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는 데이터가 없습니다.

한동훈 장관: 법원에서 판단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는 겁니다. (중략) 저는 개인적으로 잠재적인 피의자에게 이 처벌로 당신에게 (가석방 될) 기회는 없을 거라고 메시지를 주는 게 무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법무부 입장은 '살인범 인권만 있고 피해자 인권은 없느냐'는 일반 국민 정서에 기초해 있습니다. 동시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은 고대 율법의 핵심이자 아주 오래된 인간의 본능적 정서이기도 할 겁니다. 교화 가능성을 강조한 '인권'이나 '기본권'처럼 계몽주의적 사고를 거쳐 만들어진 근대 이후의 인위적인 법과는 차이가 분명합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법무부의 답변도 보시죠.

2023. 8. 23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中
박범계 의원: 당연히 대중적으로, 포퓰리즘적으로 보면 가둬둔 사람을 절대 석방하지 않는 것, 생명을 앗아가는 사형이 환영받죠. 하지만 가석방 제도는 '인간은 교정하면 교정할 수 있다'는 철학에 기초로 둔, 엄연히 우리나라에도 활성화 되어 있고요. 교정행정이 잘 되어 있어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가석방 자체를 폄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됩니다.

한동훈 장관: 가석방 문제에 대해 예방효과, 교화효과가 언론에 많이 나오는데 형벌의 목적에는 그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죗값을 치르는 겁니다. 영구 격리로 부족할 정도로 흉포한 범죄가 있고 국민 공감대가 있고 이를 감안해야 합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와 유족 인권을 보호해야 합니다. 

'분당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22)이 10일 경기도 성남수정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조선, 최원종(분당 서현역), 최윤종(신림 등산로 성폭행범)까지, 과연 이들을 고쳐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장관의 답변을 보면 애초부터 '교화 가능성'을 그다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한 장관은 "엄벌과 필벌을 강조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그간 미뤘던 숙제 같은 것을 지금 신속히 진행하려는 거라고 말씀드린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이나 최원종이 '20년 후 가석방 될 테니 오늘 무차별 살상을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해서 범행에 나선 걸까요? 오랫동안 쌓인 좌절감과 분노에 사로잡혀 그런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십 년 후 가석방 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여론 때문이겠죠.
 
1990년대 명작 '쇼생크 탈출'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40년 만에 가석방 심사대 앞에 선 모건 프리먼은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젊고 멍청한 애가 한 명 있었고, 그 애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죠. 그 아이에게 말하고 싶어요. 그 아이에게 세상 이치를 알려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아이는 오래 전에 사라졌고 대신 이 늙은이만 남았으니까요"라고 말합니다. 그러곤 심사위원에게 "제가 교화됐냐고요? 헛소리는 집어치워요. 당신이 가져온 가석방 서류에 (불합격) 도장을 찍어요"라고 합니다.

10년 전 심사에선 불합격했던 모건 프리먼은 저 말 한마디에 결국 석방됩니다. 그는 40년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저렇게 솔직한 답을 할 수 있을 만큼 다른 사람이 돼 있었고, 심사위원은 이걸 '교화'의 일종으로 본 거겠죠.

앞으로 재판이 진행되는 짧은 시간 동안 조씨는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뒤에도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은 채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 20년 뒤에는 그가 어떤 사람이 돼있을지 누가 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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