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테니스 열풍 속에 운영 정상화 기대감이 높았던 대한테니스협회가 또 다시 위기를 맞았다. 수십억 원에 이르는 채무를 해결하지 못해 협회 행정이 마비된 데다 후원 계약도 끊길 처지에 놓였다.
협회 정희균 회장은 최근 시도 테니스협회장에게 "미디어윌에서 협회의 모든 계좌에 압류를 했다"고 전했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지난 9일 채권자 미디어윌의 채무자 협회에 대한 채권 압류를 결정해 통보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협회 명의의 통장은 모두 압류됐다. 사실상 협회 행정이 마비됐고, 당장 직원들 월급조차 지급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2년 만에 재현된 악몽이다. 2021년 9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 내 협회 사무실을 방문해 컴퓨터와 프린터 및 사무실 비품 등 협회의 유체 동산에 대한 강제 집행을 시행했다. 대한체육회 산하 종목 단체가 채무로 법원에서 압류 조치를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
협회와 미디어윌의 악연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곽용운 전 협회장이 미디어윌과 소송을 시작해 5년 법정 공방 끝에 패소하면서 60억 원이 넘는 채무가 발생했다. 이에 협회는 초유의 압류 사태를 겪었고, 2년 만에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초 협회는 주원홍 전 회장 시절인 2015년 알바천국, 벼룩시장 등을 운영하는 중견 기업 미디어윌에서 30억 원을 빌려 경기도 구리시 육군사관학교 테니스장을 리모델링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미디어윌이 테니스장을 위탁 운영하고, 협회에 30억 원 상환 불이행에 대한 민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협약도 체결했다.
하지만 이듬해 협회장 선거에서 곽 전 회장이 당선되면서 미디어윌과 계약을 이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미디어윌은 협회에 대여금 30억 원 반환 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에서 승소했다. 2021년 1월 협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정희균 회장은 그해 3월 대법원 상고를 취하해 원금과 이자 등 60억 원이 넘는 채무가 확정됐다.
다만 협회는 미디어윌과 합의를 이뤘다. 지난해 4월 "원금과 이자 일부인 약 32억 원은 양측이 함께 노력하여 육사 코트의 계약을 복원하고 미디어윌에 운영권을 이관하는 조건으로 면제한다"면서 "나머지 이자 약 30억 원은 현재 상환한 14억5000만 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15억5000만 원은 3년에 걸쳐 분할 상환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육사 코트 운영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다시 압류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미디어윌은 합의 효력 상실을 통보했고, 협회 통장 압류는 물론 협회 후원사에 대해서도 추심 명령을 신청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협회는 메인 스폰서인 하나증권 등의 후원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지리한 법정 공방 속에 어렵게 운영됐던 협회가 정상화하는 듯했지만 다시 좌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에 정 회장은 24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미디어윌과 합의를 이행하려고 노력했지만 여러 이해 관계가 얽혀 있어 육사 코트 운영권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압류로 후원 계약이 파기될 수도 있다"면서 "백방으로 뛰었지만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가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오는 30일 예정된 이사회에서 제28대 정희균 회장 체제의 협회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정 회장은 "육사 교장을 직접 만나 코트 운영권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면서 "30일 협회 이사회 전까지 마지막 노력을 해보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1년여 동안 진척이 없었던 육사 코트 운영권 문제가 수일 내에 해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한 테니스 관계자는 "육사 출신 모임에서 코트를 운영하겠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더욱이 최근 정 회장이 협회 운영에 전횡을 일삼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마당이다. 정 회장이 취임하면서 만든 한국주니어테니스육성후원회 계좌를 통해 협회 명의의 후원금과 국제 대회 광고 수익 일부를 받아 유용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고, 각종 협회의 계약 건에서도 위법과 특혜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 회장의 강압적인 지시에 사무처장도 3번이나 바뀌고 10명 이상의 직원이 협회를 떠났다는 의혹도 있다. 이런 의혹들에 대해 정 회장은 "협회의 압류로 인해 불가피한 상황이라 의도치 않은 일들이 발생했을 수 있고, 협회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불법적인 일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각종 의혹과 흔들리고 있는 리더십 속에 오는 30일 이사회에서 신임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협회가 육사 코트와 미디어윌 등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면 행정 마비로 자칫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협회는 사고 단체로 전락, 집행부가 해산돼 체육회의 관리 단체로 지정된다. 정 회장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젊은 동호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대세 스포츠로 자리를 잡아가는 한국 테니스. 그러나 협회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려 있다. 과연 오는 30일 이사회에서 협회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