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택시의 팁(tip·봉사료) 기능 도입에 이어 팁을 요구하는 카페와 식당이 속속 등장하자 팁 문화가 국내에 정착하는 것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팁은 음식점이나 호텔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해 준 직원에게 감사의 의미로 돈을 주는 문화로 16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상류층인 귀족이 하인에게 호의를 베풀던 관습이 미국으로 건너가 남북전쟁 이후 일반화됐다고 한다.
현재 외식업이나 숙박업 일부 직종은 팁을 받는다는 전제 하에 최저임금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카카오가 쏘아올린 팁 문화
지난달 택시 호출업체 카카오 T가 '감사 팁' 시범 서비스를 시작해 논란이 일었다. 택시를 이용한 직후 서비스 최고점인 별점 5점을 주면 팁 지불 창이 뜬다. 승객은 △1천원 △1500원 △2천원 가운데 골라 택시 기사에게 팁을 낼 수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팁 지불 여부는 승객의 자율적인 선택이고 카드 수수료를 제외한 팁 전액이 즉시 택시기사에게 전달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대학생 김모(24)씨는 "핸드폰으로 요금을 결제하고 목적지까지만 이동하는 택시에 팁 문화가 도입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팁을 받을 거면 택시에 타 있는 동안 추가 식음료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직장인 박모(25)씨는 "왜 한국에서 팁 문화를 들여오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팁이라는 표현이 명분이고 기본요금을 올리려는 시도로 느껴진다"고 했다.
부정적인 반응은 여론조사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지난 20일 국내 여론조사 플랫폼 더폴이 2만 2천여 명을 대상으로 팁 제도 도입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비자 61%가 팁 도입에 반대했다. 매우 부정적(37.95%) 약간 부정적(23.08%) 등 부정적 의견이 많았고 긍정적이라는 응답은 22% 정도였다.
이와 관련해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지난 23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시범 운영 중이라 향후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출시할 것인지는 정해진 바가 없다"며 "대중의 피드백에 대해 다방면으로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팁을 지불한 이용객 중 '서비스가 좋았다', '감사하다'는 의견을 남기는 경우도 있었다"며 "택시 기사들은 팁을 좋은 서비스 품질에 대한 반응으로 여겨 자부심을 느끼고 계신다"고 덧붙였다.
소비자, "서비스 마음에 안 들면 깎아주냐"
소셜미디어에서 인기 있는 한 베이커리 카페에서 카운터에 현금이 담겨있는 '팁 박스'를 설치해 논란이 됐다. 팁에 대한 안내 역시 '우리 가게가 좋았다면 팁을 주세요'(Tips. If you liked 상호명)이라고 영문으로 적혀있다. 해당 팁 박스에는 동전과 지폐도 가득 담겨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해당 카페를 방문한 대학생 김모(25)씨는 "넓지 않은 공간에 사람들로 가득 차 시끄럽고 정신이 없어서 그 후 다시는 방문하지 않았다"며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팁 박스를 두었다는 게 어이없다"고 말했다.
직장인 윤모(25)씨는 "몇 주 전 카페에 방문했을 때는 팁박스를 보지 못했다"며 "이전과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받았을 소비자들이 왜 추가로 돈을 내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윤씨는 "그럼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값을 깎아주든, 팁을 내면 덤을 줘라"고 했다.
대학생 기하늘(22)씨는 "카페나 식당에서 팁을 요구하는 곳이 생기고 있는데, 배달비처럼 팁 문화가 고착될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팁 도입… 미국도 3명 중 2명이 반대하는데?
지난 6월 야후뉴스에 따르면 개인금융정보 전문매체 뱅크레이트가 여론조사업체 유고브에 의뢰해 미국 성인 2437명을 대상으로 팁 문화에 관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항상 팁을 준다'고 밝힌 응답자는 65%다. 2022년에는 73%, 2019년에는 77%의 응답자가 항상 팁을 낸다고 답했다. 해가 지날수록 팁 관행이 퇴조하는 모습이다.
또 미국 성인 3명 중 2명(66%)이 팁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32%는 미리 입력된 팁 화면에 짜증이 난다고 답했고, 30%는 팁 문화가 통제 불능이 됐다고 봤다. 이들 중 단 9%만이 팁을 더 많이 낸다고 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에 팁 문화가 들어온 것이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모(22)씨는 "최저시급이 보장돼 있는 한국에서 팁을 요구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김예원(25)씨는 "해외에서도 팁 내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문화 차이라 이해했다"며 "사회적 합의도 없이 팁만 받겠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팁 내기'라는 선택지가 생긴 것도 부담스럽고, 내가 안냈다는 것 자체도 죄책감이 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