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투폴레프(Tu) 전략폭격기 2기가 지난 15일 동해 상공을 6시간 동안이나 훑고 지나갔다. 이 과정에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했고 우리 공군은 전투기를 대응 출격시켰다.
이틀 뒤인 17일에는 중국과 러시아 함정 11척이 일본 오키나와현 해역을 통과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두 나라 함정이 동시에 이 지역을 항행한 것은 처음이라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울과 수도권 등을 가리키는 사진을 공개하며 '공세적 군사대응방안들' 같은 위협적 언사를 쏟아냈다. 김 위원장은 신형 장갑차를 직접 운전하며 전투태세를 독려하기도 했다.
해병대원 사건 '외압' 의혹 제기된 2주간 국방부는 해명에만 급급
동북아 정세 긴장도가 높아졌지만 주무 부처인 국방부는 해병대원 순직 사건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투데이가 지난 7일 이 사건 조사와 관련한 '윗선 개입' 의혹을 보도한 이후 거의 2주 동안 해명에만 급급하다시피 하다.
국방부는 윗선 개입을 부인하면서도 이종섭 장관이 하루 만에 결정을 번복한 이유나 박정훈(대령)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항명죄로 입건된 경위 등 핵심 의혹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다수 여론은 항명보다 외압에 무게를 싣고 있다.
물론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이 와중에도 21일 시작되는 한미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1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역사적 의미가 부여되는 한미일 정상회담을 갖고 3국 결속을 강화했다.
하지만 그 결과로서 더 공고해진 한반도의 신냉전 구조를 어떻게 관리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물론 문제의식조차 사라졌다.
냉전기의 한국은 자유진영의 방파제로서 막대한 안보 부담을 감내해야 했다. 반면 탈냉전 이후 30년은 우리 국력이 세계로 뻗어나간 시기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의 부활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신냉전 지정학적 대결의 압착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원전 오염수 등 대일 현안보다는 오히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을 언급하며 진영론의 밑자락을 깔았다.
더 굳어진 '한미일 대 북중러'…러 폭격기 KADIZ 진입하고 北 위협 증가
윤 대통령은 특히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 역할론'을 강조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하지 않았던 이례적 발언이다.
그 이유는 유엔사 후방기지가 미국과 일본 간 문제라는 점과 관련 있다. 제3국이 언급하는 것 자체가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것이다.
미국은 1954년 유엔사와 일본 정부간 체결된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의해 일본내 유엔사 후방기지를 사전허가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사실상 미군의 영구주둔을 위한 법적 장치다.
이런 사실은 유엔사 후방기지는 한국 방위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운영되는 것이고, 따라서 이 문제 때문에 굳이 일본을 의식할 이유는 없다는 점을 말해준다.
한국 내 유엔사가 해체되지 않는 한, 또는 일본이 미국(유엔사)과의 SOFA협정을 파기하지 않는 한 우리가 사서 걱정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항명사태' 책임도 수습도 없어…'키맨' 해병사령관, '약한 고리' 법무관 주시
국방부가 해병대원 순직 사건 여파로 홍역을 치르는 동안 이런 중대한 국익에 대한 고민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번 사태는 석연치 않은 의혹과 해명이 거듭된다는 점에서 정말 '윗선'으로까지 확대될 불씨가 남아있다.
박 대령과 휘하 부대원에 적용됐던 집단항명죄가 항명죄로 바뀐 경위, 박 대령에 가해진 외압의 실체와 구체적 지시 여부, 경찰에 이첩된 조사기록이 회수된 과정 등 하나같이 미심쩍은 것들이다.
어찌 보면 더 심각한 문제는 누구도 책임지고 수습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이게 이렇게나 커질 일이냐"고 탄식조로 말했다.
만약 국방부 말대로 문제가 없다면 처음부터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해명하면 될 일이었다. 실제로 신범철 국방부 차관의 경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관련 의혹에 "포렌식(복원·분석)이라도 하겠다"며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였다. 휴대전화 문자나 통화와 관련해 또 다른 의혹을 받고있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나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조직의 보호막 뒤에 숨어있다.
가장 핵심인 이종섭 장관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고심 끝에 결정을 바꾸게 됐을 뿐 윗선의 압력은 없었다는 해명이지만 여론은 부정적이다.
김 사령관이 이번 사태의 열쇠를 쥔 '키 맨'이라면 유 법무관은 '약한 고리'다. 언젠가 사태의 진상이 드러난다면 원인과 관련한 책임 이상으로 사후 대처에 대한 책임이 중요할 것이다. 자칫 꼬리 자르기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다른 핵심 당사자인 박 대령은 "해병대는 정의와 정직을 목숨처럼 생각한다"며 "해병대 정신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추된 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 그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이 가장 갈망하는 가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