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위기는 지난해 7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이후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이 개념어는 한 공공병원 의사의 말처럼 "그 자체가 어떤 결여를 담고 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문제가 된 진료 과들을 아우르다 보니 영역별로 '각이 선' 대책을 도출해내는 데엔 다소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열(地熱)이 느껴지기 시작한 6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경기 수원·이천시, 충북 충주시·단양군을 차례로 돌았다.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로 불리는 필수의료 현장을 직접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 약 1년 전 전남 신안에서 만난 어르신이 "천사대교가 생기기 전엔 교통사고가 나면 '닥터헬기'가 떴다"고 한 얘기가 오래 남은 것도 컸다. '인구 위기' 기획취재 시 절감한 지역 간 인프라 격차는 의료자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도권만 해도 도심과 외곽의 사정은 사뭇 달랐다. 경기도의료원 산하 이천병원은 수원병원보다 응급실 규모가 큰 '지역응급의료센터'지만 진료사정은 딱히 나을 게 없다. '나이트' 당직(밤 9시~익일 아침 9시)을 서는 인력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1명·간호사 3명으로 동일하다. 그런데 내원환자는 더 많고 케이타스(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 레벨이 높은 중증 비율도 높다. 병실 순환이 원활할 리 만무하다.
"야간 외래 정도의 환자들이면 다 (차례대로) 대기시켜 하나하나 보면 되지만 중환자들은 대기가 없죠. 오는 대로 다 봐야 하거든요. 그 안에서도 또 중증도를 새로 계속 판단을 해서, 환자들의 우선순위를 정해 동시다발적으로 조치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인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이천병원 응급실 강현솔 과장)
관내에서 24시간 응급진료가 커버되는 거의 유일한 종합병원인 이 곳을 찾는 환자는 이천에 국한되지 않는다. 광주시와 여주시, 양평군, 충북 진천 등에서 오는 환자들은 수술 등을 위해 전원을 하더라도 이천병원을 '매개'로 거쳐 간다. 상급종합병원의 배후진료가 약화된 상황에서 바이탈 사인(vital sign)을 안정시키고 이송 병원을 수소문하며 확정 후 절차를 마무리 짓기까지 의료진은 고도의 집중력과 '멀티태스킹'을 요구받는다.
강 과장이 실제 환자 후송을 문의했던 곳으로 언급한 리스트(아주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분당차병원·한림대동탄성심병원·용인세브란스병원·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등) 중에서 거리가 40㎞ 이내인 곳은 겨우 분당차병원 정도다. 그는 당직을 서는 내내 먹지도 자지도 못한다.
소아과가 '0곳'인 단양군은 어떤가. 아이가 아프면 인접한 제천시의 종합병원(제천서울병원·명지병원)으로 30㎞ 안팎을 달려야 한다. 알고 보면 경증일지라도 갑자기 열이 치솟는 아이를 며칠 동안 느긋하게 지켜볼 부모는 없으니 불가피한 선택지다. 그나마 지난달 초 충주의료원이 보건소의 'SOS'에 응답해 시작한 주 1회 순회 진료로 약간 숨통이 트였다.
흔히 '인프라 확충'을 논할 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답안은 규모 중심의 개비 또는 설립이다. 중증응급은 '모로 가도' 3차 의료기관의 몫이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정부는 올 1월 31일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대책'에서 전국 40곳의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최종치료가 가능한 중증응급의료센터로 바꾸고 개수도 50~60곳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종별 가산율 정비(상급종합병원 15%·종합 10%·병원 5% 등)를 통해 저평가 분야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지역완결적 필수의료'를 제공하겠다며 내세운 과제 1번이 '원스톱 진료역량 강화'였던 셈이다. 또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상종 지정·평가기준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골든타임' 내 적시치료를 위해 굵직한 인프라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다만, 소멸위험이 높은 인구감소지역 등일수록 상급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권역별 거점에만 방점을 찍는 방식은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보다 일반적인 의료수요가 일정하게 충족되지 않는 이상 '응급실 뺑뺑이'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되는 3차 병원의 응급실 과밀화 또한 해소되기 힘들 것이다.
의료취약지를 포함한 지방의 종합병원, 특히 공공병원의 기능과 인력 확충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 있다.
수원병원(경기도의료원)의 이성 응급실장은 "중소 규모의 응급실도 믿을 수 있다는 (환자의) 신뢰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지역 응급의료체계 구축 없이 대형병원을 찾는 경증 환자들을 단순히 '개념 없다'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는 뜻이다. 익숙하고 비용효과적인 방법을 택한 이들에게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저출산과 맞물려 직격타를 맞은 소청과에도 적용된다. 충주의료원은 단양군 아이들을 더 봐주길 원하지만 여건상 순회진료 횟수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 소청과 전문의가 1명뿐인 탓이다. 의사를 더 구하고 싶어도 코로나19 총력 대응으로 인한 손실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어렵사리 '삼고초려' 초빙에 성공해도 대다수는 정년을 넘긴 '시니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16일 펴낸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이 부분을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정부가 필수의료 분야에 도입하기로 한 '공공정책수가'와 관련해 "다양한 중증응급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만 몰리지 않도록, 일반 종합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사회에 "유기적인 치료 네트워크가 자생적으로 생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입법조사처는 이어 "근본적으로 소청과 진료 시스템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출산율과 소아 인구 수 등을 고려해 소아 일반진료에 대한 수가 인상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부인과 분만 인프라 회복에 대해서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가산 수가만을 남발하지 말고 기본 분만수가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이상으로 정상화하면서 분만 취약지에 대한 지역수가를 추가로 책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필수의료가 사는 지역에 좌우되지 않는 '공공재'로 남으려면 지속가능한 인력 수급에 대한 고민도 필수다. 정부가 0순위로 보고 있는 의대정원 확대 외 필수의료 인력의 안정적 양성, 취약지역 공급을 위한 공적 지원이 요구된다.
입법조사처는 전공의 모집율이 작년 기준 16.6%(모집인원 199명 중 33명 지원)까지 급락한 소청과 등의 수련비용을 국가가 부담하자고 제언했다. 국내 산부인과와 소청과의 전공의 1인당 수련비용은 연평균 2억 1천만 원, 1억 8천만 원(2020년 기준)으로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
필수의료 인력을 키우는 공공 책임성 강화 차원에서 전공의 수련에 대한 임금과 교육비 등 간접비도 정부가 지원토록 '의료법' 개정 추진을 고려해봄직하다는 게 입법조사처의 주장이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캐나다 등이 이미 이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수련의에게 계약관계에 의한 노동의 대가로 봉급(salary)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교수와 수련의 관계를 전제로 재정적 지원(stipend)을 하고 있다"며 "의료서비스를 사적 재화로 보지 않고 공공적·사회적 가치재로 인식하고 있다"고 시사점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