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10시간 넘는 마라톤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만 네 번째 검찰 소환이다. 이 대표는 검찰청을 나서면서 "검찰이 목표를 정해놓고 사실과 사건을 꿰맞춰간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는 17일 오전 10시 40분 이재명 대표를 불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위증교사 혐의 피의자 신문을 진행했다. 지난 2월 성남시청과 성남도시개발공사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본격화한 지 약 반 년 만이다.
검찰 조사는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심야조사 없이 약 10시간 20분 가까이 이뤄졌다. 이 대표는 자정을 넘긴 18일 새벽 0시 1분쯤 검찰청사를 빠져 나왔다. 이 대표는 "객관적인 사실에 의하면 전혀 문제될 수 없는 사안인데 목표를 정해놓고 사실과 사건을 꿰맞춰간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에 진짜 배임죄는 용도 변경을 조건으로 땅을 팔았으면서 용도 변경 전 가격으로 계약한 식품연구원이나 이를 승인한 국토부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조사 내용을 묻는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검찰은 아시아디벨로퍼 정모 대표 등 민간 업자의 청탁이 '비선실세'로 불린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를 통해 이 대표와 그의 최측근인 정진상 당시 성남시 정책비서관에게 전달됐고 실제로 관철된 것으로 본다.
수사팀은 이 대표를 상대로 각종 인허가 특혜를 제공한 전후 경위와 동기 등을 캐물었다. 반부패수사1부 최재순 부부장검사(사법연수원 37기)가 평검사 1명과 함께 신문을 주도했고 박균택 전 고검장(연수원 21기)이 변호인으로 입회해 이 대표를 곁에서 도왔다.
검찰은 300여쪽 분량의 질문서를 준비해 촘촘히 사실관계를 캐물었지만 이 대표는 30쪽짜리 서면진술서를 제출하고 대부분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는 전략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 변호인은 "(이전 조사에 비해) 구두 진술을 많이 했고 추가 소환조사 요구는 없었다"며 "민간 업자 측이 주장한 '200억 요구설'에 관한 검찰 측 질문은 없었다. 그만큼 허황된 얘기"라고 조사 내용을 간략히 설명했다.
이 대표는 검찰 출석에 앞서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 모인 지지자 수백명을 만나 입장문을 읽으며 결백을 호소했다. 이 대표는 "저에게 공직은 지위나 명예가 아니라 책임과 소명"이라며 "단 한푼의 사익도 취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100명이 넘는 지지자들은 이 대표 조사가 끝날 때까지 검찰청사 정문에서 지지 및 응원 집회를 이어갔다. 민주당 내 친명계로 분류되는 정청래·박찬대·서영교·장경태·서은숙 등 최고위원과 김민석 정책위의장, 조정식 사무총장, 김성주·김승원·박범계·박성준 의원 등은 오후 10시 30분쯤 서초동 집회에 나타나 지지자들과 함께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이 대표를 기다렸다.
이 대표는 소환 이틀 전인 지난 15일에도 자신의 서면진술서 요약본을 미리 공개하며 검찰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그는 "용도 변경은 민간업자 로비가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토교통부, 한국식품연구원의 요구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백현동 개발 부지 용도를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 상향한 것이 특혜라는 주장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성남도개공의 사업 참여가 부지 용도 변경의 (선행)조건이 아니"라고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문제가 된) 백현동 식품연구원 부지는 공영개발 대상이다. 공사가 참여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 사안이 아니라 공영개발을 전제로 하는 도시개발계획 지침이 있었다"며 "이를 성남시가 (이재명 시장) 선대본부장 출신 브로커의 청탁을 받고 민간이 단독 개발하도록 특혜를 제공한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맞섰다.
검찰은 이날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재판 '위증교사 의혹'도 조사했다. 이 대표는 김인섭씨 측근인 사업가 김모씨에게 자신의 재판에서 위증을 부탁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날 조사 내용과 사안의 중대성, 증거인멸 염려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 안팎에선 수원지검 형사6부(김영남 부장검사)가 수사하는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과 백현동 사건을 묶어 신병 확보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영장 청구 여부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미 '방탄국회' 논란에 지난 6월 자신의 불체포 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이 대표는 이날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면 제 발로 출석해서 심사를 받겠다"며 "회기 중 영장청구로 분열과 갈등을 노리는 정치 꼼수를 포기하고 당당히 비회기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