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동산 업계의 도미노 디폴트(부도) 위기가 연일 부각되고 최근 발표된 여러 지표들도 중국 경제 침체의 신호로 받아들여지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낀 모양새다.
中 경제 위기 부각되자…주가 급락·환율 상승
16일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주저앉았다.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각각 1.76%, 2.59% 급락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0.82% 내려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으며, 홍콩 항셍지수(-1.36%)와 일본 닛케이225지수(1.46%)도 1% 중반대 하락폭을 보였다. 이날 원화 가치는 중국 위안화 약세와 동조화 돼 하락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6.0원 오른 1336.9원에 마감했다. 장 초반엔 약 3개월 만에 처음으로 1340원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15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도 약세를 보였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02% 하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도 각각 전장 대비 1.16%, 1.14% 빠졌다.
이런 시장 불안의 배경엔 중국의 위태로운 경제 상황이 자리한다. 우선 중국 GDP(국내총생산)의 약 25%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로 손꼽히는 비구이위안(영문명 컨트리가든)은 지난 7일 만기가 도래한 달러 채권 2종의 이자 2250만 달러(약 300억 원)를 갚지 못했다. 30일 동안 주어진 유예 기간 내에도 갚지 못하면 디폴트 사태에 빠지게 된다. 내년 초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비구이위안과 계열사 채권 잔액 규모도 한화로 2조 8천억 원을 웃도는 규모로 알려졌다.
비구이위안 뿐 아니라 중국 국영 부동산 업체인 위안양(시노오션)마저 최근 2094만 달러(약 280억 원) 규모의 채권 이자를 갚지 못해 마찬가지로 디폴트 위기에 직면했다. 이 같은 부동산 업계 위기는 금융사로도 전이되는 기류다. 중국의 대표적 부동산 신탁회사인 중룽국제신탁은 중국 상하이증시 3개 상장사에 대한 만기 도래 상품의 현금 지급을 연기했다. 이 신탁사 대주주인 중즈 그룹의 유동성 위기와 맞물린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중즈 그룹은 작년 비구이위안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룽국제신탁의 현금 지급 연기 규모가 3500억 위안(약 64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판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이번 부동산 위기는 침체된 중국 경제와 맞닿아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7월 소매판매, 산업생산 등 주요 경제 지표는 모두 시장 추정치를 밑돌았다. 특히 1~7월 부동산 개발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8.5% 줄었고, 같은 기간 누적 분양 주택 판매액도 1.5% 감소했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0.3% 하락하며 2년 5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내수 부진, 물가 하락, 부동산 위기 등 겹악재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 인민은행은 단기 정책 금리를 전격 인하하는 등 유동성 공급에 나섰지만,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블름버그통신은 인민은행 조치 이후의 시장 움직임을 설명하면서 "투자자들은 (이번 조치에) 감명 받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미국 대형 은행 JP모건체이스는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5.0%에서 4.8%로 낮춰 잡았다.
전 세계 긴장…韓 경제 타격 우려에 당국은 "예단 어렵지만 영향 제한적"
중국은 지난 10년 간 전 세계 경제 성장의 40%를 담당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거대 경제권인 만큼, 위기가 심화되면 그 파급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의 경제 불안이 미국 경제에도 "리스크(위험 요인)"라며 "중국의 둔화는 이웃 아시아 국가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미국에도 어느 정도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對)중국 수출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과 함께 아시아 권역으로 묶인 한국으로선 위기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를 웃돌던 한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올해 1분기 19.5%까지 내려갔지만, 중국은 여전히 최대 교역국이다. 대중 무역수지가 지난달까지 10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가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쉽게 진화되지 않을 경우, 중국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으로 인한 회복 효과로 국내 경기가 하반기엔 나아질 것이라는 정부의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도 빗나갈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거시금융실 선임연구위원은 "경제 규모가 세계 2위이고, 주요 교역 상대국이기도 한 중국의 실물 경제 악화는 분명히 한국의 수출을 비롯해 거시경제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중국 부동산 경기 악화와 금융시장 불안으로 만약 위안화 가치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하락할 경우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고, 나아가서는 세계 금융시장 불안을 가중시켜 신흥국에선 자본 유출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발(發) 금융 불안 속에서 당분간 국내 증시도 약세 흐름을 보이고, 원·달러 환율은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진단과 궤를 같이 한다.
당국은 일단 불안 심리 확산 차단에 초점을 맞춘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중국 부동산 업계 위기와 관련해 "당장 직접 우리 금융시장이나 기업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상저하고' 경기 흐름 전망에도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 당국과 금융기관의 대응 등을 지켜봐야 해서 어떤 한 방향으로 예단하기 어렵다"며 "필요 시 관계 당국과 협의해서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은행은 올해 하반기 경제성장률을 1.8%, 내년 경제성장률은 2.3%로 예상했는데 이번 달에 이런 예상치를 수정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