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이렇게나 커질 일인가요?" 한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며칠 사이 벌어진 고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여파를 보며 탄식을 금치 못했다.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에서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해병대원이 안타깝게 숨진 이 사건은 분명 군의 잘못이긴 해도 이후 신속한 대처로 비교적 원만하게 수습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고 조사를 맡은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2일 전격 보직해임 되고 3일 '집단항명 수괴'라는 중죄로 형사입건까지 되면서 전혀 다른 국면이 됐다.
이후 주말을 지나 월요일인 7일 그 배경에 국방부보다 윗선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을 시작으로 매일 같이 각종 의혹이 튀어나왔다.
급기야 11일에는 국방부 검찰단에 조사차 출두할 예정이던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수사를 거부하고 침묵시위까지 벌이는 초유의 사태로 비화했다.
우리 군에서 항명죄로 입건된 피의자가 오히려 수사기관을 비판하며 제3의 기관에 수사를 받겠다고 한 것은 유례가 없다.
병사 순직사건 처리가 집단항명 사태로 급변…윗선 개입 등 의혹 속출
이 사안이 특히 휘발성이 큰 이유는 박 대령이 수사 거부 이유로 밝힌 국방부 검찰단의 '중대한 범죄행위' 가능성 때문이다.
그의 변호인단은 군검찰이 지난 2일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서류(군 조사 결과)를 불법 회수함으로써 직권남용,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에 저촉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국가기관이 적법하게 접수된 이첩서류를 아무 근거 없이 빼돌리는 데 공모한 상황에서 그 소속 군검사의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질 수 없다고 했다.
사실 이 문제는 초기부터 제기된 여러 의문점 가운데 하나였다. 국가기관끼리 공식 행정절차가 이미 완료된 사안을 뒤집은 근거가 뚜렷하게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군 수사 경험이 많은 예비역 장교는 "이미 이첩된 서류는 그대로 두고, 좀 더 보완해서 (서류를) 다시 보내겠다고 해도 될 것을 왜 그리 서둘렀는지 모르겠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국방부는 11일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서류를 이첩한 것 자체가 정상적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당시 수사단장인 박 대령을 항명죄로 수사하기 위한 증거로서 회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서 군 일각에선 다른 설명이 나왔다. 경북경찰청이 군의 이첩 서류를 접수하기는 했지만 그대로 갖고 있다가 국방부 검찰단이 인계를 요구하자 곧장 되돌려줬다는 것이다.
굳이 표현하면 일종의 '가접수' 상태가 몇시간 동안이나마 유지되는 또 다른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김병주(예비역 육군대장)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10일 신범철 국방부 차관의 보고를 받은 결과를 설명하며 이 부분을 주목했다.
김 의원은 "이첩이 정식으로 안 됐다면 그것은 경북경찰청이 직무유기 하는 것이고, 이미 이첩돼서 접수된 것을 다시 회수해와서 재검토하고 다시 보내는 것도 법적으로 여러 하자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첩문서 '불법 회수' 논란도 불거져…사실이면 국기문란, 경찰도 관여 가능성
향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경찰 이첩 과정이 국방부 설명과 달리 적법했다면 국방부 검찰단의 '불법 회수'는 국기 문란에 해당한다.그리고 만약 경찰이 군의 이첩 서류를 어떤 이유에선지 제대로 인수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는 군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는 폭발력을 갖게 된다.
박 대령이 11일 국방부 검찰단의 '범죄행위'를 주장하며 수사 거부 선언을 한 것을 기점으로 이번 사태는 또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
군인 피의자 신분으로 언론 노출을 피했던 박 대령은 이날부터 TV 생방송 인터뷰에 과감히 응하는 등 국민 여론에 직접 호소하고 나섰다.
이런 기세에 놀란 국민의힘은 "유족들의 억울함이 없도록 철저한 진상 규명"(김기현 대표)을 주문하는 한편, 박 대령에게 "당당하다면 조사에 응해서 무혐의를 입증하라"(신원식 의원)고 분리 대응하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 등의 외압 의혹을 정조준하며 국회 차원의 조사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의뢰를 검토하고 있다.
군 안팎에선 경찰 이첩 보류가 국방부 설명처럼 '윗선 개입' 때문이 아니라 정말 합당한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얼마든지 매끄럽게 처리할 방법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사태가 터지기 전에 박 대령이 국방부에 역제안한 국방부 조사본부 이관도 그 한 가지 방법이었다. 국방부 내에서도 괜찮은 방안이란 반응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거부됐다.
국방부는 지난달 30일 장관이 결재하고 보니 문제점을 뒤늦게 자각하고 법리 검토가 필요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법무관리관을 배석시키지 않았는지도 설명이 명쾌하지 않다.
국방부는 장관이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한 지난달 31일 이후 무엇엔가 쫓기듯 움직였다. 장·차관은 해병대 사령관에게 5차례나 전화를 해 이첩 보류의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하급부대에 명령을 하달해놓고도 혹시 이행되지 않을까 염려하며 노심초사했다는 얘기인데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군내 항명과 수사 거부, 공개 비판으로까지 이어진 역대급 사태의 배경이 정말 '외압' 때문이 아니라면, 결국 그 책임은 무능한 국방부 사령탑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