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희(75)는 1980년 소그룹 미술운동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으로 활동했고 1982년부터 2013년까지 부산 동의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적·개인적 차원의 인긴사를 회화라는 시각 언어로 기록해 왔다. 전시 제목 '거기 계셨군요'는 사회에서 소외된 누군가의 자리를 발견하고 건네는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의미한다.
산업재해를 다룬 신작을 여러 편 공개한다. 작가는 "산업재해는 시대의 노동 현실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자본주의의 태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산업재해' 연작은 산재 이후 개인의 삶에 남겨진 고통과 남은 자들의 증언을 통해 하청과 외주화라는 왜곡된 노동시장의 모습을 확인시켜 준다.
"허리를 다친 노동자를 사복으로 갈아 입혀 병원으로 데려 간다" "10kg이 넘는 소스통을 혼자 붓다가 기계에 빨려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기계 작업을 할 때는 2인 1조 작업이 원칙이지만 불가능해요" "조선소는 인터넷 구인광고 보고 들어갔어요. 일을 시작할 때는 좋았어요. 들어가 보니까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도급인 거예요"
'탑'(2023)은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의 건장한 신체와 산업재해 피해자의 취약한 신체를 겹쳐 그린다. 의수와 의족을 끼고 아슬아슬한 포즈로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몸의 탑을 통해 한국 산업노동의 모순을 재현한다. '37년'(2022)은 37년 만에 복직한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노동자 김진숙을 그린 작품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확산하면서 한국 사회에는 자기계발 열풍이 불었다. 건강한 몸을 가꾸는 데 열심인 세태를 다룬 '아침운동'(1999)와 이를 변주해 미세먼지가 가득한 지금의 생활환경을 표현한 '아침운동 2023'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라면 먹는 사람들'(2002)과 '사발면이 든 배낭'(2016)은 극도의 생존 경쟁에 노출된 청년의 고단한 삶을 표현했다.
1970년대 미국의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캠페인'에서 착안한 '무기를 들고'(2018)는 프라이팬을 무기처럼 들고 항의하는 인물을 통해 당시 한국 사회를 뒤흔든 미투(Me_Too, '나도 말한다'는 뜻으로 자신이 겪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는 일) 운동을 지지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장은 10일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이 검열로 인해 무산됐던 바로 그 장소에서 열리는 노원희 작가의 개인전은 미술관 개관 50주년을 한 해 앞두고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