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의 대가로 불리는 김은희 작가에게도 '악귀'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싸인' '유령' '시그널' '킹덤' 시리즈 등이 대표작이지만 이번에는 청춘들의 삶을 훼손하는 욕망과 사회악을 잘 버무려 '오컬트' 드라마로 탄생시켰다. 12부작의 짧은 호흡 안에 완성도 있게 사건을 담아내는 것도 성공했다.
이정림 PD는 입봉작이었던 'VIP' 이후 또 한 번 독보적인 감각의 연출력을 증명했다. 'VIP' 당시에도 이 PD는 로맨스에 미스터리를 적당한 농도로 녹여내, 어찌 보면 평범한 불륜 소재를 끝까지 긴장감 있게 풀어나갔다. '악귀'는 '15세 관람가'였지만 머리카락 그림자 등 연출법을 영리하게 활용해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아 더 소름 끼치는 장면을 구현했다.
김태리의 연기는 매 회차마다 뜨거운 화제가 됐다. 그는 '악귀'와 하루 하루가 버거운 청년 구산영 사이를 오가며 순식간에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전혀 이질감 없는 연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악귀'와 구산영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김은희 작가의 대본, 그리고 이정림 PD의 연출은 그런 김태리의 연기에 더 강렬한 맛을 더했다.
다음은 김은희 작가와 이정림 PD의 서면 인터뷰 일문일답.
A 김은희 작가(이하 김)> 기획부터 시작해서 이런 아이템이 괜찮을까? 공중파에서 오컬트라니 시청자분들이 받아들여 주실까? 고민한 부분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고 부족한 부분들도 격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이정림 PD(이하 이)> 부족한 부분이 많았겠지만 작가님, 배우들 그리고 훌륭한 스태프를 믿고 촬영에 임했다. 시청자들이 추리하는 내용들도 흥미롭게 봤고, 지인들로부터 연락도 많이 받았다. '진짜 비밀로 할 테니 나한테만 몰래 말해줘'라는 문자만 여러 개 받았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Q '악귀'를 집필할 때 어떤 점에 주안점을 뒀는지
A 김> 귀신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귀신도 한때는 사람이었던 존재니까 그 귀신들에게도 나름의 이야기를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Q 1958년부터 현재까지, 시대를 거슬러 여러 청춘들의 이야기와 그런 청춘들을 좀먹는 그릇된 욕망과 사회악을 다뤘는데, 이러한 메시지를 '오컬트'란 장르에 녹여낸 이유가 궁금하다
김>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란 말이 있지 않나. 특히나 끔찍한 범죄를 보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악귀'는 그런 생각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방황하고 흔들리는 청춘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간 범죄자들을 귀신에 빗대어 그려보고 싶었다.
A 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싶었다. 오컬트라는 새로움에 도전해주시고 멋진 연기를 보여주신 명품 배우님들, 사랑하고 존경한다. 전 귀신보다 배우분들의 연기가 더 소름이 끼쳤던 것 같다.
이> 김태리, 오정세, 홍경 배우와는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눴다. 셋 다 질문이 엄청났다. 촬영 막바지쯤 배우들에게 고백했는데 내 꿈에서까지 나타나 질문을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거기서 또 다른 생각들이 파생되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막막했던 순간들이 해결되기도 했다.
Q 김태리와 오정세 연기합이 작품에서 정말 좋았다. 실제 현장에서는 어땠는지
이>김태리 배우는 열정적으로 현장을 이끌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내 것만 보는 게 아니라 숲 전체를 보고 있는 배우라 함께 작업하며 많이 의지하고 배웠다. 오정세 배우는 고요하지만 단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다. 고독, 외로움, 외골수 등 염해상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을 다 소화하고 표현해줬다.
이> 모든 드라마가 그렇겠지만, '악귀' 역시 주인공 구산영, 염해상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하고 따라가지 못하면 끝까지 쫓아갈 수 없는 작품이었다. 촬영 전부터 작가님과 배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시청자가 둘을 응원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인물들의 첫 등장이나 공간 구현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또 악귀를 비롯한 귀신들, 상황을 묘사할 때 지나치게 화려한 VFX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 익숙하면서도 무섭고 기묘한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했다.
Q '산영이다운 선택을 내린' 구산영의 흑암시 엔딩은 무엇을 의미하나
김> 산영이는 스물 다섯, 아직은 인생의 시작점에 있는 청춘이다. 극중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아무리 옳은 선택을 했다고 해도 희망만이 가득하진 않겠다. 그런 현실을 흑암시로 표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