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경보가 뜨는 와중에도 편의·휴식 공간을 포함한 제반 시설이 부족해 온열질환자가 다수 발생하고, 갯벌을 매립한 땅이어서 비가 몰아치면 침수가 잦고 배수 장애를 겪으며, 물품 구입이 여의찮은 상황에서 편의점은 바가지요금을 받는 등 총체적인 운영 부실이 드러난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이하 잼버리). 주요 행사 중 하K팝 슈퍼 라이브'(이하 'K팝 콘서트')도 주최 측의 무능과 준비 부족을 피해 갈 순 없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6일 K팝 콘서트 연기를 알리며 "수용인력, 안전관리, 아티스트 출연 문제, 프로그램 보완 조정 문제, 새만금 이동조건, 퇴영식 문제 등을 종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동에 실무진과 당사자에게 불이 떨어졌다. 당초 예정된 출연진이 바뀐 날짜와 장소에서도 출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당일 취소'를 공지하면서도 K팝 콘서트와 연관된 수많은 주체의 상황을 고려하기는커녕, 이렇다 할 양해조차 구하지 않았다. 주최 측 때문에 가수와 소속사가 난감해졌지만, 이들은 마치 한 마음인 듯 대부분이 침묵을 지켰다. 정부 행사인 만큼 말을 꺼내기 곤란해하는 기색이 읽혔다.
가요 관계자 C씨도 "행사 종류, 성격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이런 행사는 주요 출연자의 경우 미리 일정을 잡는다. 이미 잼버리는 전 국민의 주목을 받는 상황이 됐고, 정말 사정이 있어서 불참하게 되더라도 안 나가면 가수와 소속사만 난처해지는 판국"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활동기가 아닌 팀도 일정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 콘서트, 팬 미팅, 투어, 각종 방송 촬영 등 일정이 있다면 시간 확보하기가 쉽지 않으니까"라고 부연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는 "안타깝다. 전 세계에 많은 팬이 있다고는 해도 이런 일 앞에서는 가수들이 상대적 약자인 셈"이라며 "K팝 콘서트로 즐거움을 주면, 잼버리 사태를 둘러싼 불만도 들어갈 수 있다는 발상이 아닌가. 정직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원래 K팝 콘서트에는 아이브, 제로베이스원, 엔믹스, 스테이씨, 피원하모니, 앤팀, 베리베리, 이채연, 아이키, 네이처, ATBO, 싸이커스가 출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조직위의 일정 변동 발표 후, 처음 라인업에 속해 있지도 않았고 현재 멤버 두 명(진·제이홉)이 군 복무 중인 그룹 방탄소년단의 이름이 거론됐다.
멤버 2명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탄소년단 7인 완전체 무대는 명백히 무리인 요구였다. 정부 주도 행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을, 대중문화예술인을 이용해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질타가 나오는 이유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는 "잼버리 사태 자체가 윤석열 정부의 실력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어떤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원래 계획에도 없었던 BTS를 동원해 부실한 운영, 불편한 환경에 대한 비판과 불만을 덮어버리려고 한다는 점에서, 문화예술을 그저 권력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한다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를 비롯해 K팝 팬들 반응도 싸늘하다. 아미는 트위터에서 "방탄소년단 그리고 이 나라 케이팝 가수는 그 누구도 국가 공무원이 아닙니다. 나랏일에 타의로 불려 가 현재 당면한 국격 실추 문제를 나서서 수습하고 만회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대중문화계에 정부의 어떠한 압력도 거부합니다" "비정상적인 잼버리 준비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지 말아 주세요" 등 공통된 문구와 해시태그를 집중적으로 게시하는 항의 운동을 진행 중이다.
그러면서 "태풍 카눈이 잼버리 야영장을 지나갈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로 장소가 변경됐다고 아는데, 안전이 그만큼 중요했다면 연기가 아닌 취소를 해야 했다. K팝 아티스트 일정과 K팝을 사랑하는 세계 청소년들의 마음이 '잼버리 성료'라는 목표를 위해 인질로 잡혀있는 상태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라고 부연했다.
이 모든 과정이 촉박하게 진행된 탓에, 완성도 측면에서도 가수와 관객 모두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 될까 봐 우려도 제기된다. K팝 콘서트는 오는 11일 저녁 7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데, 전체 라인업은 고작 이틀 남긴 오늘(9일)에야 발표될 예정이다. 여러 가수가 출연하는 대규모 콘서트여서 조율할 부분이 적지 않고, 무대 장치 설치도 해야 하기에 상당히 빠듯한 일정이다.
가요 관계자 C씨는 "여러 팀이 출연하는 대형 콘서트는 무대 장치를 설치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철거도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촉박하게 발표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 주최 측에서 요구하면 다 바꿔줘야 한다는 식이어서"라며 "원래 장소에서 수개월간 무대를 준비했던 스태프들도 아마 화가 많이 났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비판의 목소리는 가요계와 K팝 팬들에 그치지 않는다. 대형 공연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 경기장이 동원되는 '관행'을 지켜보는 축구 구단과 팬들도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K팝의 위상이 높아졌음에도 여전히 마땅한 '전용 공연장'이 없어, 걸핏하면 경기장을 빌려야 하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총체적 난국"이라고 운을 뗀 K리그 팬 D씨는 "전주로 장소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예정된 축구 경기는 어디서 하는지 △장소 변경이라면 티케팅이나 연간 회원권 보유자 좌석 배치는 어떻게 하는지 등 세부 사항 안내가 전혀 없었다. 휴가철 극성수기에 숙박, 교통을 예약한 축구 팬과 원정 선수단에 혼란을 준 점이 제일 한심하다"라고 비판했다.
D씨는 "문체부와 지자체, 구단 말이 다 달라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최소한 말을 맞추고 공식 발표를 했으면 좋겠고, 언론도 받아적기보다는 앞뒤 안 맞는 부분을 질문했으면 한다"라며 "축구장이 지역 시설공단 소유라 대여 권한은 그쪽에 있다고 해도, 최소한 시즌 중에는 축구에 집중할 수 하는 게 맞다. 리그 일정은 안중에도 없고 축구 팬들을 존중하지도 않는 게 가장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