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한 오염수의 방류 문제의 핵심은 오염수에서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는 ALPS(다핵종처리시설)라는 이름의 필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리뷰(검토)를 거쳐 이 필터의 메커니즘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냈다.
필터를 통과한 오염수의 시료(샘플)를 채취해 검사해보니 삼중수소 외에는 의미 있는 양의 방사성 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 한 차례의 시료검사로 원전 오염수 방류에 문제없다는 결론에 이른만큼 이 시료는 130만톤이 저장된 오염 저수지의 수문을 여는 열쇠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료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 같은 불신엔 역사적으로 쉼없이 세상을 속여왔던 일본 특유의 불성실성(dishonesty)이 한 몫을 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가 녹아내린 미증유의 사태 때도 거짓말을 일삼았다.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외에도 도쿄전력은 2013년 8월 오염수 저장탱크에서 오염수 300톤이 누출된 사실을 숨기다 발각된 일이 있다.
또 2018년 8월에는 ALPS를 거친 오염수에서 여러 종류의 핵종이 고시(기준)농도를 초과한 사실이 일본 언론을 통해 폭로된 이후에야 해당 사실을 인정했다.
이와함께 처리수에서 또 다른 핵종인 탄소14가 검출된 사실도 부인하다가 지난해 비로소 인정했다.
이 때문에 일본변호사연합회도 지난해 '오염수 해양 방출 반대 의견서'를 통해 'ALPS 처리수'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일본 정부의 자세는 '현저하게 불성실(著しく不誠実)'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라도 IAEA는 시료 확보 과정에 빈틈을 차단해 이번 사태가 혼돈 속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했어야했다.
IAEA가 지난 5월 31일 발표한 관련 6차 보고서 10페이지에는 문제의 시료 채취 과정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지난해 3월 24일 IAEA 관계자들은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 탱크 야적장에 임했다.
그러나 시료 채취 작업은 도쿄전력측이 진행했다.
더욱이 그 때 확보한 시료를 IAEA는 현장에서 수거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로부터 5개월 뒤인 지난해 8월 국제배달 서비스를 통해 시료를 전달받았다.
IAEA와 함께 ALPS 검증의 또 다른 축을 담당했던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가 최근 민주당 정책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는 이 석연치 않은 시료 채취 과정에 대한 설명이 기술돼 있다.
먼저 IAEA 인사들이 시료 채취 현장에까지 가놓고도 왜 직접 시료를 수거하지 않았을까?
원안위는 "오염수는 일본 자국의 통관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국제 사회에 엄청난 논란을 야기한 원전 오염수 방류 샘플 수거를 일반적인 상품 수출 절차를 따라 진행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시료를 채취한 일본은 왜 배달하는데 5개월이나 끌었을까?
이에 대해 원안위는 "오염수 관련 통관 절차를 정립했던 과정"이라고 답변했다.
세상에 없던 '오염수 수출' 과정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는 설명이다.
그 동안 혹세무민해왔던 일본이 이번에도 시료를 담은 병을 바꿔치기하느라 그렇게 긴 시간을 끈 것은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원안위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배송된 플라스틱통과 유리병에 IAEA 로고가 적힌 라벨이 붙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IAEA는 6차 보고서에서 '이들 플라스틱통과 유리병은 물을 담은 이후 테이프로 밀봉처리했다"고 기술한 바 있다.
원안위도 "한국원자력기술원에 (시료가) 배송된 당시 봉인이 돼 있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IAEA의 직업윤리를 문제 삼기도 한다.
이정윤 원전과미래 대표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IAEA가 해서는 안되는 짓을 했다"고 비판했다.
원전 진흥기구인 IAEA가 원전 이권 카르텔을 구성하는 내부자들인 만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검증에 참여해서는 안됐었다는 지적이다.
일본 마쓰야마대 장정욱 교수는 IAEA의 검증 결과를 두둔하는 국내 '원전 마피아'들의 직업 윤리를 겨냥했다.
그는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국내 원자력 학자들은 보일러(원자로) 안의 문제만 이야기해야 하는데 보일러 밖의 현상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