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새 토일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이하 '이생잘')는 그런 하윤경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부담이었다. 4명의 주인공 중 한 축이 되어 열심히 극을 이끌어 가야 했다. 그러나 그런 부담감이 결국 현장에서 스스로를 짓누르는 무게가 되어서는 안됐다. 이 생각은 확고했기에 하윤경은 '책임감'은 가지되 '부담감'을 너무 의식하지 않고자 최선을 다했다. '이생잘' 윤초원처럼 사랑스럽고 풋풋한 역할은 많이 해보지 않아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냥 일단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부딪혔다.
그 과정에서 신혜선의 존재는 하윤경의 '믿을 구석'이었다. '로맨스'에 버금갈 정도로 애틋한 자매 케미는 그냥 완성된 게 아니었다. 하윤경을 처음 봤을 때부터 신혜선은 '전생의 동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하윤경 역시 마음을 활짝 연 신혜선에게 편하게 다가갔다. 그런 모습들이 차곡차곡 쌓여 두 사람의 탄탄한 관계성이 완성될 수 있었다. 하윤경에게 신혜선은 '가장 감정적으로 편안한'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시청률이나 흥행도 중요하지만 하윤경은 여전히 자신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아직 스스로 '연예인'이란 실감이 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연기에 있어서는 '무슨 색깔'을 찾아갈 것인가에 대해 서서히 답을 구했다. 어떤 배우든 자신만의 '색'을 찾고 싶어하지만 어떤 색이든 입을 수 있는 장점 자체가 하윤경의 '색'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독보적인 무언가는 아닐지라도 거기에 목을 매진 않겠단 생각이다.
다음은 하윤경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Q 이번이 첫 주연작이었는데 부담감도 있었겠다
A 아무래도 분량이 커질수록 부담이 커지는 게 있다. 저는 너무 그걸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분량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면 얼어붙을 거 같다. 그래서 늘 했던 것처럼 너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고 그냥 해보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던 거 같다. 만약 제가 '원탑물'을 하게 되더라도 그런 마음가짐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임감은 가져야겠지만 부담감을 내려놓는 여유로운 사람이어야 된다는 생각이다.
Q 가장 많이 합을 맞춘 배우 신혜선과의 작업은 어땠는지
A 연기를 워낙 잘하니까 신혜선 언니와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언니와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장 많이 편하게 의지했다. (신)혜선 언니가 제일 마지막에 캐스팅이 됐는데 제가 나온 장면을 함께 찍을 때 언니가 절 처음 보는 순간부터 눈물이 났다고 하시더라. 정말 자기가 잃어버린 동생을 보는 거 같고, 전생의 동생을 보는 거 같은 느낌이었다고. (웃음) 너무 감동적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제가 항상 무슨 농담을 하면 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웃기다고 웃는데 그런 코드도 잘 맞았던 거 같다. 우리 자매 케미도 좋아해 주시더라. 언니와 하는 장면이 가장 감정적으로 편해서 그런 게 화면에 다 나오나 보다 싶었다.
A 오빠가 리더십이 있는 편이다. 배우 하나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챙겨주고 지금도 채팅방에서 먼저 이야기를 막 꺼내는 사람이 보현 오빠다. 제가 많이는 못 만났지만 은은하게 장난기가 있더라. 진지한 장면에서는 긴장을 풀어준다. 제 생일에 촬영이 있었는데 깜짝 케이크를 준비해줬다. 그런데 중간에 들켜서 엉거주춤하게 바로 그 자리에서 축하해주고 그랬다. 되게 '츤데레' 스타일이다. 안 챙겨주는 척하면서 다 챙겨주고 보고 있다.
Q '이번생'을 통해 어떤 성장을 이뤘는지 궁금하다. 굉장히 일편단심의 풋풋한 로맨스를 그렸다
A 환생이라는 소재가 비현실적이라 사실 이걸 믿는 과정이 어려울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거기에서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선배님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작업을 했고, 감독님도 의견 수렴을 많이 해주셔서 동등한 느낌으로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초원이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런 마음이 너무 부럽고 예쁘고 감동적이었다. 그런 애틋한 마음에 집중을 많이 했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면까지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인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Q 실제로 본인의 연애나 우정 스타일은 어떤지 궁금하다
A 예전에는 표현을 못했는데 이제 최대한 표현하려고 한다. 절친들에게는 사랑한다고까지는 못하지만 다정하게 많이 챙겨주려고 노력하고, 저도 밥을 많이 챙기는 거 같다. 끼니 걱정, 건강 걱정 이런 것들. 이번 드라마에선 내가 너무 사랑스러운 척을 해서 화가 날 지 모른다고 넓은 마음으로 봐달라고 했다. 저는 원래 연애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 한번 좋아하면 오래 사귀고 표현한다. 사귀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거 같다. 도윤이가 '좋아하지만 사귀지 않는다'고 했는데 저라면 개인적으로 상처 받는다. 하는 데까진 해봐도 진짜 아니다 싶으면 놔줄 거 같다. 최선을 다하면 미련이 없다. (웃음)
Q 눈물을 흘리는 감정씬도 많았다. 표현이 쉽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A 저는 T이고 싶은 F인데 초원이처럼 언니가 무슨 말만 하면 울먹거리고 그러지는 않는다. 공감 능력은 좋은 편이다. 그게 연기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 보통 공감이 되지 않는 캐릭터는 잘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심적으로는 피곤하다.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하면 제가 당한 것처럼 심장이 뛰고 그런다. 그런데 진짜 눈물이 많지는 않다.
A 저는 믿으면서도 믿지 않는 성향이다. 만약 바란다면 다음 생에는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 제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고양이 마음을 알지 못하는 점이 통탄스럽다. 늘 부족한 집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를 씻는 차원에서 그러고 싶다. 고양이로 태어나서 고양이들이 억울하고 힘들었던 걸 풀고 싶다. 전생은 남자였을 거 같다. 단단하고 듬직한 장군이었으면 좋겠다. (웃음) 제가 남녀의 반반, 그런 양면적 모습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서 그런 모습이길 바라는 것 같다.
Q 착하고 바른 캐릭터들을 많이 해서 배우 본인에게도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A 착하고, 사랑스럽고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깊고 어두운 역할도 해보고 싶다. 어떤 장르적 틀 안에 들어가서 에너지를 확 쏟아내는 그런 역할도 해보고 싶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데 선한 캐릭터를 많이 주시더라. 너무 감사한데 약간 부담도 된다. 그 기대에 부합하면서 살아야 되는데 '날 너무 착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그런 생각도 한다. (웃음) 착하게 살아야 된다는 좋은 부담감이다. 그런 역할을 연기하면 저도 모르게 좋은 쪽으로 사고가 많이 흘러가고 정신 건강에도 이롭더라.
Q 아무래도 '우영우'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란 수식어가 여전하고, 또 시즌2를 기다리는 시청자들도 많다. 이번에 '이생잘'도 '우영우' 배우들이 보고 피드백 준 게 있을지 궁금하다
A 지금도 저를 '최수연' '봄날의 햇살'이라고 기억해 주셔서 감사하다. 캐릭터 이름이든, 배우 이름이든 대중에 각인된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없을 행운이다. '이생잘'은 '우영우' 친구들이 봐줬는데 너무 예쁘게 잘 나온다는 평을 남겼다. (박)은빈이도 초반에 좀 봤다. 이제 넷플릭스에 나오니까 보라고 강요할 예정이다. (웃음) 시즌2 이야기는 저도 아직 정확히 모른다. 저희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고 더 알아봐야 할 거 같다. 하게 된다면 즐겁게 할 의향이 있다. 다만 무조건 하고 싶다는 건 아니다. 박수칠 때 떠나야 좋은 부분도 있고, 또 한편으로 기다린 분들께 보답하고픈 마음도 있다.
A 사실은 제가 연예인이란 생각을 잘 못해서 많이 혼난다. 제발 초심을 잃고 연예인답게 굴어라, 너무 칠렐레팔렐레 다니지 말아라, 그런 충고를 듣는다. 많이 조심하려고 한다. 원래 막 돌아다니고 아무 카페나 가서 커피 마시고 포장마차를 좋아하는데 많이 알아보시긴 하더라. 스스로 연예인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고쳐야 되는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저에 대한 다른 기대를 갖고 있는 분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저는 연예인 답게, 신비주의, 이런 건 못하는 성격이라 중용을 잘 지켜야 될 거 같다. 또 이렇게 편하게 할수록 친근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으니까 장점일 수도 있다. (웃음)
Q 본인은 스스로 어떤 색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하는지
A 배우들이 항상 색을 찾고 싶어하는 거 같다. 보면 다들 전혀 평범하지 않다. 저는 되게 다양한 색을 연기할 수 있다는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너무 감사하고, 그게 내 장점인 거 같다. 어떤 역할도 무난하게 해낼 수 있는데 내 색깔이라고 생각한다. 강한 색을 찾는 거 자체가 한계가 있는 걸 수도 있어서 너무 그런 색을 찾는데 목을 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색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흘러가는 대로 새로운 역할과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색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Q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앞두고 있다. 지난 10년을 돌아본다면, 그리고 어떤 30대가 되고 싶은지도 궁금하다
A 쉬지 않고 열심히는 했다. 지금 제일 많이 쉬고 있다. 보여준 건 많지 않은데 독립영화도 그렇고 지금 조금씩 도움이 되는 과정인 거 같아서 꾸준히 일했다. 그런 부분에서는 뿌듯하다. 아직도 많이 보여드리지 못한 갈증이 있는 거 같고, 더 부단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지금 한 만큼은 해야 뿌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20대는 불안했는데 30대는 그래도 많이 벗어난 상태다. 좀 더 여유롭고 넓은 그릇을 가진 사람이자 배우이고 싶다. 나이를 먹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는데 여유로움 속에서 긴장을 잃지 않는 30대가 되고 싶은데 어렵다. 뭔가 가지고 있지만 내려놓는 사람이 멋있지 않나.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