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SF 영화의 기술적인 성취는 어디까지 왔을까.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더 문'에 답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더 문'은 한국 SF가 이루지 못했던 꿈, 그 꿈의 현실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이자 못다 이룬 한국의 우주 진출의 꿈을 대신 이뤄준 영화다.
2029년, 대한민국의 달 탐사선 우리호가 달을 향한 여정에 나선다. 위대한 도전에 전 세계가 주목하지만 태양 흑점 폭발로 인한 태양풍이 우리호를 덮치고 황선우(도경수) 대원만이 홀로 남겨진다. 5년 전, 원대한 꿈을 안고 날아올랐지만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공중 폭발로 산산이 부서졌던 나래호를 기억하는 나로 우주센터 관계자들과 정부는 또다시 일어난 비극에 유일한 생존자인 선우를 지키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선우를 무사 귀환시키기 위해서 5년 전 나래호 사고의 책임을 지고 산에 묻혀 지내던 전임 센터장 김재국(설경구)이 다시 합류하지만, 그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선우를 구출할 또 다른 희망인 NASA(미국항공우주국) 유인 달 궤도선 메인 디렉터 윤문영(김희애)에게 도움을 청해보지만 그마저 쉽지 않다. 그렇게 우주에 홀로 고립된 대원과 그의 무사 귀환에 모든 것을 건 남자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더 문'이 이룬 기술적 성취는 그동안 SF 영화 불모지라 여겨졌던 한국이 적어도 우주와 달에서만큼은 확실하게 자신의 영역이라고 발자국을 찍었음을 입증했다. 넷플릭스 SF 영화 '승리호'도 한국 SF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극장용이 아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영화였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더 문'은 그런 아쉬움을 털어냈다. 특히 우주 공간과 우주선 내부 장면은 카메라 워킹까지 더해지면서 마치 관객이 함께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한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물론 할리우드 SF 영화와 비교한다면 미숙하고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투입된 자본의 총량과 결과물을 대비해 바라본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이런 성취를 냈다는 건 앞으로 더욱 기대해 봐도 좋을 것임을 알려준다.
어차피 전 세계를 시장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비해 한국 영화 산업은 아직 작은 만큼 할리우드를 그대로 답습할 수도 없고, 할리우드가 한국이 지향해야 할 표준이 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국 SF 영화가 나아갈 방향은 '할리우드 따라잡기'가 아니라 '한국형 SF'의 길을 새롭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더 문'은 '한국형 SF'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는 SF 영화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 중 하나다.
황선우와 김재국은 크게는 달 탐사선의 실패와 재도전, 그리고 구조 작업이라는 대의로,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황선우의 아버지로 얽혀있는 사이다. 이미 한 차례 유인우주선 발사에 실패를 겪은 한국이 두 번째 시도를 단행했지만, 두 명의 대원이 죽고 황선우 한 명이 살아남은 상황이다.
그나마도 고립 위기에 처한 황선우를 구해야 하고, 이 상황에서 해결의 열쇠를 쥔 건 과거 프로젝트 실패의 책임자인 김재국이다. 그렇게 실패의 과거인 김재국과 만회의 가능성이자 현재인 황선우가 만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빠져나오는 것은 물론 과거의 실패까지 만회할 수 있는지가 이야기의 한 축이다.
어쩌면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건 재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의지 그리고 지구적인 재난 상황에 놓인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메시지다. 그렇기에 거시적인 사회구조적인 갈등이라든지 구조 작업을 방해하는 빌런은 등장시키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인류애' 내지 '동료애'로 불릴 수 있는 '연대'가 '더 문'이라는 재난을 통해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지점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전쟁, 기후 위기 등 지구적인 재난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한 명 한 명이 황선우다. 그런 재난의 현실에서 재난 영화인 '더 문'은 전 지구적인 존재가 재난 앞에 국가와 소속을 넘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점점 그 의미를 찾아보기 힘든 '연대'라는 건, 지구적인 재난을 겪고 있는 현시점에서 필요한 메시지다.
그러한 점에서 '더 문'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황선우처럼 지구적인 재난에 놓인 우리가 적어도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황선우라는 한 사람으로 대표됐지만 결국 '모두'의 재난 앞에 함께 나서며 연대하자는 것이다.
황선우를 연기한 도경수는 재난에 놓인 인간이자 인간의 의지를 상징하는 역할을 꿋꿋하게 수행해 냈다. 극한 상황에 놓여 의지를 시험받는 인간의 감정선, 다시 그 안에서 과거의 아픔과 감정 현재의 감정과 싸워야 하는 복잡성을 모두 '황선우' 안에 끌어안았다. 도경수만이 가진 '힘'으로 말이다.
다만 아쉬운 지점은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우주에 고립된 조난자를 구해야 한다는 비장함, 그를 구하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은 연대가 필요하다고 인류애를 호소하는 부분 등에서 이뤄지는 감정적인 요소들이 어떤 관객에게는 '과잉'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나름의 이스터에그도 있다. 김용화 감독의 전작 '미스터 고'의 링링을 떠올리게 하는 고릴라 인형이 등장이다. 이 고릴라 인형은 김용화 감독의 링링을 향한 애정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129분 상영, 8월 2일 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