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고민시에게 주어진 미션…'상스럽게' '추접스럽게'

영화 '밀수' 고옥분 역 배우 고민시. NEW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스크린과 안방극장,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 안에서 진폭이 큰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중 인상 깊은 배우를 한 명 꼽으라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배우가 바로 고민시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에서 고민시는 밀수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군천의 정보통 고옥분 역으로 합류했다. 캐릭터로서도, 배우로서도 가장 막내인 고민시는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등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빛이 바래긴커녕 자신만의 색으로 반짝거리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민시를 '밀수'로 이끈 건 류승완 감독의 선택이었다. 류 감독은 영화 '마녀'(감독 박훈정)에서 자윤(김다미)의 친구 명희로 나온 고민시를 보고 말 그대로 빠져버렸다. 감독은 "세상에서 찐 달걀을 그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이야기했다.
 
아마 '밀수'를 본 관객이라면, 류 감독의 표현대로 고옥분으로 변신한 고민시가 '상스럽게' 껌을 씹고, '추접스럽게' 거울을 보는 모습에 빠져들지 모른다. 고민시는 감독의 아이디어 덕분에 고옥분을 멋지게 완성할 수 있었다며 좋아했다.

영화 '밀수' 스틸컷. NEW 제공
 

고민시는 고옥분처럼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상할 것 같은 갈매기 눈썹에 짙은 눈 화장, 빨갛게 바른 입술, 한복 차림까지. 완벽하게 1970년대 다방 마담 고옥분으로 변신한 고민시는 자기 모습을 보고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버스에, 영화관에 붙어 있는 '밀수' 포스터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나가도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였다.
 
고민시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고옥분의 모습에 "난 원래 작품 할 때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더 좋아하는 편인 거 같다. 그런 거에 두려움이 전혀 없다"며 "오히려 그 캐릭터와의 확실한 싱크로율을 보여줄 수 있고,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면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민시가 '밀수' 시나리오를 본 후 가장 중요하게 생긴 건 망가지는 데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아니다. 바로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와의 케미가 어떻게 하면 더 좋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지점이었다. 그는 "최대한 감독님과 현장에서 그런 부분을 많이 상의했고, 선배님들과도 현장에서 이야기하며 맞춰갔다"며 "워낙 현장 외적으로 선배님들과 다 친하게 지내다보니 그런 부분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던 거 같다"고 했다.
 
고민시가 빠르게 그리고 보다 깊게 고옥분에 빠져들 수 있었던 데는 대선배인 김혜수와 염정아의 역할이 컸다. 고민시의 '밀수' 첫 촬영은 춘자, 진숙과 함께 옥분이 세관 금고를 여는 장면이었다. 첫 촬영인 만큼 긴장한 막내 고민시에게 김혜수와 염정아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두고 박정민은 "민시는 뭐만 하면 사람들이 예뻐 죽으려 했다"고 표현했다. 덕분에 고민시는 "첫 촬영부터 이미 내적으로 깊어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하나하나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옥분이 캐릭터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현장에 계셨던 모든 분께 진짜 너무 감사드려요."

영화 '밀수' 스틸컷. NEW 제공
 

류승완 감독의 지령 "상스럽게" "추접스럽게"


고옥분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준 것은 류승완 감독이었다. 류 감독은 현장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고민시에게 디렉팅을 해줬다. 고민시는 "되게 아이디어가 많은 분이란 걸 느꼈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대본에 없던 게 들어간 신도 제법 된다.
 
다방 마담이 된 옥분이가 거울을 들고 자신의 치아를 보는 장면이 있다. 류 감독은 옥분이란 캐릭터를 더욱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하기 위해 거울을 보면서 치아를 '추접스럽게' 봐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옥분이가 껌 씹는 모습도 류 감독의 디렉션이 녹아 있다. 류 감독은 껌을 '상스럽게' 씹어보라고, 또 장도리(박정민)가 담배를 쥐여줄 때는 껌으로 풍선을 불다가 확 깨물어 보라고도 했다. 고민시는 "풍선이 잘 안 불어지더라. 그게 아쉬웠다"며 "그래서 껌이라도 야무지게 씹어보자며 씹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영화 '밀수' 스틸컷. NEW 제공
옥분이 마치 논개처럼 세관 계장 이장춘을 안고 바다로 뛰어드는 신에서 류 감독이 고민시에게 원한 건 '임팩트'였다. 원래는 특별한 대사 없이 '같이 죽자'는 뉘앙스로 뛰어드는 장면이었는데 류 감독은 욕을 섞어 해보자는 의견을 던졌다. 어떤 대사라도 좋으니 감정에 충실해서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보라며 멍석을 깔아줬다. 고민시는 "첫 컷에서 감독님이 크게 웃어주셨고, 그걸 예고편에서 써주신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나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류 감독과 하나하나 의견을 교환하고, 또 디렉션을 받아 소화해 내면서 고옥분을 만들어 갔다. 이런 과정이 고민시에게는 즐거웠다. 장도리 패거리의 사무실로 쓰이는 맹룡해운 안에서 대성통곡하며 장도리에게 누명을 씌우는 부분을 촬영할 때는 쾌감마저 느꼈다.
 
"마스카라가 다 번진 채 '오빠 내가 나쁜 년이야'라고 하는 장면도 감독님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주저앉아서 해볼까?' 말씀하셨어요. 대본 보면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장면이었어요. 감독님이 거기서 한 번 곡소리 같은 걸 내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이구~ 아이구~' 해보라고 그러셔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어요. 거기에 저고리로 눈물을 닦아보자고 하셨죠. 그렇게 하나하나 소스를 추가해서 완성된 신이에요. 정말 내 몸 한 번 던져서 해보자는 마음으로 소리를 미친 듯이 질렀어요. 정말 현장에서 다들 빵 터지는데, 그때 희열을 느꼈어요."

영화 '밀수' 스틸컷. NEW 제공
 

대선배 김혜수·염정아의 애정 공세

 
류 감독의 아이디어와 디렉션이 더해져 옥분 캐릭터의 디테일이 살아났다. 그리고 여기에 감정적으로 보다 깊이 있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연기할 수 있도록 해준 건 김혜수와 염정아였다. 고민시를 향한 선배들의 열렬한 애정 공세가 고민시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박정민은 사랑받는 고민시를 보며 "많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고 할 정도였다.
 
고민시는 선배들의 애정을 "장을 열심히 봐서 냉장고에 가득 채워 넣은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혜수 선배님, 정아 선배님은 이미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절하게 해주시고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다는 마음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영화 '밀수' 스틸컷. NEW 제공
그는 "'밀수'라는 팀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설렘도 있지만, 긴장되고 위축되는 게 있었다. 이 선배님들 사이에서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블랙홀만 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혜수 선배님이 '난 이번에 자기랑 같이 작업할 수 있어서 기쁘다'면서 손잡고 말씀해 주셨다. 그때 그 기억은 정말 못 잊는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정아 선배님은 혜수 선배님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다. 너무 멋진 여성처럼 리더랑 찰떡인 선배님"이라며 "정아 선배님의 걸크러시 같은 부분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포인트다. 그리고 진짜 재밌으셔서 같이 있으면 많이 웃었다"고 말했다. 무심한 척 아닌 척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많이 챙겨준 염정아였다.
 
김혜수·염정아를 비롯해 현장의 모든 배우가 자신의 촬영이 끝나도 떠나지 않고 남아 다른 배우들을 응원했다. 지금도 단톡방을 통해 돈독한 팀워크를 이어가고 있다. 고민시는 "단톡방에 혜수 선배님이 오늘의 날씨라든지 이런 거 조심하라면서 올려주신다. 그럼 '선배님, 진짜 대박이에요'라는 댓글을 남긴다. 요즘도 단톡방이 아주 활발하다"며 자랑했다.
 
영화 '밀수' 고옥분 역 배우 고민시. NEW 제공
'마녀'를 통해 큰 스크린에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부터 고민시는 늘 영화에 대한 욕심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봉오동 전투'에서처럼 작은 역할이라도 영화에 참여하고, 한 컷이나마 자신의 모습이 나오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밀수'에서 자신의 낯선 모습이 나오는 순간 "내가 이래서 영화를 사랑하는 구나" 싶었다.
 
"'밀수'는 진짜 저한테 한 여름날의 꿈 같았던 추억이 같이 담겨 있어요. 작품을 보면서 있었던 일이 다 생각나는 경우가 드문데, '밀수'는 영화를 보면서 어디서 어떻게 찍었는지가 파노라마처럼 다 지나갔거든요. 그래서 너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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