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신규 교사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교권침해 및 도 넘은 학부모 민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거워졌다. 그런데 이 같은 학부모들의 무리한 요구가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이하 '금쪽이') 등 오은영 박사 프로그램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인 서천석 서울대 의학박사는 지난 19일 SNS에 글을 올려 "'금쪽이'류의 프로그램들이 지닌 문제점은 방송에서 제시하는 그런 솔루션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사안에 대해서 해결 가능하다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매우 심각해 보이는 아이의 문제도 몇 차례의 상담, 또는 한두 달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듯 꾸민다"고 짚었다.
또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결 못하는 부모와 교사에게 책임이 갈 수밖에 없다. 실력이 부족하든, 노력이 부족하든 둘 중 하나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라고 반문했다.
실상 서 박사의 이야기는 오은영 박사가 주장하는 훈육법보다 육아 프로그램 속 환상적 솔루션의 폐해를 비판한 것이었지만 이 솔루션 제공의 당사자인 오은영 박사 역시 책임론을 피해갈 순 없었다. 온라인 상에서 몇 차례 확대·재생산을 거치자 '내 아이의 마음'에 집중하는 오은영 박사의 훈육법 자체가 '갑질' 학부모 세력을 파생 시켰다는 주장까지 이르렀다. 설상가상, 그가 집필한 서적 내에서 학부모 민원 매뉴얼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결국 오은영 박사는 지난 26일 텐아시아와 인터뷰를 해 자신이 학부모 민원·갑질의 원인이 아님을 소상히 밝혀야 했다.
여기에서 오 박사는 '금쪽이' 프로그램 비판과 훈육법에 대해 "한두 번으로 좋아진다고 말한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건 불가능하다. '금쪽이'는 치료가 아닌 방향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라며 "'아이를 이해해보자'는 건 아이의 어려움을 알아가 보자는 뜻인데 이걸 무작정 다 받아주고 들어주라는 걸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더라. 훈육은 가르치는 사람이 주도권과 통제권을 가지고 금지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학부모 민원 매뉴얼로 꼽힌 책 내용에 관해서는 "제 의견과는 완전히 다르다. 앞뒤 맥락이 다 잘려져 의도가 훼손됐다"며 "선생님이 잘못된 게 아니라 아이가 교사와 반대 성향이라 괴로워하는 경우를 쓴 거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점에 대해 선생님께 잘 설명해 드리고, 같이 힘을 합해서 잘 가르치도록 좋게 이야기를 나누라는 의미이고, 책 앞뒤 맥락을 보면 오히려 선생님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겨있다"고 전했다.
몇 년 간 상당한 신뢰를 바탕으로 부모들 사이 오은영 박사의 훈육법이 '진리'에 가까운 '기준'이 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동 문제 행동을 넘어 최근에는 가족 문제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물론, 여기에는 솔루션 당사자 오은영 박사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 박사의 지적처럼 흔히 전문가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의 고질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오은영 박사 책임론에 가려 정작 훈육법의 표준화에 앞장섰던 방송사들의 책임은 사라진 셈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줘야 된다'는 오은영 박사의 훈육법을 교사에게 적용하면 당연히 어렵다. 교사가 한 아이만 챙길 수가 없는 건데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이 과도한 기대를 심어주는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으로 보인다"라고 여론의 경향성을 짚었다.
이어 "아동의 문제 행동이 '솔루션'을 제공하면 뚝딱 변하는 것처럼 방송이 편집해서 내보내니까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그런 마법 같은 능력을 가지길 기대하는 부분이 더 크다"며 "오은영 박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를 절대자처럼 만들고, 이상향을 내세우는 방송 포맷에 문제가 있다. 이른바 전문가들에 대한 방송이라면 책임 있게 균형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서이초 사건으로 촉발된 교사 인권 및 학부모 권리 관계 문제를 '한 개인의 탓'으로 떠넘겨서는 현실에서 어떤 '솔루션'도 찾을 수 없다는 조언이다. 설사 오은영 박사가 본인 결정으로 다수 방송 출연을 통해 아동 심리 분야의 대표성을 가지게 됐다고 해도 그렇다.
하 평론가는 "오은영 박사도 방송에 나오면서 대표성과 상징성을 획득하고, 대중의 과도한 기대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이런 방송 출연이 곧 자신의 영업장 홍보가 되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전문가 입장에서 일정 범위를 넘어 본인이 미화된다 싶으면 (그 수위를) 조절해야 되지 않나 싶다"고 하면서도 "다만 서이초 사건으로 벌어진 사회 현상을 오은영 박사 탓이라고 과도하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마녀사냥처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학부모 잘못이면 제 3자의 책임이 될 순 없다. 오은영 박사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바도 없고, 성인의 잘못을 다른 이에게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태의 본질은 교사 인권과 학생 인권, 학부모 권리 사이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이냐에 있다. 아무리 방송 출연자 탓을 해도 본질적 문제 해결이 안되면 소용이 없다. 사회적 에너지를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쏟아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