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자동차 업계의 발빠른 전동화 전환과 맞물려 전기차 충전 시장을 선점하려는 표준화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에는 그간 독자 노선을 고집해온 테슬라를 중심으로 '표준 동맹'이 형성되면서 충전기 시장에 큰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표준 전쟁의 본격화 속에 국내 대표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그룹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2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재 테슬라의 자체 충전 규격인 '북미충전표준'(NACS)을 채택한 완성차 업체는 벤츠·볼보·GM·포드·리비안·닛산 등이다. 여기에 폭스바겐과 스텔란티스도 물밑에서 NACS 채택 여부를 두고 테슬라와 접촉중이라고 한다. 테슬라가 충전 기술을 개방하겠다고 발표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일종의 '표준 동맹'이 꾸려지고 있는 셈이다.
전기차가 대세로 자리 잡아가면서 충전 시장은 급격한 성장세다. 시장조사기관 아이디테크엑스는 글로벌 전기차 충전 시장 규모가 10년 안에 16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덩달아 국가 차원의 지원도 만만치 않다. 미국 정부는 이미 전기차 보급 확대 취지에서 2026년까지 75억달러(약 9조5000억원)를 전기차 충전기 보조금에 쓰기로 결정했다.
테슬라의 '표준 동맹' 결성에는 이처럼 급성장이 예상되는 충전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각 업계마다 표준만이 갖는 특유의 장악력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테슬라 자체 충전 규격의 이름부터가 '북미충전표준'이다. 외신들도 테슬라가 충전 표준을 장악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섰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글로벌 전기차 충전 시장은 NACS와 '결합충전방식'(CCS)이 양분해왔다. NACS는 CCS와 비교해 충전 포트가 작고 더 가볍다. 하나의 단자로 완속·급속 충전이 가능하다. 다만 시간당 250㎾로 충전 속도가 느리다. CCS는 AC(교류)와 직류(DC) 단자가 별도로 존재해 크고 무겁지만, 시간당 350㎾로 급속 충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현대차그룹은 CCS 규격을 채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최대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그룹이 최근 다른 글로벌 완성차의 이탈처럼 NACS 규격을 채택할지 주목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영국 자동차 축제 행사에서 NACS의 채택 여부를 묻는 질문에 "내부적으로 논의중이지만 아직은 모르겠다"며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최근 흐름과 테슬라가 점유한 북미시장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현대차그룹의 NACS 채택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테슬라는 북미 충전소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2위인 폭스바겐과 6위 스텔란티스까지 테슬라 동맹에 합류하면 NACS를 중심으로 한 표준화 전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현대차그룹이 마냥 테슬라가 주도하는 질서에 편입되지 않을 거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유가 NACS 규격을 따를 경우 현대차가 개발한 800V 초급속 충전의 이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력 기반이 400V인 테슬라 차량에 특화된 NACS를 접목하면 CCS 방식보다 충전 속도가 확연히 느려진다.
다음으로 꼽히는 이유가 데이터 문제다. NACS 충전기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테슬라 앱을 깔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타사 고객의 정보가 테슬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NACS 충전기 구멍 5개 중에 3개는 전력 공급용이고, 나머지 2개는 데이터 수집용이다. 테슬라 '표준 동맹'의 진짜 목표가 바로 '데이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여기에 NACS 방식이 추후 국제 표준으로 통용될 지 여부를 판단하기에 아직 섣부르다는 점도 고민의 지점으로 분석된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테슬라랑 같이 갔을 때 고객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 고려해야 한다. 테슬라 스탠다드에 맞춰 충전했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충전 효율이 효과적으로 나오는지도 검증해야 한다"며 "고객에게 혜택이 되는 부분에서 최종적으로 충전 연합에 가입할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