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는 두려움, 1991, 리움미술관 제공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이탈리아에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있다면 한국에는 김범이 있다.
허를 찌르는 해학으로 고정관념을 깨는 작가 김범(60)이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오는 27일부터 12월 3일까지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을 연다. 개인전은 2010년 아트선재센터 전시 이후 13년 만이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서베이 전시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70여 점이 나왔다.
"당신이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작가의 작품은 보이는 것과 실체 간의 간극을 통해 '새롭게 보기'를 제안한다. 한 마리의 소가 자기 몸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묘사한 '무제'(1995)와 산의 능선처럼 보이지만 사실 작가가 사용하던 열쇠의 골을 확대해 그린 '현관 열쇠'(2001) 등 '인지적 회화 연작'이 그렇다. 사나운 개가 벽을 뚫고 달아난 흔적 같은 '두려움 없는 두려움'(1991)은 드로잉을 입체적으로 설치한 작품이다.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 2010, 매일홀딩스 소장, 리움미술관 제공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교육된 사물들' 연작은 교육과정의 맹점과 교육된 현실의 부조리를 작가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테이블 위에 돌이 놓여 있고 그 돌에게 정지용의 시를 낭송해주는 영상으로 구성된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2010), 모형 배에게 지구가 육지로만 되어 있다고 가르치는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2010) 등은 '웃픈' 감정을 불러온다.
노란 비명 그리기, 2012,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1분 6초. ⓒ김범 '노란 비명 그리기'(2012)는 EBS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의 '밥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강사가 추상화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영상이다. 붓으로 노란색 선을 한 획 한 획 그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다가도 예술가의 애환이 느껴져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완성된 작품은 전시장에 걸려 있다.
'폭군을 우한 인테리어 소품'(2016)은 불의한 권력자를 위한 인테리어와 생활 소품을 만드는 디자인 브랜드 프로젝트다. 특정 분야의 제작자·디자이너와 협업해 상품을 제작·판매하고 수익금을 공익을 위해 기부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싱가포르 판화 전문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쥐와 박쥐 월페이퍼'를 설치했고 해당 이미지를 활용한 굿즈를 리움 스토어에서 판매한다.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김범은 대중에게 쉽사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관람객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지만 김범은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하며 한국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특유의 재치로 우리를 웃게 만들지만 농담처럼 툭 던진 의미심장한 이미지는 자기 성찰의 장을 열어주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9월 7일에는 김범 작가와 김성원 부관장, 주은지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큐레이터가 이번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무제(지평선 위의 업무), 2005, 빗자루, 164 x 21 x 17cm. 개인 소장. 리움미술관 제공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