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강남 납치·살해' 사건에서 피해자 미행 등 강도예비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재판부도 직접 추궁했지만 "잘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승정 부장판사)는 24일 '강남 납치·살해' 사건 2차 공판에서 이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이씨는 이날 범행에 가담하게 된 경위와 방법 등을 진술했다. 그는 지난 1월 평소 알고 지내던 황대한으로부터 '피해자를 납치해 코인을 뺏자'는 제안을 받고 승낙했고, 그 대가로 고급 승용차와 1억원 가량을 받기로 했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렌트카를 이용해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피해자의 사무실과 주거지,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피해자 부모의 주거지 등 근처에서 잠복하며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직접 범행에 나선 피고인들에게 각종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살해 계획 등에 대한 질문에는 전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피해자 차량을 들이받은 뒤 어떤 방법으로 납치를 할 것인지, 납치한 뒤에는 어떻게 할 계획이었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검찰 측과 다른 피고인의 변호인 모두 "시신을 유기한 대청댐 야산에 왜 미리 갔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했지만 "그냥 둘러보러 간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변호인은 "경치가 좋지도 않았을 텐데"라며 다소 힐난하기도 했다.
검찰이 공개한 이씨와 연지호 사이 통화녹음파일에서 이씨는 갑자기 "살인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이 "대화 중 살인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냈다. 원래 피해자를 납치하고 마지막에 살해하기로 한 것이 아니었느냐. 거짓 진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이씨는 "말이 헛나온 것 같다"며 자신은 납치와 관련한 계획만 알았고 살인 모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찰 측 주신문과 변호인 측 반대신문이 끝난 뒤 재판부도 다소 황당하다는 듯 "왜 이런 말이 헛나오느냐"고 추궁했지만 이씨는 "잘 모르겠다. 죄송하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당초 경찰은 이씨에 대해 살인예비 혐의로 입건했지만 그가 범행 직전 일당들과 연락을 끊고 잠적한 점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 신청 단계에서 혐의를 강도예비로 변경했다. 검찰 역시 이씨를 강도예비 혐의로 기소했다.
주범 이경우와 황대한도 강도 혐의는 인정하되 살인을 공모하거나 계획한 적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부검을 감정한 감정인을 추가 증인신청 하겠다고 예고했다. 변호인 측에서 부검 감정서에 기재된 마취제 투여량이 잘못됐다는 취지에서 증거 채택에 동의하지 않고 있어서다.
재판부는 다음달 10일 공범 연지호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