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북적이는 집에서 사랑 넘치는 8남매…"서로 가장 좋은 친구" ②평균 출산율 3명인 교회…"아이 함께 키워준다는 믿음 덕분" ③다섯 남자아이 입양한 부부…6형제가 만드는 행복의 모양 ④부모는 슈퍼맨이 아니야…'같이 육아'로 아빠도 배운다 ⑤"내 자식 같아서" 온정 전하는 아버지들…"돌봄친화 사회로 이어져야" ⑥신생아 '1만 명' 만난 베테랑 의사가 말하는 '산부인과 의사생활' ⑦"나부터 먼저" 대한민국 1호 민간 출산전도사가 된 회장님 ⑧"아이는 공동체가 함께" 교회가 시작한 돌봄…부산에도 퍼지나 ⑨"한 지붕 아래 이모, 삼촌만 20명 넘어" 돌봄공동체 '일오집' ⑩"아이 가지려는 귀한마음, 비수로 돌아오네"난임여성 고군분투 임신기 ⑪초저출생 위기, '가임력' 높이는 냉동난자 지원 정책 고민해야 ⑫자발적 양육 공동체 '우가우가'…부산에 퍼져나간 돌봄의 가치 ⑬'노키즈존? 예스키즈존!' 아이 반기는 사회 분위기 조성해야 ⑭엄마 2명 중 1명 겪는 '산후 우울감'… 사회가 보듬어야 ⑮비상 걸리자 아이도 출근…경찰·소방 부부의 고군분투 육아일지 (계속) |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아이가 '엄마 오늘은 비상 안 걸려?'라고 해맑게 묻더라고요. 비상이 걸리면 아이들을 데리고 소방서로 출근하는데, 거기서는 감시하는 사람 없이 마음껏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 수 있거든요."
황현오(40)씨와 아내 홍혜란(42)씨는 부부 소방관이다. 같은 소방서에서 비밀연애(?)를 한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은 지호(10), 지환(8) 두 아들을 낳고 지금의 네 가족을 이뤘다. 재난 현장에서 화마와 싸우는 용감한 소방관 부부지만, '아들 둘을 키우는 육아가 힘들지는 않냐'는 질문을 하자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내저었다.
비상 상황에 아이들과 함께 출근…'내 집' 같은 소방서
부부 소방관에게 가장 큰 난관은 대규모 재난 상황이 펼쳐질 때다. 일터도 비상이지만 가정에도 비상이 걸린다. 홍씨는 "남편이 교대근무 중인 상황에서 자연재해로 비상근무가 걸려 두 사람이 동시에 출근을 한 적이 있다"며 "새벽 시간이라 아이들을 맡길 수도 없어 두 아이를 데리고 소방서로 함께 출근했다"고 말했다.
두 자녀를 소방서 당직실에 두고 업무에 뛰어드는 부모 마음은 편할 리가 없다. 그는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걱정이 컸지만, 그나마 아이들이 소방서를 좋아해서 다행이었다"면서 "이젠 함께 소방서에 출근하는 게 익숙한지 아이들이 먼저 '언제 소방서에 가냐'고 묻기도 한다"며 웃었다.
아빠 황씨는 뜻하지 않게 소방관으로서 몸이 먼저 움직이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던 중 인근을 지나던 폐자재 트럭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황씨는 "아이들을 안전한 곳에 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옥내 소화전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현장에 있던 관계자가 불을 꺼 실제 방수를 하지는 않았다"며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우와 아빠 대단하다'며 좋아하는데 뭔가 쑥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 자녀들은 친구들에게 엄마, 아빠가 소방관이라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부부는 이들이 커서 소방관이 되려 한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생각이다. 홍씨는 "소방관은 자기 일을 하는 동시에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과 기쁨이 큰 직업이다. 아이들이 소방관을 하겠다면 기쁘게 응원할 것"이라며 웃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었다. 정작 아이들은 소방관보다 경찰관을 더 좋아한다는 것. 홍씨는 "초등학생인 첫째는 경찰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둘째도 최근 경찰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직장에선 범인 잡는 교대근무, 집에선 '교대 육아'
"아빠 엄마가 경찰인 걸 아이들이 아직 인식을 못 해요. 길에서 제복 입은 경찰을 보고 무서워하더라고요. 조금 더 크면 청소년 경찰 학교에 데리고 가 아빠 엄마가 하는 일을 체험하게 할 생각입니다."
부산경찰청 생활안전계 김현식 경감(34)은 부부 경찰관이자 연년생 남매의 아빠다. 지구대에 함께 근무하던 아내와 2년간 연애한 끝에 2015년 결혼했다. 2016년 첫째 딸 윤정(7)과 이듬해 둘째 아들 윤제(6)를 낳았다.
김씨는 둘째 아들을 낳은 직후 '교대 육아'를 하던 시기를 잊지 못한다. 당시 김씨는 여청수사팀에 배치를 받아 주간과 야간 교대근무를 했다. 성폭력·가정폭력 등 예민한 사건을 다루는 데다 야간 근무까지 해야 해 몸도 마음도 지치는 시기였지만, 김씨는 오히려 이 시기에 그 전보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김씨는 "다른 직장인들은 평일 낮 시간대에 활동을 못 하지만, 야간 근무를 하면 다음 날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다. 그러면 아이들을 소아과에 데리고 가 예방접종도 하고, 공원에 나가 산책도 했다"며 "야간 근무하는 날도 오후 7시 출근하기 전까지는 아이들을 돌보는 데 '올인'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야간 근무는 휴게 시간이 2~3시간 정도는 있어 체력 안배를 잘 하면 육아가 가능했다. 아내도 같은 경찰이어서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며 "휴직한 아내는 두 아이를 챙기느라 밤새 한숨도 못 자는 날이 허다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쉰 사람이 아이들을 돌보는 게 당연했다"고 덧붙였다.
김씨 부부가 두 아이를 낳은 시기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부부가 함께 아이를 기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시기였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관리자급 경찰관들이 자녀를 기르던 시기는 가족보다 동료와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기성세대와 실제 육아를 하는 세대 간의 간극이 여전한 상황에서 김씨는 과감히 육아를 택했다.
김씨는 "동료들이 '비도 오는데 퇴근하고 막걸리 한 잔 하자'고 제안하는데 거기에 대고 '집에 가야 한다'며 딱 잘라 말하기는 사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이들 보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며 "내가 육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나보다 계급이 낮거나 뒤에 들어온 경찰관들은 그런 이야기를 앞으로 더 못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육아제도 있지만 사용은 "글쎄"…'제도 보완' 한목소리
경찰과 소방관 부부 모두 최근 조직 내 육아에 도움을 주는 여러 제도가 마련돼 육아 환경도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육아 휴직을 3년까지 보장하고, 만 5세 이하 자녀가 있으면 1일 2시간씩 '육아시간'도 쓸 수 있다. 소방관 부부를 난처하게 만들었던 비상근무 시에도 8세 미만 자녀를 둔 부부 소방관은 두 사람 중 한 명만 출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육아 관련 제도를 실제로 사용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왜 육아 휴직을 쓰느냐'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는 있지만, 제도 사용이 잦거나 기간이 길면 길수록 다른 동료들의 업무 부담은 증가하는 구조기 때문이다.
소방관 황씨는 "조직에서 육아휴직은 남성들에게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여전히 동료 업무가 늘어나게 되는 데 대해 미안함이 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남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말했다.
경찰관 김씨도 "지금도 몇몇 부서에서는 직원을 모집할 때 자녀가 있는 경찰관이 지원하면 '육아시간을 쓸 거냐'고 먼저 묻는다. 그런데 이걸 나쁘게만 볼 수 없는 실정"이라며 "교대 부서 한 팀에 보통 4명인데 1명이 없으면 공백이 크고, 2명이 육아시간을 쓰면 정말로 팀 운영 자체가 안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육아 휴직자나 육아 시간 사용자에 대한 대체 인력을 제공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육아 관련 제도를 쓰는 사람 수만큼 대체 인력을 지원한다고 하면 사무실마다 '편하게 쓰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며 "출산 장려 정책에 관련 예산을 많이 투입하고 있는데, 이런 보완책에 써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황씨 역시 "현장 교대근무 부서나 내근부서 모두 인력 충원이 빠르게 이뤄지면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쓰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