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발언과 행위로 상처를 줬다면 유감이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으면 상투적으로 내놓는 발언이다.
깔끔한 사과를 듣기 어렵다. 항상 전제를 붙인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강요하는 것처럼 들린다.
민주당이 돌고돌아 불체포 특권 포기를 발표했다. 그런데 앞에 '정당한 영장 청구'라는 전제가 붙었다. 뒤집어 얘기하면 '부당한 영장 청구'에는 불체포 특권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집권 15년을 해본 수권야당이 검찰의 영장청구를 '정당함과 부당함'이라는 정치적 수사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당당하지 못하다.
진통 끝에 출범한 민주당 혁신위원회는 1호 쇄신안으로 소속 의원 전원의 불체포 특권 포기 서약을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현 정권과 검찰의 정치탄압에 맞설 최후 방어 수단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며 머뭇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국힘의힘 의원 100여 명은 불체포 특권 포기 서약서를 썼고 정의당 의원들도 동참했다.
비명계 의원 등 30여 명이 뒤이어 불체포 특권 포기 의사를 밝혔다. 한 지붕 아래 특권을 포기하는 부류가 있고 유지를 주장하는 쪽이 있다. 당의 혁신안이 계파 갈등으로 이어지는 현실이 혁신위의 앞날을 예고하는 것 같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그것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나온 불체포 특권 포기를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고려했는지 묻고 싶다.
'정당한 영장'의 기준이 "국민의 눈높이"라는 대변인의 설명에 실소를 짓는 사람들이 많다.
사법리스크에 걸린 이재명 대표와 뇌물 혐의로 기소된 노웅래 의원, 돈봉투 사건의 이성만, 윤관석 의원의 영장 청구는 정당하지 않아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음을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불체포 특권 포기를 결의했지만 결의문도 없다. 당연히 서약서는 없다. 당론으로 정하지도 않았다.
이런 대국민 선언을 약속으로 받아들일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민주당 의원들이 쇄신안을) 안 받으면 망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혁신위원장의 말은 공갈포가 됐다.
민주당 혁신이 비상대책위원회가 아닌 혁신위원회 체제가 되면서부터 민주당 혁신은 스텝이 꼬였다.
민주당 혁신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주류의 기득권 포기가 허용될 때 가능하다. 이재명 대표 체제를 전제로 하는 쇄신안이 혁신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이유다.
옛말에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다. 청명과 한식은 그 절기가 보통 하루 차이라서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민주당이 18일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한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발표는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민주당은 망한다" 김은경 위원장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있다는 반증이다.
오늘 어중간한 개혁했다고 민주당이 당장 내일 살아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도무지 위기 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거대 야당으로 어떻게든 내년 4월 총선까지 끌고가면 국민들이 다시 선택해줄 것으로 믿는 것 같다.
국민과의 공감 능력 부족 정치가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민주당의 현실이다.
전권을 줬다는 혁신위원회의 1호 쇄신안 마저 물타기해버리는 민주당의 불감증이 언제쯤 치료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마찬가지 되버린 민주당의 혁신안, 이럴거면 혁신위원회를 왜 만들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