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300억 지급' 엘리엇 분쟁 판정에 취소 소송 낸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엘리엇 관련 조치 아냐"
"사실상 국가기관, 한미 FTA 없는 개념"
한동훈 "ISDS 취소 소송 반드시 필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에 1300억원가량을 지급해야 한다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대해 우리 정부가 취소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일부 명백한 계산상 오류에 정정을 신청하는 한편, 판정문상 주문과 이유가 다르게 표기된 불일치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석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중재판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관할, 즉 재판권 인정 요건을 잘못 해석해 정당한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특히 이번 판정의 주요 근거가 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관련 형사판결과는 법리상 궤를 달리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18일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한 것은 다른 개별 주주인 엘리엇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사안으로 볼 수 없다"며 제3국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우선 '소수주주는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주주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상법상 대원칙을 제시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두고 "엘리엇 투자와 관련한 조치"라는 중재판정부 판단이 이 원칙과 모순이라는 것이다.

법무부는 또 국민연금이 사실상 국가기관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나오지 않는 개념"이라면서 "이를 근거로 한국 정부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연합뉴스

아울러 우리 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삼성물산 소액주주가 제기한 합병무효 및 손해배상 소송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의 직권남용 등 행위가 있더라도 국민연금은 결과적으로 독립된 의결권 행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점도 강조했다.

앞서 지난 2015년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에 찬성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봤다며 '한미 FTA 위반'을 근거로 배상을 요구했다. 청구액은 7억7천만달러로 약 1조원에 달한다.

중재판정부는 엘리엇이 소송을 제기한 지 5년 만인 지난달 20일 엘리엇 주장 일부를 받아들여 우리 정부가 약 690억원을 배상하라는 취지의 판정을 내놨다. 엘리엇 청구금액의 약 7%에 해당하는 액수로 지연이자와 법률 비용 등을 더하면 배상액은 1300억원에 이른다.

엘리엇은 박근혜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실이 한국 검찰의 수사와 법원 판결을 통해 객관적 사실로 인정됐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당시 수사를 주도한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 장관, 이복현 금감원장 등 현 정부의 주요 고위직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이번 사건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다른 주주인 엘리엇에게 손해를 가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핵심"이라면서 "국민연금의 결정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람에 관한 형사 판결과는 법리상 궤를 달리한다"고 선을 그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윤창원 기자

한동훈 법무 장관은 "엘리엇 ISDS 판정에 대한 취소 소송 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현재 우리 정부가 진행 중인 다른 유사 ISDS 사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미국계 사모펀드 메이슨도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약 2200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국제중재를 신청했다.

법무부는 아울러 국제상설중재재판소 중재판정부에도 판정문에 오류가 있다며 해석·정정신청을 신청했다. 중재판정부가 엘리엇의 손해액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합병 후 엘리엇 측에 지급한 합의금을 '세전 금액'으로 공제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세후 금액'으로 공제하는 등 오류가 있다는 취지다.

법무부 관계자는 "중재판정부의 계산 오류로 정부가 부담할 손해배상금 원금이 약 60억원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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