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오게 만드는 것이 건축가가 해야 할 일 아닌가요?"(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2005년, 강원도 원주시 외곽 산간 지역에 뮤지엄 산(2만 2천 평 규모)을 설계해 달라는 건축주의 의뢰를 수락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2013년 5월 미술관이 문을 열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 곳을 찾았다.
지난 4월 개막한 뮤지엄 산 개관 10주년 기획전 '안도 다다오-청춘'은 누적 관람객 10만 명(7월 10일 기준)을 넘었다. 관람객의 호평에 힘입어 전시는 10월까지 연장한다.
지난 2019년 1월 문을 연 첫 번째 명상 공간 '명상관'에 이어 18일에는 안도 다다오의 신작인 두 번째 명상 공간 '빛의 공간'이 개장한다. 플라톤의 입체를 모티브로 조성한 '빛의 공간'은 노출 콘크리트로 만든 천장을 십자 모양으로 뚫어 자연의 빛이 쏟아진다.
미술관 내 북쪽 돌마당에 인접한 '명상관'이 돔형으로 빛이 부드럽게 공간을 감싼다면, 남쪽 조각정원에 위치한 '빛의 공간'은 빛의 대칭성을 강조하며 긴장감을 준다.
안도 다다오(82)는 지난 15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강연회와 간담회를 열고 "24살이었던 1965년, 유럽여행 중 로마의 판테온을 보고 많은 영감을 받았다"며 "판테온처럼 '빛의 공간'은 유리를 통하지 않고 천장에서 빛이 직접 들어온다. 이렇게 하면 자연을 직접 접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 근처 이바라키시의 교외 주택가에 위치한 빛의 교회(1989)는 정면에 십자 모양으로 뚫은 빛의 십자가가 교회의 상징처럼 됐다. 예배 중 비바람이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리를 끼워 넣었지만 안도는 "언젠가는 유리를 제거하고 싶다. 목사님께서 유리는 절대 안 뺄 거라고 하는데 계속 설득하고 있다"고 웃었다.
이날 강연에는 청중 2800명이 참석했다. 안도는 강연 말미 "인공 빛을 끄고 강연장의 양쪽 문 사이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만 비춘 채 강연하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안도는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했다. 한때 권투 선수 생활을 했지만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보고 건축에 매력을 느껴 건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세계적인 건축가로 우뚝 섰다.
대표작으로는 물·바람·빛 등 교회 시리즈와 지중미술관, 푼타 델라 도가나, 상하이 폴리 대극장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본태 박물관, 글라우스 하우스, LG아트센터 서울 등을 설계했다.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안도는 "지난 10년 사이 큰 수술을 두 번 했다. 담낭, 담관, 십이지장, 췌장, 비장 등 장기 5개를 떼어냈다. 대학 졸업장도 없다 보니 주변에서 '수준이 낮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좋은 학벌도 없고 장기도 떼어냈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았다. 평생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100살까지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여러분도 내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찾길 바랍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요. 자유와 용기, 호기심이 있다면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어요."
뮤지엄 산에는 연둣빛 사과 모양 야외 조각 '청춘'이 영구 설치됐다. 9개의 에디션으로 제작된 '청춘'을 영구 설치하는 건 효고현립 미술관, 나카노시마 어린이 책의 숲 도서관에 이어 세 번째다.
이 작품은 '청춘은 인생의 시기가 아닌 어떠한 마음가짐'이라는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에서 영감을 받았다. "목표 의식을 갖고 꾸준히 무언가를 해 나간다면 7080세대도 청춘이죠."
개관 10주년 기획전 '안도 다다오-청춘'은 2017년 도쿄를 시작으로 파리, 밀라노, 상해, 베이징, 타이페이에 이은 7번째 개인전이다. 도면, 모형, 스케치, 영상 등 안도의 대표작 250여 점을 공간의 원형, 풍경의 창조, 도시에 대한 도전, 역사와의 대화 등 4가지 섹션으로 나눠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