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수해 지역 '쑥대밭'…주민들 "복구 어쩌나" 한숨만

공주시 옥룡동 주택단지, 수마 흔적 고스란히…폐기물 산처럼 쌓여
청양군 특작물 한해 농사 모두 망쳐 망연자실…"농사 그만둬야하나"
논산시 논과 비닐하우스 있던 자리에 거대한 '강'

공주시 옥룡동 주택단지 골목에 폐기물이 쌓여있다. 고형석 기자

이번 집중호우 기간 500㎜가 넘는 물 폭탄이 떨어진 충남 공주시. 17일 찾은 옥룡동 저지대 주택단지 마을 일대는 수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흙탕물로 초토화된 집안과 차량.
 
골목은 쓸모없어진 가전제품과 집기 등 각종 폐기물이 작은 산처럼 자리 잡았다. 폐기물 수거 차량이 연신 거리를 다니며 집기 등을 수거해 분리했다.

공주시 옥룡동 주택단지에서 침수된 차량이 방치돼 있다. 고형석 기자

대피소에서 밤을 보내고 복구를 위해 집으로 돌아온 주민들은 집안에 아직도 들어차 있는 물을 퍼내거나 쓸 수 있는 집기를 분류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골목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보조기구에 의지한 채 집기를 매만지면서 집안 물청소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바닥에서 위로 절반가량 젖어있는 벽지로 미뤄봤을 때 집 안으로 물이 어느 정도 들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공주시 옥룡동 주택단지에서 침수 피해를 입은 주택. 고형석 기자

이동하던 중 만난 또 다른 어르신은 "제발 물청소만이라도 빨리 좀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물에 젖은 생활 도구들을 정리하던 주민 한혜숙 씨는 "저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전 재산을 다 잃었다"며 "새롭게 고치는 것도 문제, 고친 걸 나중에 갚는 것도 문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주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에 털썩 앉아 있기도 했고 눈이 붉어진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집을 바라보는 주민도 있었다.
 
제방이 무너지면서 수백 명이 대피한 청양군. 자정을 넘겨 대피하라는 연락을 받고 몸만 빠져나온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인양리, 대흥리 주민들은 물이 빠진 논과 밭, 주택으로 돌아가 처참한 모습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청양군에서 하천 제방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인상준 기자

70년 만에 새집을 짓고 저지대로 이사한 A 씨. 이사한 지 1년 만에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봤다.
 
동생과 누나 등 가족들이 복구에 총동원된 A 씨의 새집은 처참했다. 주택 밖에는 어른 목까지 물이 차오른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고 안방과 화장실, 거실 등은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특작물인 수박과 멜론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해 온 농가들은 이번 비로 인해 한 해 농사를 망쳤다고 하소연했다.

이번 폭우로 밭에 들어찬 물이 아직 빠지지 않았다. 인상준 기자

김모(70대) 씨 역시 수박과 멜론을 키우던 비닐하우스가 모두 물에 잠겼다.
 
김 씨는 "하우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이 차 들어 있었는데 지금은 다 빠진 상태"라며 "올해 농사는 다 틀렸고 농한기 때 철거하던가 해야 하는데 철재도 모두 주저앉아서 재사용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방이 무너지면서 빗물이 논과 밭, 주택 등이 침수된 인양리와 대흥리 일대는 무너진 하천 둑에 대형 모래포대를 쌓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논산에서 비닐하우스가 물에 잠겨 있다. 김정남 기자

논산에서는 논과 비닐하우스 있던 자리에 거대한 '강'이 만들어졌다.
 
김영신 원봉3리장이 동영상 속 '강'을 보여줬다. 원래는 김 이장의 비닐하우스와 논이 있는 자리라고 한다. 하지만 영상 속에서는 논은 아예 보이지 않았고 비닐하우스도 흰 지붕만 겨우 보였다.

날이 개고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물이 빠지기 시작했지만, 비닐하우스는 아직 절반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상태다.
 
원봉3리는 지난 16일 새벽 붕괴된 논산천 제방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제방이 복구되며 마을로 밀려들던 물길은 잦아들었지만, 농작물은 자취를 감췄다.

원봉3리에서 만난 한 60대 주민은 그날 밤을 되새기며 "정말 무서웠다"고 말했다. "새벽에 막 피하라는 소리에 높은 데 가서 있다가 돌아왔다"며 "막 물이 찼을 때는 진짜 집까지 들어오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논산의 한 축사에서 배수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김정남 기자

또 다른 주민은 기자가 서 있던 길 바로 앞 논을 가리키며 "여기까지 물이 가득 차있었다"고 했다. 논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지만 뻘로 가득했다.
 
길 한 곳 한가운데에는 컨테이너가 가로막고 있었다. 제방 앞에 있던 컨테이너가 제방이 터지며 떠다니다 전봇대에 걸린 것이라고 했다. 삶의 터전을 휩쓴 물의 위력은 그만큼 강력했다.

제방이 터진 뒤 컨테이너가 떠다니고 있다. 주민 김대수 씨 제공

전날보다 물이 많이 빠진 상황이라고는 했지만, 내비게이션을 켜도 원봉리 길 곳곳은 여전히 물로 가로막혀 있었다.
 
논산시 성동면 일대는 아직 곳곳이 잠겨있어 복구작업을 언제부터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주민 김대수씨는 "지금 계속 물바다가 돼있어 언제 마를지 모르겠다"며 "언제 저희는 복구를 하고 언제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는 모르는 상황인 거다. 이번 해는…"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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