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서 이달까지 4연속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면서도 추가 인상 가능성이 살아있음을 강조했다. 금통위원 6명 모두 3.75%로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밟을 수 있다는 입장으로, 추가 인상 여부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향후 기준금리 결정, 국내 가계부채 흐름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3.50%로 '4연속' 동결…"금통위원 6명 모두 3.75% 가능성 열어놔"
한은 금통위는 13일 오전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위원 만장일치로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 2월과 4월, 5월에 이은 '4연속 동결' 결정이다. 금통위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 흐름, 중국 경제의 더딘 회복에 따른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 비은행부문 리스크 증대 등을 동결 배경으로 설명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1년 전 대비)이 21개월 만에 2%대로 내려오며 진정세를 보인 반면 경제 성장 전망이 밝지 않고, 최근 새마을금고 사태 등을 계기로 금융 불안도 부각된 된 만큼 금리 부담을 가중시키기보다는 안정적 상황 관리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번 결정 후 기자간담회에서 "금통위원 여섯 명 모두 기준금리를 (현 수준보다 0.25%포인트 높은) 3.75%로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회의에서 말했다"고 밝혔다. 연내 인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인하를 논의한 금통위원은 아직 없다"고 답했다.
추가 인상 변수는…美 긴축 긴장 맞물린 '불안한 환율'
이 총재는 금통위원들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이유에 대해선 우선적으로 미국의 기준금리 결정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아직 안정됐다고 보기 어려운 원·달러 환율 상황을 꼽았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도 눈에 띄는 둔화세를 보이고 있지만 해당 지표가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있으며, 현실화되면 연준이 예고한 '두 차례 추가 금리 인상론'에 힘이 실리며 안전자산인 달러 강세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수입 물가 상승·금융 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환율 방어 차원에서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논리다.
한국시간으로 전날 발표된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1년 전 대비)은 3.0%로, 2021년 8월 이후 최소폭이었으며 시장 예상치(3.1%)도 소폭 밑돌았다. 이에 따라 시장에선 연준이 기존 예고와 달리 오는 27일 7월 연방공개시장회의(FOMC) 회의에서만 한 차례(0.25%포인트) 기준금리를 올린 뒤 인상 행보를 종료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13일 원·달러 환율이 전날 대비 14.7원이나 급락한 1274.0원에 마감한 것도 이처럼 느슨해진 시장 심리와 무관치 않다. 이 총재는 그러나 "미국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번에 내려갔다가 기저효과 때문에 조금 올라가는 패턴을 보일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에 통화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또 그것에 의해 환율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고 진단했다.
한은 금통위는 연준이 두 차례(총 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경우 베이비스텝을 고려 중인 것으로 보이지만, 만약 시장 기대대로 연준이 한 차례만 더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우리나라보다 금리 상단이 2.00%포인트 높은 5.50%에 도달해 달러 대비 원화 약세가 부각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 총재는 금리차가 1.75%포인트인 현재도 환율이 하락하고 있는 점을 들어 "환율이라는 게 이자율 격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가계부채 증가세도 변수
이 총재는 금통위원들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고려 중인 또 다른 원인으론 '가계부채 증가세'를 꼽았다. 그는 "이번 금통위 회의에서도 여러 금통위원들이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
한은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달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62조 3천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전달 대비 5조9천억 원 불어난 액수로, 석 달 연속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한 달 사이 7조 원 불어나 전체 가계대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이 총재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3% 이상인데, 이 비율이 계속 늘어난다면 우리 경제의 큰 불안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더 키울 수 없는 게 너무나 뚜렷한 사실"이라며 "가계부채가 예상보다 더 크게 늘어난다면 금리 뿐 아니라 거시건전성 규제를 다시 강화한다든지 여러 정책을 통해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가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면서 한은의 통화정책과 상충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도 기자간담회 과정에서 이어졌지만 이 총재는 "자금시장에 물꼬를 터주고 금융안정성의 악화를 막기 위해 미시 정책을 하는 것 자체는 한은과 상충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계부채는 부동산 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이걸 단기적으로 급격하게 조정하려고 하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크게 생길 수 있다"고도 했다.
증권가에선 이 같은 이 총재의 발언을 놓고 지난 금통위 때 보다 덜 매파(긴축 선호)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부동산시장 연착륙을 위해 미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언급 등은 추가 기준금리 인상에 상당한 허들이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라며 "(한은은) 연말까지 3.5%로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내년 1분기부터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고 전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