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아닌 '대한민국'?…김여정 입에서 나온 '투 코리아'

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김여정 부부장은 10일과 11일 미 공군 정찰기들의 활동을 비난하는 담화에서 남한을 그동안의 '남조선'이라는 말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언급했다.

10일 오후 담화에서는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 11일 오전 담화에서도 "'대한민국'의 군부"라고 했다. 이는 남북회담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조선중앙통신과 같은 관영매체에서, 즉 공식적으로 쓰지 않던 표현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공식 담화나 성명 등에서 우리를 대한민국이라고 지칭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국제경기나 대회, 남북회담, 제3자 발언이나 언론을 인용할 때는 대한민국으로 표기한 바가 있다"며 "정부로서는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의도와 향후 태도를 예단하지 않고 예의주시 하겠다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을 드나들 때는 '입출국'이 아니라 '입출경'이라 표현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이기도 한 김여정 부부장이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북한 지도부가 남한을 보는 시선이 '언젠가는 통일해야 할 한민족'이라기보다 '별개의 국가'로 변화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얼마 전 현정은 회장의 방북을 거절한 주체가 외무성이라는 것도 이러한 분석의 근거 중 하나다. 외무성 김성일 국장은 지난 1일 담화에서 "금강산 관광지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의 일부분이며 따라서 우리 국가에 입국하는 문제에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며 "이러한 원칙과 방침은 불변하며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다"고 했다.

아태위는 형식적으로 통일전선부 산하 외곽단체인 민간 대외활동 단체이되, 실제로는 대남 사업도 많이 담당해 왔다. 당국이 직접 나서기 어려운 일들에 민간기구가 나서는 식이었고, 현 회장도 과거 아태위를 통해 방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2023년에 와서는 외무성 차원에서 아태위가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고 공개 선언한 셈이다.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남한 통일부의 카운터파트인 통일전선부 산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도 존립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김 부부장은 이미 지난 2021년 3월 담화에서 "현 정세에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대남 대화기구인 조평통을 정리하는 문제를 일정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통일부가 2023년 2월 기준으로 발간한 '북한 권력기구도'에서 조평통 위원장직은 비어 있는데, 이는 2020년 1월 리선권 위원장이 외무상으로 자리를 옮긴 뒤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조평통 자체가 이미 폐지되고 없을 가능성도 있다.

2021년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개정된 노동당 규약은 당의 당면목적으로 규정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 수행"이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 실현"으로 변경됐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여기에 대해 북한이 80년 가까이 견지해 왔던 남조선 혁명론(적화통일)의 근거조항이 삭제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남북한의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 측면에서 '체제 경쟁'은 수십년 전에 끝난 지 오래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북한이 이른바 '대남 적화통일'을 포기하고 '국가 대 국가'로서 남북한의 '적대적 공존'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전환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대한민국'에 강조 표시를 한 것은 남북관계를 국가 간의 관계로 본다는 보다 명확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며 "남북한이 국가관계로 변화함에 따라 김여정의 역할도 변화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모양새가 굳어지게 될 경우, 다시 말해 남북한이 '형식적'인 면에서도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가 아니라 별개의 국가 취급을 받게 된다면,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일들의 폭은 더욱 좁아진다는 문제가 생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