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11일)을 앞둔 지난 토요일 서울 종로구 SC제일은행본점 앞에서 대형 아이스박스를 둘러싸고 승강이가 벌어졌다.
개 식용을 막으면 안된다는 대한육견협회 회원 200여명이 기자회견을 하고는 아이스박스에 담아온 개고기를 꺼내먹겠다고 하자 경찰이 이를 막아선 것이다.
거센 항의에 경찰이 결국 물러섰고 회원들은 장구와 꽹과리를 치며 개고기를 먹었다. 지나가는 시민에게 '맛있고 기름이 적어 좋은 보양식'이라며 시식을 권하기도 했다.
같은 시간 도로 대각선 건너편에서는 동물보호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개 식용 종식 촉구집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의 집회에 맞불을 놓으며 '개고기 시식'이라는 예상 밖의 반격을 시도한 셈이다.
대한육견협회 주영봉 생존권 투쟁위원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국민의 먹을 권리를 규제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국민 누구도 개를 먹지 않겠다면 모를까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동물보호단체 쪽에서는 대한육견협회가 개고기 시식 퍼포먼스까지 동원한 데 대해 유감이라는 입장이다.
동물자유연대 정진아 사회변화팀장은 "설문조사를 봐도 시민들 대부분은 개 식용 종식을 바라고 있다"면서 "반대 측의 (시식) 퍼포먼스는 유감스럽지만 일단 개 식용 산업 자체는 불법"이라고 말했다.
정 팀장은 "억지 주장보다는 생명 윤리를 기반으로 공생을 위한 결정을 해주셨으면 한다. 정부도 개 식용 종식을 위해 속히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 식용 문제는 해묵은 논쟁거리지만 지난달 28일 서울시의회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가 '개·고양이 식용금지에 관한 조례안'을 심사보류하면서 또 한 번 이슈로 떠올랐다.
이 조례안은 김지향 의원(국민의힘·영등포4)이 5월말 대표 발의했다. 원산지·유통처 등이 불명확한 개고기의 비위생적인 실태를 서울시가 집중 단속하고 개고기를 취급하는 업체에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시의회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국회가 상위법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심사를 보류했다.
그러나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개고기 시식' 시위까지 등장한 데서 보듯 생존권을 내세워 개 식용 종식에 반발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개고기 수요가 줄어드는 만큼 어차피 수년 내로 사라질 테니 당장 금지하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주장도 나온다.
종로구 종로5가에서 보신탕집을 하는 이모씨는 "40년 동안 장사를 했는데 하루아침에 못 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 당장 내일서부터 이 가게에서 굶어 죽으라는 소리"라며 "어차피 다음 대에는 장사를 안 할 테니 10년만 놔두면 될 일"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중구에서 보신탕집을 하는 60대 김모씨 부부도 "보신탕집을 하는 사람 중에선 우리가 젊은 축에 속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이 일을 못 할 테고 사 먹는 사람들도 더 줄어 이런 식당들은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식당 주인들은 서울시 조례안에 포함된 업종 전환 지원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김씨는 "업종을 변경하면 그릇부터 시작해 모든 걸 바꿔야 하는 데 어떤 지원을 하겠다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현실성이 없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개·고양이 식용 금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동물학대와 불법행위를 이유로 신속하고 확실한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상 '가축'으로 명시되지 않은 개·고양이 도살은 동물보호법과 축산물 위생관리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정하는 식품 원료도 아니어서 보신탕 판매는 식품위생법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관습'을 이유로 식용 목적의 개 사육과 도살 등이 자행돼 온 데다 식용 자체는 법으로 금지돼 있지 않아 생긴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례안을 발의한 김 의원은 "개들이 사육장에 갇히고 도살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더 많은 희생을 막으려면 조례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갑자기 업종을 바꾸라고 하면 물론 난처할 것"이라면서도 "서울에 개고기 취급 음식점 229곳이 있다. 이들을 다른 '보신 음식'으로 특화한 식당으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에서 외부자문 활동을 하는 정지현 법무법인 해광 변호사는 "개를 도살하고 식품으로 유통하는 것은 불법인데 먹는 것은 불법이 아닌 상황"이라며 "법적인 공백이 있는 만큼 조례안이 아니어도 법령 단계에서 (식용 금지를) 입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