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에 대한 특혜 논란으로 제동이 걸린 서울-양평고속도로 건설 사업과 관련해 여당이 '백지화'와 '재추진'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뒷수습에 나섰다.
어렵사리 타당성조사에 이른 지역 숙원 사업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섣부르게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론이 야당을 넘어 해당 지역의 반발로까지 번진 데 따른 반응이다.
총선이 3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민심을 고려할 때 사업을 전면 중단하는 '초강수'를 당정이 발맞춰 밀어붙이긴 어렵다는 판단이 그 배경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론 사업 재추진을 염두에 둔 셈이다.
당은 우선 사업 재추진 여부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대신, 야당을 겨냥한 여론전에 나섰다.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지난 9일 논평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이 오죽 시비를 걸었으면 원 장관이 양평군의 숙원 사업을 백지화한다고 했겠는가"라며 "10년간 공들여 다 차려진 밥상에 민주당이 침을 뱉으며, 밥상을 엎어버린 꼴"이라고 책임의 화살을 돌렸다.
그는 이어 전진선 양평군수와 군민들이 민주당사를 찾아 항의한 사실을 언급하며 "사업이 재추진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는 양평군수와 군민들의 간절함을 부디 깨닫길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 원 장관은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에 갑작스레 백지화를 선언했다. 다만 논란이 커지자 민주당 측의 해명과 사과가 있다면 무산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한발 물러섰고, 당은 이에 뒷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전제는 민주당의 '선(先) 책임 인정'이다. 당 차원에서 정부에 '백지화 철회'를 요구하는 방안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역시 이번 논란의 책임 소재를 민주당에 분명하게 지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사업 무산 위기에 끓어오르고 있는 지역 민심을 고려하면 당에서도 잠정적으론 사업 재추진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소속인 전진선 군수는 전날 민주당사를 찾아가 해당 사업에 대해 "당리당략을 떠나 경청해 주시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지난 8일 국민의힘 이철규 사무총장을 만나서도 사업 재추진을 요청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민주당의 무리한 공세로 여당이 어려운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도 "이렇게 오랫동안 추진돼 온 지역 사업을 총선을 앞두고 쉽게 중단할 순 없는 일이다. 상황을 지켜보되 재추진 가능성을 닫아놓아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속도로 건설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양평이 보수정당 당세가 강한 수도권 지역이란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곳에선 정병국 의원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내리 5선을 지냈고, 21대 국회에서도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김선교 전 의원을 배출해 냈다. 김 전 의원은 회계책임자의 벌금형으로 현재 의원직을 상실한 상태지만, 전 양평군수로서 해당 사업 추진 경위를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등 사업 재추진의 불씨를 살리려 하고 있다.
당내 한 수도권 지역구 의원은 "백지화 발언은 정치인으로서 원 장관이 던진 '한 수' 아니겠나. 민주당의 억지에 대응하는 선언적 표현일 뿐"이라며 "공식적인 사업 무산이 아니라 재논의 차원으로 해석해야 한다. SOC 사업은 그렇게 쉽게 중단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