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적극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중은행의 과점 체제를 적극 해소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본점을 지방에 둔 지방은행이 수도권 위주로 영업하는 시중은행들과 경쟁이 가능할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비은행권 지급결제나 특화전문은행 등 관심을 모았던 사안은 별다른 진전 없이 검토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혀 '용두사미'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규 플레이어' 도입 적극 허용하겠다는 금융당국….경쟁 가능할까?
은행권 내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제시한 카드는 신규 플레이어의 적극 도입이다. 구체적으로 지방은행은 전국적 점포망을 가진 시중은행으로, 저축은행의 지방은행으로 연쇄적 전환을 적극 허용하기로 했다. 이미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이 시중은행 전환 의사를 타진해 왔다. 김태오 DGB금융그룹 회장은 5일 기자들과 만나 연내에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검토하고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련 절차를 밟아 연내 전환이 완료될 것으로 금융당국은 보고 있다.시중은행·지방은행·인터넷전문은행 신규인가를 추진하는 것 역시 신규 플레이어를 시장에 유입하겠다는 방침의 일환이다. 기존에는 금융당국이 인가방침을 발표하면 신규 인가 신청·심사가 진행됐지만 앞으로는 건전성·사업계획서를 갖춘 사업자에게 심사를 거쳐 인가를 내주는 방식을 도입한다.
금융당국은 또 저축은행 인수·합병(M&A)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지방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비율을 합리화해 시중은행과의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IT기업의 금융업무 문턱을 낮추는 내용도 담겼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사전브리핑을 통해 "은행이 과점력으로 높은 예대금리차를 책정해 역대 최대 이자수익을 거두면서 기업은 과점 이윤을 얻고 소비자의 후생은 감소했다"며 "은행권의 경쟁을 촉진해 과점이윤을 감소시키는 것이 직접적인 이슈"라고 이번 방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 시중은행과 규모 등 체급 차이가 상당한데 시장에 새로 진입한다고 해서 유의미한 경쟁 상대로 클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경우 이미 선점하고 있는 고객 및 영업 지역이 존재한다. 수도권에서 아무런 제한없이 영업만 할 수 있게 한다고 해서 의미있는 '메기'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점포가 없고 새로운 영업방식으로 시중은행과 경쟁 효과를 기대했던 인터넷 전문은행도 결국 주택담보대출 비중을 키워나가는 등 지본의 영업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방은행도 결국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궁극적으로 소비자 혜택이 커지려면 은행 간 경쟁을 통해 대출 금리 인하와 예적금 금리의 인상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또한 지방은행들에게 쉬운 상황은 아니다. 최근 지방은행들은 고금리에 연체율이 상승하고 건전성이 악화하며 리스크 관리에 나선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권 경쟁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시중은행의 진입은 필요하지만, 이 것이 새로운 위험성이 되지 않도록 건전성과 재무구조에 대한 보다 확실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기관을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식으로 경쟁을 강화하면 소비자 보호에 한계가 있을 수 있어 당국이 예대금리차가 너무 벌어지는 등 금융소비자에게 피해를 미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유심히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은행권 지급결제 등 관심 사안은 '검토'에 그쳐…'용두사미' 비판도
금융권에서는 비은행권 지급결제나 특화전문은행 등 관심을 모았던 사안이 '검토 추진'으로 마무리된 것에 대해 용두사미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위는 증권사 등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업무 확대·허용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급결제시스템 안정성 저하 등 우려와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전브리핑에서 이준수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지급 결제 시스템의 안정성이라는 관점에서 최근에 불안한 시장 상황에 대해 안심할 수 있는 타결책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을 해왔다"며 논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고객의 편의성과 서비스의 획기적인 확장 등을 들며 지속적으로 필요성을 주장해 왔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비은행권 지급결제를 두고 금융당국과 한은이 입장을 어떻게 보일지가 향후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증권사 등 비금융권 지급결제 허용 문제는 은행권과 비은행권 간 입장의 차이가 너무 커서 조정이 쉽지 않다. 은행권의 반발이 거셀 경우 비용을 최소화해야 하는 정책 결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해묵은 논쟁인만큼 양쪽의 의견 조율이 가능할지 불확실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특화전문은행도 현행 제도 하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만 했다. 금융당국은 앞서 미국 SVB를 특화은행 도입을 위한 주요 성공 사례로 제시하며 "소상공인, 벤처기업 등에 대한 관계형금융‧신용평가고도화 등을 통해 기존 은행서비스 공백을 해소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SVB 사태 이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김 부위원장은 "SVB사태가 일어나며 건전성이나 유동성에 대해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 제도 하에서 검토를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향후 특화전문은행에 대해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다면 그 때 새로운 제도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