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르 에르난데스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023 VNL에서 전패를 당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지난 2021년 대회부터 27연패의 깊은 수렁에 빠졌는데, 특히 지난해에 이어 2회 연속 전패를 기록하는 참혹한 성적표를 받았다.
16개 참가국 가운데 유일하게 승점 1도 얻지 못한 채 최하위에 머물렀다. 승점 0으로 대회를 마친 것 역시 2회 연속이다. 한국은 VNL에서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해보지 못한 채 '승점 자판기'로 전락했다.
이번 대회에서 수확한 세트 수는 '3'에 불과했다. 지난 6월 1일 튀르키예에서 시작한 1주차에선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한 채 4경기 모두 셧아웃 패배를 당했다. 6월 15일부터 브라질에서 치른 2주차에서도 4경기 전패를 당했는데 마지막 독일전에서만 간신히 한 세트를 따내는 데 만족했다.
6월 27일에는 모처럼 한국으로 돌아와 홈 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3주차 일정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도 4경기 전패로 첫 승 사냥에 실패했고, 불가리아전과 중국전에서 각각 한 세트를 수확하는 데 그쳤다. 안방에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대회를 마쳤다.
대표팀은 2021년 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이룬 뒤 '배구 여제' 김연경(35·흥국생명)을 비롯한 베테랑들이 태극 마크를 반납해 세대교체를 감행했다. 2021년 10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세자르 감독은 국제 대회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 위주로 명단을 꾸려야 했다. 그만큼 선수들에게 성장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납득할 만한 변명을 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부임 후 1승 28패로 초라한 성적을 냈고, 승리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연패 끝에 가까스로 크로아티아에 거둔 1승이 유일하다. 세자르 감독에겐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여전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선수들의 성장에 지나치게 집착한 탓에 참담한 결과를 자초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선 주장이자 에이스인 박정아(30·페퍼저축은행) 대신 김다은(22·흥국생명), 정지윤(22·현대건설) 등 젊은 선수들을 적극 기용했다.
홈에서 열린 3주차 4경기에서 김다은이 팀 내 최다인 57점을 터뜨리는 등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생애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고 나선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하지만 결국 대회를 전패로 마쳤고, 대표팀의 분위기는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연패가 길어지고 있는 만큼 선수들은 자신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성과 없이 성장만 외친 세자르 호의 현실이다.
VNL에서의 부진은 FIVB 세계 랭킹 하락으로도 이어졌다. 이번 대회 전 23위였던 한국의 순위는 35위(108.46점)로 추락했다. 2020 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이룬 뒤에는 11위까지 올랐는데 현재 무려 20계단 이상 미끄러진 것.
FIVB는 각종 국제 대회 경기마다 포인트로 각국의 세계 랭킹을 매긴다. 한국의 세계 랭킹 하락은 최근 부진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이런 와중에 그 동안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긴다. 세자르 감독은 소속팀 일정 탓에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고, 이번 대회에 앞서 열린 강화 훈련에도 합류하지 못했다.
이에 세자르 감독이 대표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의견이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면서 "나는 대표팀에 열중하고 있고, 오히려 불만을 가져야 하는 쪽은 소속팀이라 생각한다"고 당당하게 답했다. 매 순간 책임을 회피하고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세자르 감독이다.
대표팀은 이제 아시아선수권, 올림픽 예선,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에 나선다. 특히 최종 목표인 올림픽 본선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세자르 감독에게 한국 여자 배구의 미래를 맡겨도 되는지에 대한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