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더 깊고 기이해진 아리 에스터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

외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유전' '미드소마' 단 두 편의 영화로 '현대 호러 마스터'라는 수식어를 단 아리 에스터 감독. 그가 내놓은 세 번째 장편은 트라우마와 감정, 그리고 공포라는 자신의 장기에 보다 기이하면서도 상징적인 면을 더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우리가 잘 알면서 동시에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리 에스터의 심연을 만나게 해준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엄마 모나(패티 루폰)를 만나러 가야 하는 보(호아킨 피닉스)의 기억과 환상, 현실이 뒤섞인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 기이한 여정을 그린 영화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자신의 단편 '보'(Beau)에서 시작한 '보 이즈 어프레이드'(Beau Is Afraid)를 두고 "10년 동안 구상한, 나의 개성과 유머가 고스란히 담긴 가장 나다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주인공 보의 심리를 따라가는 일종의 심리 어드벤처 영화다. 보의 복잡한 심리 세계를 그의 시선으로 뒤따라가는 만큼 다소 불친절하고 난해해 보인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즉각적으로 머리로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일단 보를 따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더 쉽게 완주할 수 있다.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보의 현실은 현실이라기보다 보의 두려움과 트라우마로 가득한 뒤틀린 보의 내면세계를 투영한 듯하다. 성인이 된 보는 어린 시절 엄격한 엄마의 훈육(訓練) 속에서 자라면서 일종의 트라우마를 안게 된 인물이다. 보는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요소를 비롯해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외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편집증을 앓는 보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의심스럽고 위협적인 요소다.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 그게 스스로를 자신 안의 그림자에 옭아맨 보가 바라보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앞서 말했듯이 보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은 '실제'라기보다는 그의 어둡고 뒤틀린 내면을 거치며 재탄생한 기이하고 초현실적인 '과장된 공포'의 재현, 즉 보의 심리세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이한 현실을 만든 건 보의 트라우마다. 자신을 집착적으로 사랑하는 엄마 모나를 두려워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보의 모습은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보는 외형으로는 성인, 정확히는 중년 남성이지만 그의 심리 상태는 과거 소년 시절에 머물러 있다. 그때의 두려움에 발목 잡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면서 약과 엄마에게 의존한다.
 
보는 외형적으로는 이미 '성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소년'인 인물이다. 영화 초반부터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상징물이 등장하는 점, 보가 생물학적 남성으로서 제구실을 못 해 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보는 심리적으로 남성성이 거세된 채 혹은 미성숙한 채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보가 또래 여성과의 성적인 관계를 통해 자신의 남성성이 살아있음을 확인하지만, 관계의 상대방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면을 보면 정신적 성숙 없이 육체적으로만 남성성이 비대해졌음을 암시한다. 즉,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미성숙한 채 몸만 자라나 외형적·육체적인 남성성만 획득했고, 이 둘 사이 부조화는 다시금 보를 트라우마 안에 갇히게 만든다.
 
보는 엄마, 다시 말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결국 마지막 상황에서조차 엄마를 찾기에 바쁘다. 공포스러운 현실과 이상향에 대한 판타지라는 긴 여정을 거쳐온 보의 내면은 여정이 무색하게 여전히 출발점에 머물러 있다.

외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마치 파놉티콘 같은 심판의 장 중심에 선 보는 그간의 행적에 대한 비난 속에서도 스스로를 변호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발언조차 하지 못한다. 마지막 엄마의 집에서 벌인 보의 행동 그리고 보가 대중 앞에서 심판받는 과정에서 보인 모습을 통해, 우리는 보가 과연 정말 엄격한 엄마 때문에 두려움에 갇혀 세상으로부터 괴리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미성숙한 모습을 탓하기 가장 쉬운 수단이 엄마였는지에 대한 답을 알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고통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보다 자신의 밖에 있는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보 역시 '엄마'에게서 두려움이 시작했을지 몰라도 결국 자신 스스로 엄마의 그늘 밑에 있기를 선택하고, 불안과 공포의 원인을 엄마에게로 돌렸다. 한마디로 '루저'다. 이러한 점에서 보의 최후는 결국 보가 만든 파국이고, 이는 블랙코미디에 가장 어울리는 결말인지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는 보의 여정을 따라 앞을 향해 달리는 것 같지만, 보의 내면세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걸 상징하는 것이 바로 '물'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보가 물에 빠져 죽음을 맞는다는 건데, 영화 속 보의 이상하고도 기괴한 여정의 시작에도 물이 있다. 영화 초반 의사는 보에게 약을 처방하면서 반드시 물과 함께 복용하라고 한다. 약병에는 물과 함께 복용하지 않을 시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문구도 있다. 어쩌다 보니 집에는 물 한 병 없고, 단수마저 된 상황에서 보는 지옥 같은 집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물 한 병을 구하기 위해 시작된 외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결국 마지막 심판이 이뤄지는 곳 역시 물이다. 중년 보가 물이 가득 찬 욕조에서 겪는 사건, 중간중간 보의 어린 시절 기억 속 욕조와 관련된 사건의 반복과 그의 이상향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물이 등장한다. 심판이 이뤄지는 곳, 물 위에서 의지할 곳이라고는 고장 난 배 위 좁은 공간뿐인 곳에서 보는 최후를 맞이한다. 결국 보는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물'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외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처럼 다양한 상징과 은유, 독특한 상상력이 결집된 아리 에스터 감독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라는 피카레스크(악한(惡漢)을 주인공으로 하는 문학 양식)는 누가 무엇을 보고,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현실과 상상이 뒤엉킨 시각적 공간에서 보를 끝까지 따라가는 것이다. 그 자체로도 우리는 보의 세상에 진입한 것이다.
 
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이 뒤엉킨 보를 끝까지 놓치지 않게 만드는 건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힘이다. 그의 열연이 있었기에 기괴하기까지 한 보의 내면세계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면서도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 '조커'에서 보여준 호아킨 피닉스의 놀라운 열연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는 또 다른 결로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179분 상영, 7월 5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외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메인 포스터.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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