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0만명의 가계대출자가 원금과 이자를 갚는데 소득 대부분을 사용해 최소 생계를 이어가기도 힘겹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 펜데믹을 거치면서 부동산과 주식 등 과도한 자산 투자와 경기 부진 영향으로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난 데다, 올해 초까지 이어진 금리 상승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빚갚는데 소득의 40% 이상을 쓰는 대출자들
2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가계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현재 국내 가계대출 차주(대출자) 수는 1977만명으로 집계됐다.이들에 대한 전체 대출 잔액은 1845조3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하면 차주 수와 대출 잔액은 각각 4만명, 15조5000억원 줄었다. 하지만 감소율은 0.2%, 0.8%로 크지 않은 수준이다.
1인당 평균 대출잔액도 3개월 사이 9392만원에서 9334만원으로 0.6%(58만원) 줄어드는 데 그쳤다.
문제는 전체 가계대출자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3%로 추산됐다는 점이다.
DSR은 지난해 4분기(40.6%) 40%대로 올라선 뒤 40%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2018년 4분기(40.4%)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대출받는 사람의 전체 금융부채 원리금 부담이 소득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하기 위한 지표다.
대출자가 한해에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인데 수치가 올라갈수록 빚을 갚는라 소비 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1분기 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대출자들은 평균 연 소득의 40% 정도를 금융기관에서 진 빚을 갚는 데 써야 한다는 얘기다.
소득보다 원리금 상환액이 더 많은 차주들 175만명
특히 DSR이 100% 이상인 차주도 전체의 8.9%에 달했다.가계대출자 175만명(1977만명 중 8.9%)의 연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과 같거나 소득보다 많다는 의미다.
이 비중은 2020년 3분기(7.6%) 이후 2년 6개월 동안 계속 상승하고 있다.
DSR이 70% 이상, 100% 미만인 대출자도 124만명(6.3%)에 달했다.
보통 금융당국과 금융기관 등은 DSR이 70% 정도면 최저 생계비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소득을 원리금 상환에 써야 하는 상황으로 본다.
결국 전체 가계대출자 중 300만명이 원리금 상환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득 67%를 빚 갚은 데 써야하는 취약차주
여러 곳에서 최대한 돈을 끌어 쓰고 소득과 신용도까지 낮은 대출자들의 DSR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올해 1분기 말 기준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수는 226만명으로 이들의 전체 대출 잔액과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각각 31조2000억원, 1억2898만원으로 추산됐다.
다중채무자의 평균 DSR은 62.0%로 집계돼 전체 소득의 절반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사용했다.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 상태인 '취약차주'의 경우 1분기 말 현재 DSR은 평균 67.0%로 집계됐다.
한은 "대출 연체율 비은행 중심으로 빠르게 나타날 것"
최근 금융권의 대출 연체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가계대출자 중 소득으로 빚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한은이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대출 연체율은 올해 3월 말 현재 은행과 비(非)은행 금융기관에서 각 0.30%, 1.71%에 달했다.
은행권 연체율은 2019년 11월(0.30%) 이후 3년 6개월 만에, 비은행권 연체율은 2020년 11월(1.72%) 이후 2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작년 하반기 이후 가계대출 연체율이 금융권 전반에서 오르고 있다"며 "2020년 이후 취급된 대출의 연체율 상승 압력은 비은행금융기관에서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문제는 가계대출 부실이 단순히 금융 시스템 불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물 경기 회복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진행 중인 금리인상 정책이 이제 최고점을 확인하는 수준이어서 고금리 부담이 아직 제대로 나타나지도 않았다는 평가다.
고금리 여파가 소비와 투자, 부동산 가격 등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면 1년 안팎의 시차가 걸리는 만큼, 올해 하반기에도 연체율 상승과 소비 회복 둔화 등의 영향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