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살해된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수원 냉장고 영아들'에 대해 장례 절차가 제대로 진행될지 관심이 쏠린다.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 사태를 감추려고 서둘러 자녀 시신을 화장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피해아동의 '마지막'에 대해서도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모는 수사 대상…시신 인계도 장례도 '불투명'
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냉장고 영아 시신 두 구는 사망 후 각각 4, 5년 만에 발견된 뒤 열흘째인 이날까지 경기 수원시 내 한 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
지난달 21일 장안구 한 아파트 자택 냉장고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직후 이곳에 옮겨졌고, 이튿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 작업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다.
장례식장 측에 따르면 안치 이후 고인들에 대해 직계가족과 친족이 찾아오거나 장례식 준비 사항 등을 문의한 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경찰은 시신을 누구에게 언제 인계할지, 또 장례비용 등은 어떻게 처리할지 등에 대해 유족, 지방자치단체 등과 논의를 진행 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지부진한 양상이다. 숨진 아이들의 친부가 시신을 인계하겠다는 뜻을 경찰에 내비쳐 왔으나, 친모에 이어 자신도 방조 혐의로 형사입건 됐다가 다시 불송치되는 과정을 겪으며 의사 결정이 미뤄지면서다.
더욱이 친모가 구속 송치된 상태에서 추후 검찰 수사 과정에 친부가 또 다시 피의자로서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시신 인계와 장례 절차 등은 거듭 지연될 여지도 있다. 보통 친권자인 부모의 시신 인계가 불가하면 조부모 등 친족과 인계 의사를 타진하게 된다.
경찰 관계자는 "부모이기는 하지만 피의자에게 피해자들을 넘길 수는 없는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 시신을 인계할 주체 등을 판단해 유족 및 검찰 측과 관련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수원시 "유족 판단 고려해 공영장례 여부 검토"
시신 인계가 되더라도 정상적인 장례식이 마련될지는 미지수다. 경제적 이유나 기존 자녀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 장례 절차가 생략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자체가 공영장례를 통해 아이들의 마지막이라도 보듬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수원시는 시신 인계 등의 상황을 감안해 숨진 영아들에 대해 공영장례를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여부 등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시신 인계와 장례를 결정할 권한은 친권자인 부모나 유족에게 있어, 이를 포기해 무연고자가 되지 않는 한 시에서 공영장례를 강행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수원시 공영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는 무연고자 또는 유족이 시신 인계를 거부하거나 그 밖에 공영장례가 필요하다고 시장이 인정하는 경우로 지원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장례 여부는 우선적으로 친권자와 유족의 선택에 달려 있는 사안이다"라며 "단, 시에서도 공영장례 조건에 부합하는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 유족 측에게 시신 인계에 대한 판단 결과를 조속히 알려달라고 요청했는데 아직 답변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가해자 손에 달린 학대아동 장례, 지원책도 한계
이처럼 대부분의 아동학대 사망의 가해자가 부모이기 때문에 피해아동에 대한 추모의식은 생략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제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를 보면 2019~2021년 3년간 국내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연간 40건가량으로, 가해자 중 부모인 비율은 평균 9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구속된 상태에서 사망한 아동에 대한 장례 여부는 대부분 후견인인 친족들에게 맡겨지지만, 사건이 알려지길 꺼려하면서 장례 절차를 밟지 않으려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양부모의 학대와 방임으로 두 달여간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 사망한 '민영이'나 김치통에 방치됐던 여아 등도 추모 없이 화장될 뻔 했다가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와 경찰 등의 도움으로 빈소를 차릴 수 있었다.
지자체들이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공영장례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가해자이자 친권자인 부모나 시신을 인계할 친족 등이 존재하는 피해아동에게는 무연고 조건에 맞지 않아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지자체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이 장례를 돕는 방법도 있지만, 유족의 신청과 특수한 상황에 한정해 이뤄지는 이른바 '신청주의' 방식이어서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 같은 실태와 관련해 경기도와 서울시 등 일부 지역에서는 관련 조례에 '아동학대로 사망한 경우 연고자가 구속·가족관계 단절 등의 사유로 장례를 치를 수 없으면 지자체가 장례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추가 규정하는 등 최근 제도 개선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후견인이 있을 경우 장례를 지원·진행할 강제력은 없다.
"마지막 존엄 지키고 제대로 기억해야"
생명의 존엄을 지키고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의 죽음에 공공이 더 적극적인 손길을 뻗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번과 같은 사건에 대한 장례는 절차적인 측면보다도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사회적 추모 의식으로서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취지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는 "존엄의 문제다.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의 미안함, 사회적 도리 차원에서라도 엄숙하게 장례를 치러줘야 한다"며 "공영장례 등을 우선적으로 치를 수 있게 한 뒤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도 검토해 볼만 할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배근 회장도 "생명을 지켜주지는 못했어도 애도해주는 것은 사회의 책임으로 볼 수 있다"며 "자녀를 살해해 친권이 제한되거나 상실되면 결국 해당 아동보호를 지자체장이 맡게 돼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공영장례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더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