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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제주특별자치도 17년…기초자치단체 부활할까 (계속) |
오영훈 제주지사가 공약으로 내건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은 현행 제왕적 도지사 체제에 대한 도민들의 불만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이후 4개 시군이 2개 행정시로 통폐합되고 시장도 도지사가 임명하는 하나의 광역체계로 재편되면서 자율적 시정 운영은 사라지고 민원 불편은 더 커졌다고 생각하는 도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주도가 지난 3월 도민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도민 인식조사에선 현행 행정시장 임명제의 문제점으로 도지사 권한 집중에 공감한 도민이 74.3%나 됐고 자율적 시정 운영 어려움(53.9%), 주민 행정 참여 곤란(41.8%)에도 많은 도민들이 공감했다.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을 위해 지난해 8월 15명으로 구성된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출범했다. 제주형 행정체제 도입 등을 위한 공론화 추진 연구용역도 진행돼 중간보고회와 도민경청회, 전문가 토론회, 300명의 도민참여단 숙의토론회 등 1차 공론화 작업이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진행됐다.
2차, 3차, 4차 공론화에선 제주형 행정체제 계층구조와 행정구역의 대안이 제시된다. 이를 위해 여론조사와 숙의토의, 도민경청회, 도민토론회, 도민참여단 숙의토론회 등이 오는 10월까지 이어진다.
올해 말까지는 행정체제 주민투표안이 제시되고 연구용역 최종 보고회도 열린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최적안이 나오면 제주특별법 개정 작업 등을 거쳐 오는 2026년 지방선거부터 적용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행정체제 개편은 사실상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수순인데 기초자치단체 모형으로는 기관통합형과 기관대립형이 논의되고 있다.
기관통합형은 법인격이 있는 기초단체를 구성하되 기초의원만 주민들이 직접 뽑고 단체장은 의원들이 뽑는 반면 기관대립형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을 모두 주민직선으로 선출하는 과거 4개 시군이 존재했을 때의 방식이다.
이같은 계층구조와 함께 행정구역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도 크다. 기초자치단체가 도입된다면 3개 시로 개편할지, 과거처럼 4개 권역으로 운영할 지를 놓고 1차 공론화 과정에선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국회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나누자는 주장이 나왔고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더해 동제주시와 서제주시를 추가하자는 의견, 인구가 많은 동지역은 독립적인 시로 승격해야 한다는 주장, 산남과 산북으로 나누는 대신 동군과 서군으로 구분하자는 의견 등이 이어졌다.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해선 정부나 국회의 도움도 절실한데 일단 분위기는 좋은 상황이다. 기초자치단체를 설치하는 경우 제주도지사가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주민투표 실시를 요청할 수 있게 한 '제주특벌자치도 설치와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행안위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또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의 구성을 달리하는 경우, 즉 기초자치단체의 형태도 주민투표로 결정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기초자치단체 형태를 어떻게 할 지, 행정구역은 몇개로 할 지 등을 단일안으로 제시하면 이를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고 내년 4월 총선을 전후로 예상되고 있는 주민투표에서는 현행 체제를 유지할 지, 새로운 체제를 적용할지 물을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6월 출범한 강원특별자치도와 내년 1월로 예정된 전북특별자치도가 기초자치단체를 유지하고 있는 점도 제주도 입장에선 유리한 상황이다. 광역체계 일원화를 명분으로 출범한 제주특별자치도였다는 이유로 번번이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는데 한계를 보였지만 강원과 전북의 사례는 기초자치단체를 다시 도입하려는 제주에는 더없이 좋은 모델이다.
그러나 과거 우근민, 원희룡 도정에서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이 좌절되는 등 행정체제 개편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우근민 도정때인 2013년에는 제주도의회의 벽을 넘지 못했고, 원희룡 도정 시절인 지난 2019년에는 정부가 '행정시장 직선제는 특별자치도 설립 취지에 맞지 않고 도지사와 행정시장 사이에 문제가 있을 때 조정이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제주특별자치도 7단계제도개선 과제에서 제외했다.
오영훈 제주도정이 추진하는 제주형 행정체제제 개편은 내외부의 상황이 그 어느때 보다 좋지만 과거의 사례처럼 언제 어디서 돌출 난제가 나올지 안심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오영훈 제주지사는 특별자치도 제도개선 과제를 한 번의 법 개정으로 일괄적으로 권한을 이양받는 포괄적 권한 이양 방식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7차례의 제도개선이 있었지만 절반 가까이가 삭제된데다 핵심 이양 과제로 손꼽힌 재정특례와 자치권한 등은 정부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할 때는 연방제 수준의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한다며 국방과 외교, 사법을 제외한 모든 중앙 정부의 권한을 이양한다고 했지만 번번이 지역형평성 논리에 가로막혀 좌절됐다.
이런 점에서 강원특별자치도와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은 외롭게 단계별 제도개선으로 더디게 권한 이양을 받아온 제주도로선 천군만마가 될 수도 있다. 제주와 세종, 강원, 전북이 포괄적 권한 이양을 한목소리로 외칠 경우 정부와 국회를 움직일 수 있고 지역 형평성 논리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