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로 한국 독자들이 뜨거운 사랑을 받은 프랑스 SF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2)가 '개미' 한국어판 출간 30주년에 30번째 신작 '꿀벌의 예언'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꿀벌의 예언'은 꿀벌이 사라지고 인류 멸종의 위기가 닥친 2053년 지구를 목격한 주인공이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고대 예언서 '꿀벌의 예언'을 찾아 시공간을 넘나들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베르베르는 28일 오전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달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먹는 과일과 채소의 70%가 꿀벌 수분으로 열매 맺는다. 인간은 꿀벌을 통해 꿀도 얻는 것에 감사해도 부족한데 살충제와 환경오염 등으로 꿀벌 생태계가 파괴되고 자연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를 잃고 있다"며 미래에 다가올 현실을 이 책에 그렸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 30여 개 언어로 번역돼 200만 부 넘게 팔려나간 '개미'(Les Fourmis·1991)의 절반이 한국에서 거둔 성적이다. 한국에서 지난 30년간 30종 57권의 책이 출간됐다. 총 3500만 부가 팔렸고 그 중 한국이 1천만 부를 차지할 정도로 유독 한국에 두터운 독자층을 두고 있다.
이 같은 인기에 대해 그는 "저의 성공은 한국 출판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좋은 출판사를 만나야 좋은 독자를 만날 수 있다"며 "출판사가 '한국 독자들이라면 이해해줄 것'이라며 출간한 뒤 큰 인기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인들은 과거 어려운 역사를 기적적으로 헤쳐오며 오늘의 한국이 있게 했다. 프랑스 독자들은 과거 노스텔지어에 집착하는 반면 한국 독자들은 미래지향적이다. 주변국에 늘 경계심을 가져야 하는 지정학적 위치, 부족한 천연자원 등 열악한 환경에서 오로지 인적자원으로 높은 문명을 이뤘고 세계적인 국가로 우뚝 선 역사와 미래와 첨단기술에 대한 높은 관심이 저의 미래에 대한 책의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최근까지 대형 공연장에서 이야기와 노래로 실험적인 공연을 하고 있다는 그는 "나는 체제 밖의 작가다. 문학을 공부한 적도 없다. 내 직업과 일을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작품 쓸 때마다 내용도 문체도 구성도 모두 바꾼다. 독자들과 미래에 대해 소통하는 즐거움을 글쓰는 일을 통해 느낀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온 그에게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인공지능)의 등장에 대해 "결국 문학의 질을 높일 것"이라며 신기술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AI는 과거에 만들어진, 이미 존재하는 것에 한해 능력을 발휘하는 수준이다. 현재의 지식안에서만 작동한다. 이미 존재한 책을 카피만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창의성이나 독창성이 결여돼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설가의 작업은 이미 과거가 된 작 작업이 아닌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것을 다루는 것"이라며 "제 일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AI에게 '개미'라는 작품의 후속 이야기를 이어 써보라고 하면 가능하겠지만, 나는 이미 쓴 개미를 다시 쓰지 않는다. 새로운 작품 쓸 때 내용도 문체도 구성도 바꾼다. 이세상 어떤 AI도 제가 무엇을 쓸지 알 수 없고 쓸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AI를 이용해 결과적으로 복제하는 방식의 창작은 결국 독자들의 외면으로 도태되고 모방하는 작가들이 설 자리도 잃게 될 것이라며 AI 등장 때문에 작가들은 더 독창적이고 더 과감하게 글을 쓰게 되면서 문학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AI를 윤리적으로 통제하는 국제기구의 존재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AI도 결국 도구이기 때문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따라 위협이 될 수도 있고,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핵도 원자력으로 전기를 생산하지만 핵폭탄이 될 수 있고, 인터넷도 올마른 지식 전파 통로일 수 있지만 거짓 정보의 유통처가 될 수 있다"며 "이런 AI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보호 툴을 만드는 것이다. 부정적인 AI를 막기위한 긍정적 AI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차기작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현재 집필 중인 차기작 '왕비의 대각선'(가제)은 이순신 장군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이순신이라는 한 인물의 이야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와서 고유의 문화와 에너지를 발견하는 건 즐거움이자 놀라운 경험"이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때론 연구자 이상으로 '사회적인 동물'에 천착해 온 그는 자연을 소재로 인류가 직면한 문제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오늘의 책임을 일깨운다.
베르베르는 그의 인터뷰집 '베르베르의 조각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책 속에서 긍정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일련의 불행한 사건을 보면서 새로운 돌파구나 해결책을 찾은 미래를 상상한다"고 말했다.
신간 '꿀벌의 예언'은 알레르트 아인슈타인의 말로 시작한다.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인간에게 남은 시간은 4년뿐이다."
베르베르는 이번 방한 동안 각종 강연과 소통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은 한국 독자들과 만나는 일정을 짰다. 그의 책이 단순히 SF소설이 아니라 그의 말처럼 미래지향적인 한국 독자들이라면 가져야 할 미래에 대한 책무를 나누고자 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