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토요일' '나 혼자 산다'에 고정 출연 중인 '예능인'이기도 한 키가 태민을 보며 말했다. 5곡 무대를 꽉 채운 오프닝을 마친 후 환해진 무대 위, 관객에게 첫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샤이니가 누구이고 태민이 누구인지 알 법한 관객들 앞임에도 키는 태연히 능청을 떨었다. 태민은 "샤이니의 막둥이"라며 자기소개했고 민호, 키가 차례로 인사를 이어 나갔다.
어느 공연이, 그것도 단독 콘서트가 중요하지 않겠냐 싶겠지만 특히 올해 콘서트가 샤이니(SHINee)에게 지니는 의미는 컸다. '컨템퍼러리 밴드'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한 지 꼭 15주년 되는 해였고, 한국에서 대면 콘서트를 하는 건 무려 7년 만이었다. 막내 태민까지 군 복무를 마쳐 '군백기'를 종료하고, "손꼽히게 치열한" 준비 과정을 거친 정규 8집 '하드'(HARD) 발매에 앞서 조금 일찍 팬들에게 무대를 공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변수가 생겼다. 팀의 리더이자 메인보컬인 온유가 건강 문제로 활동을 중단했다. 앨범은 온유·키·민호·태민 4인이 참여했으나, 온유는 콘서트에서 빠지게 됐다. 첫 공연 2주를 앞두고 전해진 소식이었다. 2017년 세상을 떠난 종현의 부재로 '4인'으로 재정비된 지 6년, 처음으로 '3인' 버전 단독 콘서트를 해야 했다. 하지만 샤이니는 공연을 미루거나 취소하지 않았다. 예정대로 공연은 진행됐다.
오후 4시 6분, 스피커 음량이 확 커지면서 '런어웨이'(Runaway)가 흘러나왔다. 암전된 무대, 샤이니 콘서트를 알리는 거대한 전광판(가로 44m, 세로 12m)이 자꾸만 오류가 난 듯 지직거리고 음악도 변조돼서 나왔다. 정규방송을 종료했을 때 나는 노이즈 이후, 공중에서 우주선 모형의 구조물을 타고 샤이니 키·민호·태민이 등장했다. 첫 곡은 정규 6집 두 번째 EP 수록곡 '케미스트리'(Chemistry)였다.
황상훈 SM 퍼포먼스 디렉터가 연출한 '퍼펙트 일루미네이션'은 "이 공연장에서 발생하는 빛과 음악과 호흡만으로 진행되는 공연"이라는 민호의 말처럼, 선택과 집중을 극대화한 공연이었다. 숨 고를 틈을 위해 마련되는 그 흔한 VCR 영상조차 없었다. 시원하게 트인 대형 전광판으로 넓은 시야를 확보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중심은 '무대'였고, 무대를 펼치는 '샤이니'에 있었다.
상대에게 끌리는 마음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라이크 잇'은 청량함과 파워풀함을 모두 잡은 곡이었고, 슬로우를 건 듯 속도를 늦춘 안무로 호응을 얻었다. 멤버 태민이 유난히 좋아하는 곡이라고 소개한 '스위트 미저리'는 이별 후 상대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그린 일렉트로닉 팝이다. 상당한 보컬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곡으로 들렸고, 역시나 샤이니는 안정적으로 소화했다.
다른 곡과 달리 어두운 무드였던 '주스'는 마치 긁는 듯이 목소리를 내는 점이 새로웠으며, 멤버 손짓으로 댄서들이 모두 쓰러지는 엔딩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덴티티'는 골반을 활용한 춤으로 샤이니만의 관능미를 발산한 곡이었다. 5월에 열린 15주년 팬 미팅에서 선공개한 '더 필링'은 드럼, 베이스, 기타, 키보드(2), 퍼커션으로 이루어진 밴드 라이브 연주로 한층 더 사운드가 풍성해졌으며, 신남도 배가됐다.
'무릎 꿇고 있잖아'라는 가사에 맞춰 정말 무릎을 꿇었을 때 특히 팬들의 함성이 대단했던 '하트 어택'(Heart Attack), 샤이니표 청량 계보를 잇는 퓨처 사운드 댄스곡 '코드'(CØDE), 그동안 발표한 타이틀곡 중 가장 이질적인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이니스럽게' 흡수해 소화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돈트 콜 미', '15주년 샤이니'의 여유를 바탕으로 섹시한 분위기를 끌어올린 '바디 리듬'(Body Rhythm), 샤이니는 한 명도 빠짐없이 준수한 보컬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케 한 '빈칸'(Kind)까지 레퍼토리가 퍽 다채로웠다.
'데리러 가'(Good Evening) '셜록'(Sherlock) '에브리바디'(Everybody) '뷰'(View) 등 샤이니를 대표하는 곡들도 세트리스트를 촘촘히 채웠다. '데리러 가'에서는 키의 고음이 돋보였고, 샤이니 퍼포먼스의 새 기원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셜록'은 왜 대중과 팬, 평단에게서 모두 호평을 받았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무대였다. '에브리바디' 때 태민이 인이어 혹은 액세서리에 문제가 있는 듯 잠시 불편한 기색을 보였으나 흐트러짐 없이 무대를 마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올해로 8년 된 '뷰'는 수백 번 불렸을 텐데도 처음 들었을 때의 신비로움을 여전히 간직한 노래라는 점이 새삼 신기했다.
개인적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적인 이유에서 나올 확률이 낮겠다고 예상한 곡이 있었다. 바로 데뷔곡 '누난 너무 예뻐'(Replay)였다. 정규앨범만 8장, 미니앨범과 싱글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곡을 보유한 팀이다 보니 초기 곡은 후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행히 '누난 너무 예뻐'와 '산소 같은 너'(Love Like Oxygen)는 살아남았고, 반갑게 감상했다. 편곡 버전이라 이른바 '슙틱탁' 하는 도입부를 포함해 특유의 풋풋함이 묻어나는 '누난 너무 예뻐' 원곡을 온전히 들을 수 없다는 게 작은 아쉬움이었다.
모두가 자기 몫을 해내는 팀이라는 것은 15년이라는 세월로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이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남았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부재를 느끼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드림 걸'(Dream Girl)이나 '에브리바디'처럼 퍼포먼스 대형이 뚜렷한 무대에서는 한 사람의 빈자리가 주는 영향이 상당했다. 종현이 떠나기 전 곡들은 다섯이서 부르던 걸 넷이 아닌 셋이 나누게 된 것이라, 각자 파트가 너무 빠르게 돌아오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솔로 가수로서도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태민은 안무는 물론 보컬 면에서도 놀라울 정도의 안정감을 자랑했고, 키 역시 탄탄한 라이브 실력과 개성 있는 음색으로 '샤이니의 맛'을 담당했다. 주로 랩을 맡았던 민호의 활약도 기대 이상이었다. 부쩍 늘어난 보컬 파트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했는데, 특히 '재연'(An Encore) 때 민호의 목소리로 듣는 폭발적인 고음이 신선했다.
팬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는 타이틀곡 '히치하이킹'(Hitchhiking)과 공연의 문을 열었던 '런어웨이'로 앙코르 무대를 한 샤이니는, 팬들의 끊임없는 요청으로 성사된 샤이니 콘서트 사상 첫 '앵앵콜' 곡으로 '더 필링'을 불렀다. 총 27곡, 공연 시간은 약 3시간에 달했다. 무반주로 깜짝 선물한 '사.계.한'(Love Should Go On)과 밴드 라이브로 짧게 부른 '루시퍼'(Lucifer)까지 합하면 29곡이었다. "이제 아낄 게 없어, 마지막이야"(키) "우리는 오늘 다 쏟아낼 예정"(태민) "정말 이 한 몸 불살라 버리겠다"(민호)는 각오를 내세운 샤이니는 결국 그 약속을 지켰다.
"이렇게 정말 많은 분들 앞에서 소중한 시간, 넘치는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고 여러분들께 항상 보답하고 싶어요. 아티스트로서 여러분께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거고요. 정말정말 이 3일간 너무 행복했어요." (태민)
"샤이니 올해 15주년입니다. 저희 정말 열심히 달려왔고 여러분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희 샤이니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여러분. 저희를 믿어주시고 기다려 주신다면 항상 새롭고 멋있는 모습으로 보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민호)
사흘 동안 체조경기장에서 3만 명의 관객을 만난 샤이니는 오늘(26일) 정규 8집 '하드'로 컴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