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들기]KBS 수신료 분리징수하면 선택적 납부된다?

KBS 김의철 사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과 대응 방안을 밝히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실이 추진 중인 TV 수신료 분리징수 도입을 철회하면 자신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황진환 기자
KBS 수신료 분리징수가 코앞이다. 지난 16일 방통위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이후 KBS도 헌법소원심판청구, 진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 총력 저지에 나서 치열한 법적 공방이 예고된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규제 심사를 거쳐 개정안을 의결하고,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국무회의 심의 및 의결, 대통령 재가 등을 거쳐 3개월 내로 개정을 완료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중요한 쟁점은 시행령 개정을 통한 수신료 분리징수가 적법한지, 그리고 단순 분리징수 만으로 대통령실 국민제안 여론조사의 단초가 된 '수신료 납부거부권 행사'가 가능한지에 대한 것이다.

수신료 분리징수=상위법 위반? "시행령 범위 초과 가능성"

전문가들은 KBS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 시작부터 일련의 과정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공공서비스나 다름없는 공영방송의 중요 재원 징수방식 변화가 이렇게 단기간에 이뤄질 순 없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회적 합의와 공론의 부재다.

미디어 정책 전문가인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수신료 관련 정책 수립과 집행은 공론을 거쳐야지 한두명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 대통령중심제에서 권력 비판과 견제가 공영방송의 역할이기에 대통령실에서 정치적 결단을 할 사안도 아니다. KBS 재원 구조를 바꾸는 사안이 온라인 여론조사를 근거로 진행됐다는 것도 절차적, 내용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감성적 평가가 아니라 전문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새언론포럼 이완기 회장은 "수신료 분리징수는 타 유럽 국가들 사례를 보더라도 재원을 확보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몇 년 동안 진행한다. 대통령실 권고안의 근거가 된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 자체가 중복이 가능했던 것으로 나타났고, 방통위는 국무조정실 심사도 생략, 입법예고 이후 통상 40일 간 의견을 청취하는데 그것도 10일로 단축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방통위의 의결 과정에 대해선 "방통위는 지금 방통위원장 대행에, 3인 체제인데 정상 인원(5인)으로 보면 과반도 안되는 2명이 시행령 개정안을 결정했다. 면직된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이 가처분 인용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 (수신료 분리징수를) 못하게 되니 급박하게 서둘렀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도 "야당 추천위원을 거부하고, 방통위원장을 면직시키면서 정부 여당 위원의 다수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진행이 됐다. 최소한의 형식적 법 논리에 따라 타당할 수도 있겠지만 방통위는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갖춰야 하는 기관이다. 정치 논리로 다수성을 강제한 상태에서 공영방송 시스템을 흔들면 나중에 법률적 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개정안이 현실화된다 해도 법적 공방의 여지가 남아있다. 수신료 징수방식에 대한 시행령은 상위법의 기술적 집행을 용이하게 하는 집행규칙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이 공사(KBS)가 지정하는 자에게 수신료 징수의 위탁을 허하는 방송법 제67조를 제한한다면 '시행령의 범위'를 넘어설 가능성이 생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권영국 변호사는 "상위법인 방송법을 보면 위탁 징수하는 곳에 대한 수수료 지급 규정은 시행령에 위임이 돼 있지만 수신료 징수방식을 위임하는 규정은 없다. 결국 시행령은 수신료 징수를 더 원활하게 '집행'하기 위한 규칙이라 상위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상위법을 제한하게 된다면 집행명령으로서 그 범위를 초과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신료 선택적 납부는 '불법'…KBS 공영방송 기능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린 '공영방송 장악 음모, 수신료 분리징수 책동 중단 촉구' 사회 각계원로 및 언론단체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
현행법상 KBS 수신료는 시청료의 개념이 아니라, TV 수상기를 보유한 이상 월 2500원의 수신료를 납부해야 한다. 이미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서도 물 이용 부담금처럼 90여개 존재하고 있는 '특별부담금'과 같은 성격이란 것이 인정된 바 있다. 수신료 징수방식이 바뀐다고 해서 국민이 선택적 납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불편만 가중될 수 있단 전망이다.

이 회장은 "수신료를 안 내면 납입 기한 내에 가산료를 내야 하고, TV 수상기 등록을 안 해도 추징금을 물게 되어있다. 때문에 선택적 수신료 납부를 도모한다면 탈세 조장이나 다름이 없고, 시행령 개정안 자체도 '불법'이 될 수밖에 없다. 달라진 징수 방식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시스템이 없어 오히려 국민들이 별도로 수신료를 챙겨야 하는, 불편과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KBS에게도, 국민에게도 비효율적"이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 역시 "정부 여당이 마치 수신료 제도를 개편하면 수신료를 선택적으로 낼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지만 KBS가 마음에 안 들어도 수신료를 내야 하는 게 현재 법 체제다. 고지서가 하나 더 나올 뿐이다. 정치적 선동만 있고 정책적 논의는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수신료 분리징수 이후 KBS는 더 이상 공영방송의 기능을 하기 어려울 것이란 진단이다. KBS는 분리징수 시 지난해 6200억 원대였던 순 수신료 수입이 납부 회피 등에 따라 1천억 원대로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재원의 6분의 5 가량이 증발하는 셈이다. 당연히 수익과 관계 없이 진행됐던 각종 '공공서비스'는 대폭 축소·폐지될 수밖에 없다. 당장 뾰족한 수가 없는 KBS가 광고 재원으로 이를 채우게 되면 미디어 생태계에 미치는 피해는 물론이고, 건강한 공론장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이 회장은 "대북 방송, 국제 방송, EBS 송출, 재난 주관 방송 등 KBS가 지금까지 해왔던 업무를 상당수 못할 수밖에 없다. EBS도 수신료 3%를 분배해서 가져가는데 그럼 각종 교육방송 재원에 대해서는 정부가 어떻게 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또 "결국 KBS도 광고 재원으로 이를 채울 수밖에 없을텐데 다른 방송 채널들이 반길 이유가 없다. 지금도 이미 한정된 파이를 계속 나눠 먹고 있다. 이렇게 자본 논리로 방송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질 좋은 방송이 나올 수 없다. 유튜브처럼 확증편향적인 방송이 될 수도 있고, 공영방송이 해야 하는 공론장 역할도 불가능해진다"고 전했다.

이번 방송법 시행령 개정은 공영방송 구조 개편의 신호탄이 될 확률이 높다. 단순히 정부 여당에 우호적인 인물을 경영진에 배치하는 정도가 아니라 구조 자체를 뒤바꾸는 작업이다. KBS가 수신료를 통해 '국가나 각종 이익단체에 재정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방지해왔기에 독립성 측면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 교수는 "수신료 분리징수는 공영방송 재편의 신호탄이고 내년도 총선 전에 여론지형을 우호적으로 만들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정권이든 공영방송에 정부 여당에 우호적인 인물을 경영진에 앉혀 환경을 조성해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TBS는 조례를 통해 지원금을 끊고, YTN은 공적 지분을 매각해 민영화하고, KBS는 시행령을 변경해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한다. 환경 조성을 넘어 구조 개편을 자의적, 정파적으로 진행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수신료 논의를 이렇게 하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 수신료를 통해 담보된 공영방송의 의미, 최소한의 공정성이 회복될 수 없게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KBS는 '국민의 방송'이고, 정치권이 재원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방송이다. 수신료를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신료 분리징수는 정파적 이익은 담보할 수 있을지언정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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