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더 글로리' 영광에도 이도현은 취하지 않는다

배우 이도현. 위에화엔터테인먼트 제공
누가 뭐래도 이도현은 지금 20대 남자 배우 중 가장 성공적 커리어를 쌓았다. '오월의 청춘'에서 선보인 인상적인 연기로 그 해 모든 신인상을 휩쓰는가 하면, '더 글로리' '나쁜엄마'를 통해 글로벌 흥행 2연타 기록을 세웠다. 특히 '더 글로리'에서는 화려한 경력의 배우 송혜교(동은 역)와 짝을 이뤄 학교 폭력 피해자인 동은의 복수 파트너이자 이해자로 거듭났다. '칼춤 추는 망나니'가 되겠다는 이도현의 대사처럼 다소 애매할 수 있는 역할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도현의 생각보다 너무 빠른 성공일 수 있고, 당연히 운도 어느 정도 따랐을 수 있다. 다만 주조연, 더 나아가 주연 중에서도 그 크기를 가리지 않는 이도현의 행보, 또 작품과 연기 그 자체에 비중을 크게 두는 성향이 좋은 결과를 낳았으리라 짐작해 볼 만하다. 작품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이도현은 다양한 장르와 역할을 거쳐왔다. 청춘물에서는 풋풋한 소년, 시대물에서는 애절한 청년, 더 나아가 7세와 35세를 오가는 연기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쉼 없이 달려온 이도현은 이제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이뤄낸 것들을 뒤로 하고 가려니 속이 쓰릴 법도 한데 이도현은 '시청자들도 제 연기가 물릴 수 있다. 쉬어가는 타임'이라고 갈무리했다. 젊은 배우로서는 참 냉철하고도, 통찰력 있는 판단이다. 모두가 주목한 이 시점에서 자칫 잘못하면 빠질 수 있는 이미지 소진의 함정을 이도현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연기에는 뜨겁지만 이를 제외하면 이도현은 '요즘 애' 같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래서 연령 불문 '호감' 배우가 되기도 했다.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자기 생각을 진솔하게 밝힐 줄 알고, 다소 짓궂은 질문에도 회피하지 않고 침착하게 의견을 전달한다. 수많은 연상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왔지만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던 건, 아마 이런 이도현의 성정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몰입도 높은 연기는 그에 대한 본질적 탐구와 공부를 놓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다음은 이도현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제공
Q '더 글로리'는 신드롬, '나쁜엄마'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잇따른 흥행에 부담은 없었을까


A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된 케이스가 많이 없는데 너무 감사하다. '더 글로리'가 너무 잘돼서 해외에 있는 친구가 자랑하는 걸 들으니까 너무 신기하더라. 미국인 친구가 사인 좀 해달라고 해서 사인을 어떻게 해주냐고 했더니 '받아 달라고 한다'면서…. 그 정도로 잘됐더라. 이 시점에 다음 작품이 있었다면 부담이 될 거 같은데 아직은 나온 게 없어서 그렇게 크진 않다. 제가 흥행 여부를 좌우하는 건 아니라서 그냥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할 뿐이다. 흥행은 결국 관객과 시청자의 몫이다. 저는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고,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과정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 작품이 잘 안돼도 과정이 행복했다면 괜찮다.

Q '나쁜엄마'의 큰 줄거리가 결국 엄마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본인은 어떤 아들이었나

A 저도 좀 엄하게 자랐다. 전 PC방이나 당구장이 나쁜 곳인 줄 알아서 못 갔고, 밤 10시면 집에 들어가야 했다. 한 번 새벽에 나갔다가 된통 혼난 적이 있어서…. 향후에 제 교육방식은 잘 모르겠지만 크고 나서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교육방식이 제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저를 위해서, 제가 잘됐으면 좋겠는 마음에 그렇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는 몰랐던 것들을 크고 나서 알게 되는 거 같다. 사춘기가 심하게 와서 반항을 많이 했는데 돌이켜보면 죄송하다.

Q '나쁜엄마'에서는 배우 라미란을 엄마로 만났다. 함께 작업한 소감은

A 또 다른 엄마가 생겼다. (웃음) 진짜 다른 엄마가 생긴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 가치관을 새롭게 알려주신 분이고 어떻게 이 일을 헤쳐나가야 할 지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언도 되게 많이 들었다. 연기적인 것을 떠나 저라는 사람의 삶에서도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선배는 편하게 '누나라고 해'라고 하셨는데 작품하는 동안 '엄마'와 '누나'는 괴리가 크니까 '죄송하다. 엄마라고 부르겠다'고 해서 지금까지 엄마라고 한다.
 
배우 이도현. 위에화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제공
혼자서 집에서 준비한 감정선보다 현장에서 선배를 만났을 때 폭이 깊고 다양하게 오가게 돼서 연기가 더 재미있었던 거 같다. 상대방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내 대사가 생각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으로 인해서 하고 싶은 말들이 생긴다. 그런 경험들이 이번 작품에 굉장히 많았었고, 잘 자리를 잡아 새로운 길이 열린 거 같아 엄마(라미란)에게 너무 감사하다.

Q 그러고 보니 보통 연상의 여자 배우들과 연기합을 많이 맞춰왔던 거 같다

A 나이가 중요한가 항상 생각한다. 같은 배우 입장에서는 그 캐릭터에 분명한 '메리트'(장점)이 있어서 맡았다고 생각한다. 저조차도 그렇다. 첫 주연작이었던 '18 어게인'에서도 주변에서 김하늘 선배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해서 검색을 해보니 인지를 했었지 개의치 않았다. 다만 그분들이 힘들게 쌓아 올린 커리어에 제가 개입이 되는 거니까, 명성에 누가 되면 안되고, 저 때문에 망칠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런 책임감으로 작품에 임했다. 어떤 배우와 하든 그건 같은 마음가짐이다.

Q '나쁜엄마'도 그랬지만 작품들마다 노래하는 장면이 들어간 게 꽤 있었다

A 그러고 보니 시상식에서도 노래한 적이 있고, 노래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린 적이 없는데 작가님들께서 왜 노래하는 장면을 넣으시는지 모르겠다. (웃음) 노래를 잘하기보다는 상황에 맞게 하려고 노력을 했었다. 최근 뮤지컬 레슨을 받고 있기도 하다. 대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뮤지컬 공연하는 친구들을 경이롭게 봤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 춤, 연기를 다 잘하니까 너무 멋있어 보였고, 무대가 주는 힘이 굉장하다. 그래서 공연을 보러 가거나 하면 힘을 받아서 나온다. 연기에 대한 마음가짐도 다시 생긴다. 노래는 아직 못하지만 꾸준한 연습을 통해 무대 위 관객들과 만나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배우 이도현. 위에화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제공
Q '더 글로리'에서도 '할게요, 칼춤 추는 망나니' 등 소화하기 어려운 대사가 많았는데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다. 스스로에게 엄격해 칭찬을 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스타일인 것으로 아는데


A 제가 한 연기가 너무 이상했다. '더 글로리'에서 그게 정점을 찍었다. 작가님이나 감독님은 여정이 너무 잘했고, 멋있었고, 잘 해냈다고 하셨는데 저는 애매하고, 색깔도 없는 거 같았다. 너무 이해가 안 가고 답답해서 주변에 다른 감독님들께 여쭤보기도 했다. 그런데 라미란 선배가 '물이 넘칠 것 같으면서도 넘치지 않게끔 연기한 게 잘한 거다. 그게 굉장히 어려운 거다'라고 말씀해주셔서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런 칭찬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생겼다.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방법이 있어야 배우라는 직업으로 꾸준히 '롱런'할 수 있을 거 같더라. 예전에는 '아쉬우면 어쩌겠어'라고 말로 해도 마음은 그게 안됐는데 이제는 아쉬워도 스스로 계속 칭찬하고, 다독이고, 털어내는 간극이 짧아졌다.

Q '오월의 청춘' 등 필모그래피를 보면 상당히 도전 의식이 뚜렷해 보인다. 20대 배우가 굵직한 현대사 배경으로 한 작품을 선택하긴 쉽지 않은데

A 회사 입장에서는 위험하다고 판단했는데 제가 밀어붙이긴 했다. 너무 하고 싶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청춘들에게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1980년대에 살았던 청년들을 대표해 연기하는 건 아무에게나 오는 기회도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가 꼭 도전해보고 싶다고 회사를 설득해서 하게 된 작품인데 좋게 봐주셔서 엄청난 영광이 됐다.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고 마음을 먹으면 바로 가는 성격이다. 제 캐릭터보다는 전체를 보는 성격이라 역할이 크든, 작든 대본이 너무 재미있으면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저에게 안 들어온 작품인데 대본을 보고 너무 하고 싶다면 제가 먼저 오디션을 보게 해 달라고 할 거다.

Q '나쁜엄마'가 '더 글로리' 차기작이었다. 연인 임지연이 보고 피드백도 해줬는지. 또 이제 군대를 가게 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는지

A 잘돼서 너무 축하한다고는 하는데 그 친구가 작품을 봤는지 안 봤는지 모르겠다. 얘도 촬영을 쉬지 않고 많이 해서, 거기다 대고 '나 내일 몇 시에 막방(마지막 방송)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고, 방해되는 거 같아서 그냥 내버려뒀다. 제가 촬영할 때는 저도 정신이 없고, 그 친구도 정신이 없었고, 이제 저는 다 끝났는데 그 친구가 정신이 없다. 그 친구가 촬영하고 있는 대본을 같이 보면서 짬이 날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누긴 한다. 군 입대 관련해서는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각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자고…. 서로 그렇게 살아가서 크게 그런 부분에 영향을 받거나 그러진 않는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그 친구 생각도 들어봐야 한다. (웃음)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제공
Q 군대 이야기가 나왔지만 어쨌든 한창 상승세인 상황에서 입대하게 돼 아쉬운 마음도 있겠다


A 정확한 입대일이 정해지진 않았는데 안 아쉽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적절한 시기란 생각이 드는 게 4~5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이 나왔다. 시청자들도 물린다고 해야 하나, 같은 모습이 비춰질 수 있는 상황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저에 대해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이후에 새로운 제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경험이 많아야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군대 경험만큼 큰 도움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날 거고, 그 사람들의 인생과 장점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거다. 그래서 군대를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제 동기가 연출, 기획을 하고 있는 군 뮤지컬도 해보고 싶고, 그냥 뭐든 다 배우고 싶다. 돌아왔을 때는 '이도현도 남자였다' 이런 이미지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렇게 좀 성장하고 빨리 나이 들고 싶다.

Q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연기적인 욕심과 갈증이 상당히 크다는 생각이 든다

A 그래서 스터디를 계속 한다. 며칠 전에도 했다. 데뷔를 한 친구도 있고, 하지 않은 친구도 있는데 저까지 총 5명이다. 그들이 오디션을 보면 함께 대본을 보고, 저도 그 역할을 해본다. 함께 오디션을 같이 만들면서 서로 '소스'(Source·자료)를 빼가는 스터디다. 제가 촬영하다 막히는 장면이 있으면 그 친구들이 도와준다. 서로가 서로를 배우라고 생각하니까 선을 잘 지킨다. 동등하게 터 놓고 이야기하면서도 자기만의 연기 방식이 있으니까 또 그런 부분은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서로 사랑하고, 잘 됐으면 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니까 이해하는 거다.

Q '나쁜엄마'를 통해 이룬 성장과 앞으로 '배우 이도현'의 방향성은

A 큰 걸 얻었다. 저라는 나무에 있어서 새로운 가지가 뻗어 나간 거 같다. 그 전까지 저만의 연기법에 갇혀 있었다면 선배님과 감독님, 다른 배우들을 만나면서 이렇게 연기할 수 있구나, 이런 방식의 연기가 좀 더 좋을 수도 있구나를 알았다. 거기에 힘을 잘 줘서 꽃 피우게 만들 때인 거 같다. 아직까지는 순탄하게 항해하고 있지 않나 싶은데 제 연기를 통해 단 한 명이라도 같이 울고, 웃고 공감해주신다면 그것만큼 큰 보답이 없고, 그만한 값어치 있는 연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 생각이 유효하고 계속 그렇게 연기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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