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성별, 나이 제각각 조합…이상민, 장혜영, 천하람 '이것 통했다'

'초심' 잃게 하는 현실…진영화 된 정치지형
'헌법 기관' 국회의원…당론 앞에서 '제 소리' 못 내는 현실
못난이 경쟁…'우리보다 저 쪽이 더 심각' 위안 받아

왼쪽부터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

전방위적 위기에 직면한 현 대한민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의견 차이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다툼은 불가피하다. 여기서 필요한 건 공동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정치는 자기 진영 혹은 특정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싸움으로만 소비되고 있다. 정치는 그 자체로 혐오의 대상이 된 지도 오래다.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실종된 시대, 우리 정치는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야할까. 24일 CBS라디오 '조태임의주말뉴스쇼'에서는 '정치, 직업인가 소명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칭 타칭 '비주류'라고 하는 정치인 세 명이 성별과 나이, 진영까지 각기 다른 렌즈를 통해 정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대안을 찾아봤다.


■ 방송 : CBS 라디오 <조태임의 주말뉴스쇼> FM 98.1 (07:00~09:00)
■ 진행 : 조태임 앵커
■ 대담 :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
 
참석자는 세 사람이다. 장애를 가진 어린 동생이 있어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들부터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정치를 시작했다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 "공동체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서 '행동하는 철학자'로서 정치인이 됐다는 국민의힘 천하람 당협위원장, "시민운동을 통해 추구하던 가치를 실제 현실에서 제도화하고 입법화할 필요" 때문에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 하루가 멀다하고 고성과 삿대질이 등장하는 요즘 정치판과는 달리, 둘러 앉은 세 사람은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상대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였고, 반론 보다는 첨언에 시간을 썼다.
 
5선 구력의 이상민 의원이나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새 바람을 몰고온 정치신예 천하람 국민의힘 의원이나 정치 투신 시점에서 생각한 정치와 실제 현실 정치 사이에 차이가 크다는 데는 의견이 같았다.
 
이상민 의원을 초심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리는 건 진영화된 정치지형이다. "제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진영의 논리로 가야 되는 때도 있고, 그럴 때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내가 가야될 길이 이 길이 아닌데'하는 갈등으로 뒤범벅됩니다."

◇일사분란이 중요하다! 의회인데 토론을 안하다니! 이럴 거면 회사 가지?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

천하람 위원장은 "내 주체적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이렇게 바꿔보겠다"는 각오로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소신 없이 윗선의 희망대로 움직이는 정치인들을 보며 실망했다는 소회를 전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직장 다니는 회사원 같지? 저렇게 윗사람 얘기를 따라갈 거면 그냥 삼성전자를 다니거나 검찰, 아니면 그냥 관료를 하지. 국가대표로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아놓은 건데, 이 사람들이 왜 스탭처럼 행동하는 걸까요."
 
'소신대로 행동하지 않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에 이상민 의원은 아무리 모난 돌도 둥글게 만들어 버리는 정치 현실에 대해 고백했다. "제가 초선일 때 여당인데도 정부가 발의한 법률안에 건건이 시비를 거니까 국무회의에서도 '그 사람 왜 그러냐'는 얘기가 나왔다고 해요. 점점 그런 걸 겪으면서 '내 주장을 분명히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큰 싸움은 하되 작은 싸움은 그냥 넘어가자'는 식의 자기 합리화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해야 한다는 법안이 있으면 검토도 안하고 그냥 묻지마 표결을 하기도 했던 게 솔직한 고백이에요." "검수완박 표결 때도 저는 본회의에서는 당론대로 찬성을 했는데, 언론에서는 법리적으로도 시기적으로도 반대 입장이라고 계속 그랬었어요. 당장 기자들이 주장과는 달리 표결은 왜 찬성이냐 하는데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의총 결론내도 의원취재 따로 하는 이유? 일사분란 아니면 다쳐!

장혜영 정의당 의원

장혜영 의원은 상대적일지언정 토론문화가 자리 잡혀있을 것 같은 진보정당에서조차 "일사불란하게 모두가 똑같은 얘기"를 해야 되는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 결과는 결국 공론장의 축소다. "'왜 다른 얘기를 하냐, 너 때문에 우리 당의 지지율이 낮아진다, 너 때문에 당원들이 탈당한다' 이런 방식으로 얘기를 해요. 토론을 하며 반응과 피드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대신 물밑에서 논의를 똑같이 만들어놓고 갑니다. 공론장이 축소되고 있는 거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토론 끝에 결론을 내는 게 목표인 각 당의 의원총회에서조차 지도부나 다수가 정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오죽하면 기자들이 의총의 공식 결론 외에 '당연히' 다른 목소리가 있을 것이라 전제하고 익명 보도를 전제로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 취재를 하는 게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기자에게 '보호를 받는' 상황도 벌어진다고 한다.
 
천하람 위원장은 "저는 그냥 실명으로 막 열심히 얘기해 줬는데 기사가 익명으로 나온 거예요. 나중에 그 기자와 만나서 '그때 실명으로 써도 된다고 그랬는데 왜 익명으로 냈어요?'라고 물었더니 '발언 내용이 너무 심한 거 같아'라고 하더라고요." '다수의 입장에 반하는 의견을 낸 정치인은 다친다'는 명제가 공공연한 대목이다.
 

◇지리멸렬한 '못난이' 경쟁 "우리가 죽긴 하는데, 적이 더 죽는다" 때문
   양 당 모두 서로에게 희망 "상대 덕분에 차기 총선에서 우리가 승리"

연합뉴스

거대 양당의 '막하막하' 경쟁, 스스로 잘하기 보다는 상대의 실책으로 점수를 얻는 적대적 공생관계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했다. 이상민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민주당 입장에선 희망의 등대"라고 표현한 게 대표적이다. 못하는 상대를 '믿는 구석'으로 삼는 각 당은 총선에도 '더 못하는 상대 덕분에 우리가 이긴다'는 망상에 빠져있다고 한다. "우리 당은 차기 총선을 질 거라고 생각을 안 하고 있고, 국민의힘도 만나서 얘기 들어보면 스스로 이길 거라고 생각을 해요. 둘 중 하나는 질 건데 말이에요(이상민)." "양 쪽 당이 이렇게 (부정적 이슈와 평가로)적립을 같이 하고 있어서 문제죠(천하람)." 이 대목에서 특히 억울한 건 정의당인데, 장혜영 의원은 냉정하게 현 상황을 진단하고 있었다. "두 당이 비호감을 적립하면 저희는 어부지리라도 있어야 하는데, 같이 비호감이 적립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정의당 역시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존재해 왔던 양당 진영의 일부로 이해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 많은 양당은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기득권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천하람 위원장은 "나름 각 당이 갖고 있는 상징이나 정체성들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국민의힘은 산업화 정당, 민주당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는 식으로 양 당은 어떤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어요." 물론 이 가치를 각 당이 실제로 추구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이슈다. 그나마 이러한 가치, 정체성도 흐려졌다는 게 장혜영 의원의 생각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반대하는 정당이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반대하는 정당인 게 지금의 정체성이지,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어떤 가치 이런 것들은 정체성으로서는 지금 다 사라졌어요. 거의 다 까먹었어요."


◇양 당 기득권 속에 제3당 살아남으려면
   짬뽕이든 짜장면이든, 섞고 버무린 게 아닌 확실히 다른 메뉴 내놔야 

 천하람 위원장은 문제의식 속에 태동한 제3세력, 제3정당들 역시 제대로 된 정체성, 정립된 가치체계가 없어 힘을 받지 못했다며 중국집 메뉴를 예로 들었다. "짜장면을 파는 집이 있고 짬뽕을 파는 집이 있는데, 다들 좀 썩은 걸 팔고 있으니까 덜 썩은 부분, 살릴 수 있는 부분만 섞어서 적당히 괜찮은 사람들도 이렇게 버무려 가지고 이상한 음식을 내놓는다면 이게 상품성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제 3의 어떤 확립된 요리를 제공해야지,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나름대로 도덕적인 사람들이 모여 '조금 더 잘해보자' 수준이면, (도덕성에 타격을 입힐) 스캔들 하나만 터져도 그 정당은 무너질 겁니다."
 

◇정치인 지키지 마세요, 정치인이 국민 지켜야 돼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상민 의원은 다짐으로 대화의 마무리를 지었다. "저 나름대로는 시시비비 가리면서 할 말 하자고 마음먹었었는데 그렇게 안 한 적도 많거든요. 더 굳건히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분하고 상식을 복원시키고 노력하겠습니다." 장혜영 의원은 "생산적인 경쟁과 논의가 될 수 있도록, 국민들이 투표소 들어가서 마음 편히 새로운 선택을 하실 수 있게 그런 역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천하람 위원장은 정치인임에도 국민들에게 "사랑하지 말아달라"는 신선한 부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정치인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정치인을 지킵니까. 요즘 극성 팬덤이 양당 모두 문제가 되는데, 정치인의 행태나 정책, 메시지를 보는 게 아니고 국민들이 그냥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 이상한 길로 갈 때 같이 가시는 거죠. 다른 당 뽑고 다른 사람 뽑는 건 배신이 아닙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