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를 향해 과도한 '건폭몰이' 수사 등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숨진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고(故) 양회동(50) 열사의 발인식이 서울 도심에서 엄수됐다.
노동절이었던 지난달 1일 분신했던 양회동 열사가 다음날인 2일 끝내 숨진 이후 50일 만에 발인이 이뤄졌다.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장례위원회(장례위)는 21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일대에서 양 열사의 영결식을 치렀다.
오전보다 빗줄기가 거세졌지만 시민들은 영결식에 참석해 양 열사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상임장례위원장인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양회동 열사는) 자신은 생계를 위해 대출을 받아도 조합원 고용이 행복이었던 사람이었다"며 "그의 행복이자 자부심이었던 조합원 고용은 정권에 의해 공갈로 협박으로 매도당하고 짓밟혔다"고 분노했다.
이어 "양회동 열사의 억울함을 푸는 길은 윤석열을 끝장내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권을 끝내는 것에 멈추지 말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향해 달려가자"며 양 열사의 유지를 받들자고 호소했다.
정치계·종교계 등 사회 각계 인사들도 영결식을 찾아 고인을 향해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노동이 존중되는 세상, 노동자들이 정당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향한 열사의 꿈을 살아남은 우리가 함께 이뤄가겠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꾼 그의 영정 앞에 오늘 놓은 한송이 국화꽃을 노동존중 사회의 환한 들꽃으로 피어나게 만들자"며 "고인의 유가족이 외롭지 않게 손을 잡겠다"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유가족은 직접 발언대에 올라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서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유가족 양회선씨는 "오늘 우리 가족들의 품을 떠나는 동생아.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떠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아무리 노력해도 너의 빈 자리를 완벽히 채우지 못하겠지만, 형제들과 조카들이 뭉쳐서 최대한 부족함을 채우도록 노력하겠다"고 울먹였다.
영결식이 끝나갈 때쯤, 유가족과 건설노조 조합원 등 시민들이 발언대 위 마련된 양 열사의 영장 앞에 흰 국화꽃을 놓아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앞서 장례위는 이날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시몬 신부 주례로 발인 미사를 봉헌했다.
유가족 등 5천여 명은 노제가 열린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까지 2시간 가량 운구 행진을 진행했다.
거리에는 "가세, 가세. 노동존중 참세상으로 가세"라며 양 열사를 떠나보내는 곡소리가 울려퍼졌다.떨어지는 빗방울을 뚫고 풍물패가 장례행렬을 선두에서 이끌었고 검은 운구차가 그 뒤를 따라 붙었다.
검은 정장을 입거나 건설노조 조합원 조끼를 착용한 채 장례에 참석한 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운구차 뒤를 따랐다.
경찰청 앞에 도착한 장례위는 이날 오전 11시 10분쯤 노제를 진행했다.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김정배 지부장은 추도사에서 "양회동 열사여, 이제 당신을 우리 가슴에 새기려고 한다. 당신의 사명을 기억하려고 한다"며 "당신의 마지막 염원을 이룰 수 있도록 투쟁의 기운을 불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당신의 뜻을 기억하고 당신의 염원을 같이 하는 동지들이 있어 두렵지 않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금속노조 윤장혁 위원장은 "열사가 남긴 정신을 산자들이 가슴에 새기고 열사가 염원했던 윤석열 정권 퇴진과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향해서 2500만 노동자들이 반드시 염원을 실현하겠다"며 "부디 영면하시길"이라고 다짐했다.
장례위는 당초 경찰청 앞에서 헌화 등 열사를 기리는 상징 의식을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경찰이 경찰청 정문 앞에 펜스와 경력을 배치해 도로 일부를 점거하면서 상징 의식은 무산됐다.
이후 장례위는 영결식이 열릴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로 장례 행진을 이어갔다.
양씨의 노동시민사회장은 오후 4시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서 하관식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숨진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은 노동절인 지난달 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직전 강원 강릉시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했고, 다음날인 2일 숨졌다.
양회동 열사는 유서에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고 한다"며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밝히는 등 정부와 경찰의 이른바 '건폭' 수사에 항의했다.
이후 건설노조는 유족의 뜻에 따라 장례 절차를 위임받고 지난달 4일 서울대병원에 마련한 빈소를 지키며 정부의 사과와 양회동 열사의 명예회복을 요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