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나쁜엄마' 모성애는 왜 진부하지 않았을까

JTBC 드라마 '나쁜엄마'의 배세영 작가.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제공
영화 '완벽한 타인'부터 '극한직업'까지, 배세영 작가는 스크린에서 누구보다 화려한 이력을 지녔다. 그런 그에게 JTBC 드라마 '나쁜엄마'는 또 다른 도전의 영역이었다. 영화 시나리오 문법과는 다른 드라마 대본의 문법을 따라야 했고, 배워야 했다. 영화가 '함축'의 미덕이라면 드라마는 '쉬운 설명'의 미덕이었다.

드라마 첫 데뷔작이지만 '나쁜엄마'는 최고 시청률 1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돌파하며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한파가 몰아치는 방송가에서, 그것도 휴먼 코미디 장르로 마의 10% 벽을 넘었기에 고무적일 수밖에 없다. 배 작가 역시 기획부터 우려가 따랐고 예측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정도다. 각 캐릭터마다 알맞은 서사를 배치하고, 공감을 끌어 올린 필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배 작가의 가장 큰 강점인 '캐릭터'는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기구한 삶의 영순(라미란 분)과 그런 영순 아래서 혹독하게 검사의 꿈만 향해 자라난 강호(이도현 분), 그리고 쌍둥이 남매를 홀로 키우는 미주(안은진 분). 이들 주인공 셋은 모두 사람과 세상,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받았지만 꿋꿋하게 삶을 견딘 끝에 그마저 함께 치유해 나간다.

각 서사가 단단한 캐릭터들은 남다른 '케미스트리'를 자랑했다. 그래서 '나쁜엄마'는 강호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는 복수 이면에 이들이 가족 공동체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예리하게 웃음을 꿰뚫었던 전작들보다는 눈물도 함께 어우러졌지만, '나쁜엄마'는 거창한 장르물이 아니더라도 따뜻하고 코믹한 가족 드라마의 가능성이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했다. 다음은 배세영 작가와의 서면 인터뷰 일문일답.

JTBC 드라마 '나쁜엄마' 스틸컷.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제공
Q 최고 시청률 12%, 첫 드라마 데뷔가 성공적으로 끝난 소감은

 
A 요즘처럼 신선하고 재미있는 소재의 작품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이렇게 익숙하고 소박한 이야기가 과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기획단계부터 많은 분들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지금의 결과를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우리 한국인들만이 이해하고 공감할만한 정서가 가득한 작품이라는 생각에 해외에서까지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반가웠다. 이 모든 것이 앞서 선보인 K-콘텐츠들의 흥행과 그에 대한 믿음에서 이어진 결과라고 생각하기에 그동안 좋은 작품들로 K-콘텐츠의 위상을 높여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나쁜엄마'에 보내주신 과분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수많은 응원과 가르침의 메세지에 감사드린다.    
 
Q 긴 호흡의 드라마 작업과 비교적 짧은 영화 작업의 차이점은
 
A 내가 생각하는 주제를 최소한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영화라면 드라마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한 줄 한 줄 풀어서 자세하고 반복적으로 말해 줘야 하는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작업은 단순히 짧은 이야기를 분량적으로 길게 늘리는 작업이 아니다. 각각의 화에서 독립적인 기승전결이 필요했고, 전체 주제로 귀결하기 위한 '빌드업'(쌓기) 과정도 필요했으며 각 회차 간의 연계성과 연속성, 다음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엔딩 포인트도 중요했다.
 
영화적 문법에 익숙했던 저에게는 긴 호흡을 가지고 여러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는 드라마의 문법이 굉장히 낯설고 어려웠다. 또한 개봉 후 단번에 전체적인 평가를 받는 영화와는 달리 매 화 달라지는 평가와 시청률, 대사 한 줄, 행동 하나하나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는 '실시간 톡' 시스템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Q 최근 따뜻한 가족 드라마보다는 장르물이 더 대세인데, '나쁜엄마'가 통했던 이유는 뭘까

A 따뜻하지만 그 이면에 서늘한 음모와 복수의 서사가 도사리고 있고, 무겁지만 그 뒤에 가볍고도 유쾌한 조우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긴장감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며 흥미있게 봐 주신 것 같다. 또한 오랫동안 눈과 사고를 즐겁게 하는 세련된 장르물들이 인기를 얻다 보니 오랜만에 투박하지만 마음을 건드리는 드라마가 반가웠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독 50~60대 어른들께 재밌게 봤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는데, 조우리라는 시골마을의 풍경과 친근한 이웃들의 이야기, 그리고 부모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 것 같다.  
 
JTBC 드라마 '나쁜엄마' 스틸컷.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제공
Q 라미란은 이 드라마를 모성애가 아니라 인간 영순의 이야기로 생각했다고 하던데

 
A 당연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영순의 이야기고, 인간 영순이 죽기 직전까지 가장 사랑했던 아들을 위해 애정으로 버텨온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 이웃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들 때문에 행복했습니다'라는 마지막 대사가 나올 수 있었다.
 
Q 지금껏 모성애를 다룬 드라마들이 많지만 최근엔 여성 캐릭터들이 다양해지면서 이런 코드를 아예 빼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모성애 코드를 가져간 이유와 '나쁜엄마'의 차별성은 뭘까

A '나쁜엄마'에서의 엄마의 희생이 기존에 익숙했던 보편적인 모습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들을 위한 무조건적인 희생, 착하고 순박하고 정많은 기존의 엄마가 아니라 지독하고, 모질고 단호하게 상황을 이겨내 가는 엄마다. 미주 또한 기존의 캐릭터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배신을 당하면 복수를 꿈꾸거나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침체되고 쓰러지지만 미주는 그렇지 않다. 자기 삶을 꿋꿋하게 이겨내며 악착같이 살아간다. 익숙하게 경험했던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에 대한 이미지들로 인해 사랑을 받은 것 같다.
 
모성애라는 것은 시대와 장르를 막론하고 꾸준히 다뤄져 왔다. '정이'나 '길복순', 'SKY 캐슬' 하다못해 '오징어 게임'이나 '더 글로리'에서도 다양한 형태로의 모성애가 들어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다루냐가 아니라 어떻게 다루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Q '완벽한 타인'부터 '극한직업' 그리고 '나쁜엄마'까지 각자 색채는 모두 다르지만 불편함 없이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란 점이 본인 작품의 강점 같다. 이런 코미디가 나올 수 있는 저력은
 
A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휴먼 코미디가 맞다. 하지만 코미디를 장르로 활용하기 보다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선택이 맞는 것 같다. 격하고 거칠게 표현하는 방법, 혹은 진지하고 슬프게 표현하는 방법? 모두 각자의 방식인데 저는 웃음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좋아하고 선호한다. 그것을 장점으로 봐주시는 것 같다.
 
JTBC 드라마 '나쁜엄마' 스틸컷.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제공
Q 극을 이끈 배우, 라미란·이도현 캐스팅 비하인드도 궁금하다


A 라미란 배우님이 영순으로 캐스팅 됐다는 소식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던 그 날이 생각난다. 강인하고 냉혹한 엄마의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라미란 배우님을 상상하기란 어려울 거다. 기존 작품들에서 보여주신 그 밝고 유쾌한 이미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라 배우님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에 대해 익히 들어 온 저로서는 오히려 '이미지가 정형화 되지 않은 엄마' 라 배우님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컸다. 자칫 무겁고 어두운 영순의 모습이 라 배우님의 밝은 기존의 이미지로 인해 상쇄될 수 있는 탁월한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이도현 배우님이 캐스팅 확정 되던 날은 보조작가들과 밤새 배우님이 출연했던 기존 작품들을 보고 또 보며 행복해 했다. 검사 강호로서의 차가운 이미지, 7세 아이로서의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이미지가 다 들어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인정하는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만큼 우리 '나쁜엄마'의 영순과 강호로 완벽한 배우님들이라 생각했고 종영이 된 지금 이 순간까지도 감사한 마음이다.
 
Q 함께 작업을 하며 캐릭터 방향성에 대한 부분도 많이 논의를 했겠다

A 두 배우님을 너무 좋아하는 팬이었지만 직접 만나게 된 건 이번 작품 캐스팅 과정에서 처음이었다. 작품을 대하고 해석하고 과정에서 연기적으로나 외모적으로나 자신이 쌓아 온 모든 이미지를 과감하게 내려놓는 모습을 보며 라미란 배우님의 진정성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었다.
 
이도현 배우는 작품에서 보는 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다정다감한 배우였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건전하고 착한 교회오빠 같은 느낌도 들었고 나이에 비해 진중하고 깊다는 느낌도 받았다. 첫 미팅 때 엘레베이터 안에서 공손히 배꼽인사를 하며 '작가님, 걱정 마세요. 저 무조건 잘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장면이든 마음껏 쓰세요. 파이팅!'하고 말해주셨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정말 큰 위로와 힘이 됐다

Q 두 배우를 향해 본인이 가진 애정의 깊이가 느껴진다

A 작가에게는 좋은 스토리가 몫이듯 좋은 캐릭터는 배우가 만들어 나가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캐릭터를 잘 만들어 내는 작가라고 칭찬을 듣곤 하지만 제가 대본에 아무리 좋은 캐릭터를 만들어 놓는다고 해도 배우님들의 해석과 연기가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절대 좋은 캐릭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배우님들께 늘 배우님들이 표현하시는 그 방향이 무조건 옳다고 믿고 지지해 드리는 편이다. 어떻게 보면 그게 가장 엄하고 까다로운 캐릭터에 대한 주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JTBC 드라마 '나쁜엄마' 스틸컷.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제공
Q 집필 또는 구상 중인 차기작이 있을까

 
A 차기 작품은 영화다. 제목은 '아마존 활명수'인데 아마존 원주민들이 한국의 양궁 대회에 참가하는 이야기다. 이미 탈고는 끝난 상태이고, 7월 크랭크인 예정이다. 시트콤 각색 작업에 크리에이터를 맡은 '약한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라는 작품이 준비 중이고 제 원작 시나리오를 시리즈로 전환한 '야수'라는 작품을 각색 할 예정이다. 장르는 '크리처 판타지 로맨스'다. 새로운 도전도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다.
 
Q 집필작마다 성공을 거두면서 '믿고 보는' 작가가 된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대본이란
 
A 작업에 참여한 모든 스태프, 배우들이 만족하고 그 결과물을 관객들도 사랑해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대본은 없을 거다. 시청률이 좋아도 작업 현장이 불행했다면 좋은 대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정이 행복하고, 결과가 힘이 되고, 시간이 지나도 생각나는 그런 좋은 대본을 만들려고 항상 노력하겠다.
 
Q '나쁜엄마'는 본인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A 드라마의 생리와 문법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야말로 실로 돼지를 끄는 심정으로 어렵게 작업한 작품이다. 많은 사람을 얻었고 또 많은 사람을 잃은 작품이기도 하다. 모든 과정이 의미있었고 좋은 결과로 남아 행복하다. 인연으로 만났지만 운명으로 남을 작품이 될 거다. 어떤 일에서든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드라마 데뷔작으로 첫 단추가 잘 끼워진 아주 고마운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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