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국제 밀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며, 라면값을 콕 찝어 인하 압박에 나섰다.
지난 2010년에도 정부 압박에 라면 가격을 5% 안팎 내린 바 있는 라면업계는, 현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인하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한 상황인데, 단순히 밀 가격 때문에 인상을 단행한 것이 아니기에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19일 'KBS 1TV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밀 가격이 올랐고 그다음에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는 이유로 지난해 9~10월에 라면값을 크게 올렸는데, 사실은 1년 전 대비 지금은 약 50%가량 밀 가격이 내렸다"며 "제조업체에서도 밀가루 가격으로 올랐던 부분에 관해서는 소비자들께 다시 적정하게 가격을 좀 내리든지 해서 대응을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여전히 라면 값은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1분기 라면업계의 호실적이 지난해 하반기 가격 인상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따라붙으면서 조정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농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637억원으로 전년 동기(343억원) 보다 85.8% 증가했다. 오뚜기도 전년 동기(590억원) 대비 10.7% 증가한 65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여기에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제품 가격을 빠르게 올리면서 원재료 가격이 떨어질 때에는 가격에 반영하지 않는 행태에 여론이 악화되며 결국,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등 주요 라면업체들은 내부적으로 가격 인하 검토에 착수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단순히 밀 가격만으로 라면 가격 인하를 압박하는 것은 번지수가 틀렸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먼저, 라면 제조업체는 밀을 직접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분업체로부터 밀가루를 구매한다.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제분업체들이 3~6개월 전에 미리 사둔 밀을 가공해 라면업체에 제공하는 구조다. 따라서 가공 과정을 거친 밀가루 공급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 우선이지, 현재 밀 가격이 떨어졌다고 당장 라면업계가 이득을 보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밀 원맥은 운송부터 탈곡, 제분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우리에게 오는데, 원재료 가격이 내렸으니 당장 최종 제품 가격을 내리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지금 석유 가격이 내렸다고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회사도 가격도 내려야 하나"라고 말했다.
또 라면업계는 지난해 인상이 밀을 제외하고도 스프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각종 야채류 가격상승과 에너지 비용·인건비·물류비 등 종합적인 요소를 고려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내수 시장 경쟁이 치열하고, 소비자들의 민감도도 높아 쉽사리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다고 한다.
또다른 관계자는 "가격인상은 수십가지를 고려하지, 밀 하나 때문에 오르는 게 아니다"라며 "라면이 서민들의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주요 식품이 되다 보니까, 함부로 가격을 올리기도 힘들고, 버티고 버티다가 견딜 수 없어 지난해에도 100원 수준에서 인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초에 밀 가격도 고점 대비 낮아진 것이지, 여전히 평시와 비교했을 때에는 높은 수준에 거래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국제 밀(SRW) 가격은 톤당 227.70달러로 1년 전(419.22달러)보다 45.6% 크게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2년 전인 2021년 5월 260.88달러보다도 약간 낮은 수준이지만, 2020년 5월 183.06달러, 2019년 5월 169.63, 2018년 6월 189.88 보다는 높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밀 가격 상승 폭이 유달리 컸고, 현재도 평시보다 밀 가격이 높다"며 "정부 의지가 강하니 내부적으로 검토는 해봐야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는 고민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